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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Dec 28. 2018

46. 최후의 작품

제46장: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


네포무크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쓰면서 세레누스의 집필도 한동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연합군의 진격으로 독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였으며, 전쟁으로 인해 문명에 반한 만행은 씻을 방법이 없어 보였다.


마지막 두 해 동안 아드리안의 창작열은 절정에 이르렀다. 교향적 칸타타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Dr. Fausti Weheklag)은 1929년부터 이듬해까지 사이에 작곡되었다. 마흔네 살의 아드리안은 마치 정신적인 고뇌를 승화시킨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풍모였다. 그는 매일 쉬지 않고 여덟 시간씩 일을 했고,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세레누스와 실트크납 그리고 소설가인 자네트 쇼이를 정도였다.


세레누스는 현 독일의 상황에서 베토벤의 <피델리오>나 <합창 교향곡> 같은 승리의 음악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에 더 어울렸다. 작품에서 뿜어 나오는 인간의 절규는 온 우주를 울리고 신마저도 탄식하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창작의 불모상태에서 빚어진 ‘돌파구’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다. 예술이 스스로의 한계를 뚫고 ‘표현력을 회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결과였다. 아드리안이 음악에 차용한 17세기 바로크 음악의 메아리 효과는 작품의 비애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각 악절은 마치 동심원처럼 서로 감싸듯이 퍼져나가 그 자체로 <합창 교향곡>과 같은 비탄의 변주가 되었다.

차이콥스키 최고의 걸작 <만프레트 교향곡>. 바이런이 만든 또 다른 파우스트, 만프레트의 삶을 그렸다

중세의 위대한 마법사 파우스트 박사는 모래시계의 시간이 다 되자 친구와 제자들을 모아놓고 먹고 마신 뒤에 구즈베리로 담근 술을 돌리며 고별사를 들려준다. “나는 선한 기독교인인 동시에 악한 기독교인으로 죽겠다”(Denn ich sterbe als ein böser und guter Christ)는 말은 늘 구원받기를 원했다는 면에서는 선하지만, 그럼에도 악마와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는 악하다는 뜻이다. 이 구절이 변주곡의 주제이며 그것은 ‘열두 개의 음절’로 되어 있었다. 또한 이 곡에는 일찍부터 아드리안의 심볼이었던 ‘h-e-a-e-es’, 곧 헤테라 에스메랄다의 주제도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파우스트가 자신의 영혼에 대한 대가로 쾌락을 약속받고 피의 계약을 맺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그림을 보고 작곡한 교향시 <죽은 자들의 섬>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은 그가 일찍이 조카의 죽음을 앞두고 모두 철회하겠다고 했던 <합창 교향곡>을 실제로 뒤집고 있다. ‘환희’를 ‘비탄’으로 바꾼 것뿐만 아니라 <합창 교향곡>의 제4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주제가 합창의 선율로 이동하는 것과 달리 이 곡의 피날레는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된다. 그리스도가 게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라고 했던 말은 파우스트가 친구들에게 “편히 잠들라”고 한 말로 뒤집어진다. 그러고 보면 그에 앞서 먹고 마신 잔치 또한 ‘최후의 만찬’에 대응하는 것이다.

뵈클린의 연작 <죽은 자들의 섬>. 베를린 알테 나치오날갈레리

놀라운 역전(逆轉)은 파우스트가 신의 구원 자체를 유혹으로 보고 뿌리치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악마와의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결의에 더해 이미 때가 늦었으며, 신의 은총과 같은 것은 애초에 거짓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해서 관현악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신의 비탄이 되는 것이다. 아무런 희망조차 남아 있지 않은 절대 나락의 표현이야말로 바로 역설적으로 새로운 한줄기 희망이 피어날 수 있는 시점이며, 세레누스는 이것이 아드리안의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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