아드리안은 소풍 제안 때 했던 방법을 청혼에 똑같이 사용한다. 그는 슈베르트페거에게 자신을 대신해 마리에게 프러포즈해 달라고 청한다. 슈베르트페거는 비인간적인 아드리안이 어쩐 일로 행복한 보통사람의 생활에 관심을 갖는지 뜻밖이라고 말하나, 마리는 충분히 그럴 만한 대상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아드리안이 자신에게 그런 변화를 가져다준 사람은 마리 이전에 슈베르트페거였다고 고백한다.
슈베르트페거는 일단 친구의 청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자신도 마리에게 남다른 관심을 품고 있었으며, 아드리안 모르게 따로 시간을 가진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아드리안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선뜻 연결이 되지 않는 세레누스보다는 연애에 일가견이 있는 루돌프가 자신의 청혼 대리인에 더 적역이라고 부탁을 거두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 대신해야만 한다면 슈베르트페거여야만 하는 것이다.
앞서 소풍에서 암시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여기서 다시 연결된다. 그가 평생의 동반자인 후고 폰 호프만스탈(1874-1929)과 만든 대표작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 1911)는 바로 청혼 대리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미의 기사’란 귀족 사회에서 대신 프러포즈를 해주는 청혼 사절이다. 그는 은(銀)으로 만든 장미를 신부에게 전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호프만스탈의 줄거리는 육군 원수 부인의 정부(情夫)이던 옥타비안이 장미의 기사 역할을 하다가 그만 신부와 사랑하게 되고, 원수 부인은 쓸쓸하게 젊은 연인의 행복을 빌어준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이 중세 연애시인 랜슬롯과 기네비어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를 시민사회로 가져온 패러디이다. 트리스탄 또한 숙부 마르케 왕을 대신해 이졸데에게 청혼의 사절로 가게 되는 기사이다. 바그너가 이를 소재로 한 오페라에서 죽음으로 이끈 숙명적인 사랑을 호프만스탈은 ‘체념’의 해피엔딩으로 바꾸었다. 토마스 만의 청혼 대리인으로부터 바그너와 슈트라우스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며, 때문에 앞선 소풍이 마치 이 장(章)의 전주곡과 같이 느껴진다.
슈베르트페거는 ‘물론 꽃을 들고’ 마리에게 아드리안의 뜻을 전했고, 마리가 이를 거절하자 이번에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얘기한다. 트리스탄을 맞은 이졸데나 장미의 기사를 맞은 조피가 그랬듯이 마리도 오히려 루돌프에 끌린다. 이는 이네스 인스티토리스의 질투를 부추기고 그녀는 콘서트 뒤에 전차에서 자신의 정부를 권총으로 쏜다. 현장에 있던 세레누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이네스의 남편은 이졸데의 시녀 브랑게네에게 엇갈린 사랑의 전모를 듣는 트리스탄의 숙부 마르케 왕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