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지 달라피콜라
루이지 달라피콜라(Luigi Dallapiccola, 1904-1975)는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받아들인 최초의 이탈리아 작곡가였다. 그 상징적 의미를 긍정적으로 보자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과 같고, 부정적 시각이라면 ‘트로이의 목마’를 성안에 들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달라피콜라의 12음 기법은 쇤베르크와 제자들의 거칠고 날 선 표현주의라기보다는 서정적이고 노래하는 듯한 이탈리아 음악의 본질을 잃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 독일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이탈리아 음악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든 것과 같다 할까. 곧 달라피콜라가 간 길은 동시대 이탈리아 조류와는 다른 역행(逆行)이긴 했지만, 그것은 시대적 변화에 적응한 역행(易行)이기도 했다.
달라피콜라는 1942년부터 이듬해까지 헝가리 안무가 아우렐 밀로스(Aurel Milloss)의 대본에 붙인 발레 <마르시아 Marsia>를 썼다. 신화에 따르면 마르시아스(Marsyas)는 사튀로스 가운데 지위가 높은 장로인 실레노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아울로스라는 관악기를 잘 불었다. 아울로스는 원래 아테나가 발명한 악기였는데, 그녀는 불 때 볼이 불룩해지는 것이 싫어 악기를 버리면서 주워가는 자는 끔찍한 죽음을 맞을 것이라 저주했다. 마르시아스의 연주는 음악의 신 아폴론을 자극했다.
둘은 승자가 패자를 맘대로 처분한다는 조건에 합의하고 뮤즈들의 심판을 받는 경연을 벌였다. 마르시아스가 아울로스를 불자 모두가 광란에 빠져 춤을 췄다. 아폴론이 리라를 연주하자 그들은 잠자코 울기 시작했다. 아폴론은 리라를 거꾸로 들고 연주한 뒤 마르시아스에게 똑같이 해보라고 했다. 피리를 거꾸로 연주할 수는 없는 법. 뮤즈들은 아폴론의 승리를 선언했다. 신에게 도전한 죄를 물은 아폴론은 마르시아스의 가죽을 산 채로 벗기라고 명했다. 소나무에 걸린 채 가죽이 벗겨진 마르시아스를 보고 님프들이 눈물 흘렸고, 눈물이 모여 마르시아스의 이름을 딴 강이 되었다.
달라피콜라는 완성된 발레를 초연하기 전에 <발레 마르시아의 교향적 단편 Frammenti Sinfonici dal Balletto ‘Marsia’>이라는 모음곡으로 간추렸다. 다섯 악장은 다음과 같다. ‘마법의 춤’, ‘오스티나토’, ‘아폴로의 춤’, ‘마르시아의 마지막 춤’, ‘마르시아의 죽음’. 음악의 느낌은 쇤베르크의 화성보다는 오히려 모리스 라벨이나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색채를 동경하는 듯하다. 아울로스의 도취시키는 선율은 플루트가 맡는다. 피리를 발견하고 황홀해하는 마르시아스는 이내 ‘오스티나토’의 광적인 춤을 춘다. 마르시아스의 음악이 주저 없이 조성의 안팎을 넘나들 때 이를 제지하듯 아폴론이 위압적인 온음계로 등장한다.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대결은 조형예술과 음악의 겨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아폴론이 악기를 뒤집어 연주하는 것이 시각적인 주의를 환기하기 때문이다.
나는 12음 기법에서 선율(Original)을 역행(Retrograde)으로, 전위(Inversion)로, 역행전위(Retrograde Inversion)로 바꾸는 방법을 떠올린다. 곧 음악을 대변하는 마르시아스도 조형의 신 아폴론에 맞서 거꾸로 시도했지만, 그 차이를 청중(님프)이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결국 마르시아스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소리는 더 이상의 무모한 도발을 그치고 일정하고 반복되는 모습을 띠며 평온한 침묵을 향해 떠난다.
물론 달라피콜라와 밀로스가 고전 신화에 현대음악의 쟁점을 녹이려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폴론을 무솔리니로 그렸다. 달라피콜라는 ‘아폴론의 춤’을 ‘매우 지속적이고 웅장하게 빠른 템포로 Allegro molto sostenuto e pomposo’라고 지시해 거만한 폭군을 암시했다.
마르시아스의 신화는 단순히 오만한 신에 대한 반신의 가망 없는 도전과 핍박으로 해석되곤 했다. 이는 권위에 도전했거나 권력과 맞섰다가 좌절한 선각자를 은유적으로 묘사하기 적합했다. 예컨대 플라톤의 <향연>에서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마르시아스로 비유했다. 마르시아스 신화의 중요한 전달자인 로마의 오비디우스 또한 작가로서 창작의 자유를 시험하다가 소아시아로 유배되고 만다. 그리스와 로마의 후계자인 서양 세계가 나무에 묶여 고통받는 마르시아스의 모습으로부터 그리스도와 그의 순교자를 떠올렸음을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신화학자 카를 케레니(Karl Kerényi)는 마르시아스 신화를 샤머니즘으로 해석한다. 곧 고대인들에게 마르시아스의 반인반수 모습은 사실 동물의 가죽을 쓴 샤먼(제사장)을 의미하고, 그 가죽을 벗기는 의식은 영적인 변화를 뜻하는 통과의례였는데, 그리스인들이 숨은 뜻을 잃고 문자 그대로 잔혹한 처형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마르시아스를 대리한 샤먼이 섬긴 신은 당연히 황홀과 도취를 관장하는 디오니소스였다. 아폴론은 그리스의 토착신이고, 디오니소스는 소아시아 트라키아에서 온 외래신이다. 아폴론은 태생이 올림포스의 신이고, 디오니소스는 원래 제우스가 인간 세멜레와 사이에 낳은 반신이었다. 그러나 밖에서 온 신인 디오니소스가 급속히 그리스 대중에게 파고들었다. 포도주의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의 억압된 질서를 느슨하게 하고 감정적 해방을 가져왔다. 아폴론은 이를 통제해야 했다. 두 신의 긴장 관계는 니체의 진단으로 잘 설명된다. 기독교 또한 밖에서 왔지만 빠른 속도로 대중에게 파고들었고, 결국 로마는 “막을 수 없으면 통제하라”는 교훈에 따랐다. 달라피콜라의 12음 기법의 도입이 마르시아스의 샤먼과 같은 환골탈태였을까, 아니면 이탈리아 음악이 스스로 택한 처형, 곧 트로이 목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