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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골무일기

국면 전환

20세기 피아노 협주곡

by 정준호

십여 년 라디오 실황 중계를 하고 보니

자연스레 트렌드가 읽혔다.

피아노 협주곡을 놓고 보면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흔들리지 않는

철옹성이다.

슈만과 브람스도 꾸준히 연주된다.

그리그는 거의 듣지 못했다.

뜻밖에 차이콥스키 1번과

라흐마니노프 2&3번이라는

흥행 카드를 좀체 만나기 어려웠다.

아마 연주자들이 너무 식상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곡이 아니라 대놓고 좋아하는

무식한 청중의 반응이.

그 자리를 파고든 곡이

라벨의 협주곡,

프로코피예프 2&3번과

버르토크의 세 협주곡이다.

오랜만에 이 음반을 보니

당대 게임체인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프로코피예프의 20세기 협주곡이

차이콥스키의 고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곡임을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보여주었다.

그러나 원래 커플링은 차이콥스키가 아니다.

원반이 너무 어렵지 않나 우려한

노란 딱지가 다른 지휘자와 연주한

차이콥스키를 굳이 끌어 붙인 것이다.

원반 녹음 당시 아바도는 30대 중반

막 쇼팽 콩쿠르를 제패한

아르헤리치는 20대 중반이었다.

마르타, 라벨이 좋아, 프로코피예프가 좋아?

로버트 레이턴은 <그라모폰> 리뷰에서

프로코피예프 협주곡의 독주자를

“상대 팀 전체가 따라잡으려고 애쓰는

주도권을 쥔 비르투오소 축구 선수”로 묘사했다.

마르타는 샤를 뒤투아와 부부일 당시

EMI에서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들을

다시 녹음했다.

이때는 버르토크를 함께 묶었다.

아바도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

라벨도 한 번 더 녹음했다.

피아노 협주곡의 세대교체가

숨가쁘게 이뤄졌던 시대였다.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잡겠다고

맹렬히 추격했던 앵그리 영맨.

지금은 그 자리를 두고

랑랑, 왕유자, 다닐 트리포노프

등이 경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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