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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골무일기

훌라후프 (1)

파가니니

by 정준호

니콜로 파가니니가 묻힌

파르마 시립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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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이런 군중을 다 본다.

무슨 파가니니 협회원인가?

붙잡고 물어보기엔 너무 많고

사실 묘지에 온 사람들에게

말 걸기 좀 꺼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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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원도 아니고.

파가니니 취향인가?

사실 파가니니가 여기 묻힌

내력은 복잡하다.

위키피디아를 번역해 보면:


1836년, 파가니니는 카지노를 설립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왔다. 카지노의 즉각적인 실패로 그는 재정적 파탄에 빠졌고,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악기들을 포함한 개인 소유물들을 경매에 부쳤다. 1838년 크리스마스에 그는 파리를 떠나 마르세유로 갔고, 짧은 체류 후 니스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 그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 1840년 5월, 니스의 주교가 파가니니에게 지역 본당 신부를 보내 임종성사를 집행하게 했다. 파가니니는 이 성사가 시기상조라고 여기고 거부했다.

일주일 후인 1840년 5월 27일, 57세의 파가니니는 신부가 소환되기 전에 내출혈로 사망했다. 이런 상황과 그에 대한 악마와의 연관설 때문에 교회는 제노바에서의 가톨릭 매장을 거부했다. 교회가 그의 시신을 제노바로 운구하는 것을 허락하기까지 4년이 걸렸고 교황에게 호소해야 했지만, 여전히 매장되지는 않았다. 그의 시신은 마침내 1876년 파르마의 한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1893년, 체코 바이올리니스트 프란티셰크 온드르지체크가 파가니니의 손자인 아틸라를 설득하여 바이올리니스트의 시신을 참관할 수 있게 했다. 이 사건 후, 파가니니의 시신은 마침내 1896년 파르마의 새로운 공동묘지에 재매장되었다.

온드르지체크는 드보르자크

바이올린 협주곡 초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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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명인기를 부르는 화살코.

이쯤 해서 훌라후프를 다시 본다.

라흐마니노프가 이 곡으로

만든 음악이 <파가니니 주제에 붙인 광시곡>.

그 유명한 18번째 변주.

이 곡을 쓴 곳은

루체른의 빌라 세나르.

세르게이와 나탈리아 라흐마노프의

머릿글자를 따서 SeNaR이다.

우정 갔는데 날짜를 잘 확인

안 해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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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녀오는 길은

너무 좋았다.

개 이름은 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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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빌라 세나르가 보인다.

노란색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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