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파우스트 박사
파우스트가 마지막 순간에 그랬듯이 아드리안은 1930년 5월 무렵 지인들을 파이퍼링으로 불렀다. 그가 아는 사람은 모두 초대되었다. 30여명의 사람들에게 아드리안은 막 완성된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을 피아노로 시연해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세레누스는 고독한 작곡가가 자기 은신처에 이런저런 사람을 모두 불러들여 작품을 들려주겠다고 한 일이 찜찜했다. 아드리안은 옛날 독일어처럼 얘기를 시작했다. 먼 곳까지 와준 데 대한 감사의 말에 이어 앞에 놓인 모래시계가 다 흘러내리고 나면 ‘그 자’가 와서 자신의 몸과 영혼을 다 데려갈 것이라는 말에 대개 코웃음을 쳤고, 찌푸리는 이도 있었다.
아드리안은 스물한 살 때 사탄과 계약을 맺은 이래 24년 동안 그의 도움으로 명성을 이룩해왔다고 고백했다. 쥐죽은 듯했다. 예술가의 자기 포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부터,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 했다. 아드리안은 마녀 ‘헤테라 에스메랄다’와 첫 관계를 맺은 것이 시작이었다고 고백하고, 그 황홀경과 더불어 악마와 계약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청중은 동요했다.
아드리안은 자신이 실은 에스메랄다와 만나기 전부터 사탄을 향해 있었고, 할레에서 신학을 공부한 것도 실은 악마에 다가가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자신의 재능을 겸손하게 쓰는 대신 그는 마귀의 도움으로 창작의 불모를 극복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악마와 직접 대면할 기회를 갖는다. 그는 아드리안에게 엄청난 능력을 줄 테니 다만 두통만 좀 참으면 된다고 꼬드겼다. 그것은 마치 인어 아가씨가 인간이 되기 위해 다리를 얻었을 때 느끼는 고통과도 같은 것이다. 악마는 아드리안에게 실제로 ‘히피알타’라는 이름의 인어를 데려왔고 아드리안은 그녀와도 쾌락을 맛보았다. 이쯤해서 청중은 술렁거렸고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었다.
아드리안은 히피알타가 임신해 낳은 아이 이야기를 했다. 그는 사랑스러운 소년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았으나 그것은 어떤 인간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계약을 위반한 것이었고, 그의 죄악에 빠진 시선은 아기를 죽게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드리안은 슈베르트페거이야기로 옮겨갔다. 그가 결혼할 의향을 비치자 악마는 분개했고, 그에게 호의를 보이던 친구를 죽게 함으로써 일을 망쳤다는 것이다. 자리를 박차는 손님이 더 늘었다. 그 가운데는 헬무트 인스티토리스도 있었다.
죄악에 빠진 대가로 받은 작곡의 능력은 아드리안은 더욱 매진하게 했다. 이제 아드리안의 이야기는 거의 환각에 이른 듯이 횡설수설했다. 그는 자신이 용서의 한계를 넘어선 죄를 지었고, 심지어 그 때문에 동정심을 유발할 것이라는 계산까지도 마쳤으며, 다시금 그런 계산이 어떠한 자비도 허락지 않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고 고백한다. 결국 신과 자비의 한계를 놓고 겨루었다는 말이다. 이제 곁에 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드리안은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쳐서 연주해 주겠다고 하고는 극심한 불협화음과 흐느낌을 내뱉은 채 피아노 옆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슈바이게슈틸 부인만이 급히 그를 부축하며 무심한 사람들을 질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