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피기 <이집트의 마리아>
피사의 캄포산토는 14세기에 세워진 묘역이다. 유명한 대성당과 사탑에 바로 접해 있다. 부온아미코 부팔마코(Buonamico Buffalmacco)가 묘지에 그린 벽화는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프란츠 리스트의 <죽음의 무도 Danse Macabre>를 낳은 <죽음의 승리 Trionfo della Morte>가 덧없는 삶에 대한 경종이라면, <테바이드 Tebaide>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환기였다. 테바이드란 이집트 테베 지역 사막에 은거했던 성인들을 말하는 조어이다. 수도원장 성 안토니오, 은둔자 성 바오로, 이집트의 성모 마리아가 대표적이다.
이집트의 마리아(5세기 전후)는 열두 살 무렵 집을 떠나 알렉산드리아에서 17년 동안 매춘부로 살았다. 그녀는 스물아홉 살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에 올라 뱃삯 대신 몸을 팔며 더욱 깊은 죄에 빠졌다. 그녀가 예루살렘 교회에 들어가려 할 때 보이지 않는 힘이 가로막았다. 그녀는 성모께 간청한 뒤에야 교회로 들어가 십자가 앞에서 뉘우치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 뒤로 마리아는 요단강 건너 사막으로 들어가 47년 동안 굶주림과 정욕, 마귀의 유혹과 싸웠다. 혹독한 고행 끝에 은총 속에 내적 평화와 성덕에 이른 마리아는 노 수도사 조시모를 만나 자신의 과거와 회개의 길을 고백하고 성체를 받는다. 다음 해 다시 성체를 청한 그녀는 사막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1년 뒤 찾아온 조시모는 그녀가 죽기 전 남긴 글귀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중세에 기록된 <교부들의 삶 Vitae Patrum>에 나오는 ‘이집트의 마리아 Maria egiziaca’ 이야기이다. 괴테는 <파우스트> 2부의 마지막 장면에 그녀를 등장시킨다. 먼저 막달라 마리아가 그분의 발을 향유로 적셨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의 입술을 적실 물을 드린 일을 얘기한다. 끝으로 이집트의 마리아가 노래한다.
거룩하게 봉헌된 그 장소를 두고,
그곳에서 주님을 모셨던 곳을 두고,
그 팔을, 문간에서
경고하며 뒤로 밀어낸 그 팔을 두고;
40년간의 참회를 두고,
사막에서 충실히 지켜온 그 참회를 두고,
축복받은 마지막 인사를 두고,
모래 위에 써놓은 그 인사를 두고!
이렇게 세 여인은 파우스트의 구원을 호소한다. 로베르트 슈만은 오라토리오 <파우스트의 장면>에,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 8번에 이 부분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탄원을 들은 영광의 성모가 파우스트의 시신을 하늘로 이끌도록 허락하고, 신비의 합창이 울려 퍼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
오토리노 레스피기(1879-1936)는 <교부들의 삶>보다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끌려 이집트의 마리아 전설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그는 클라우디오 과스탈라에게 삼면 제단화(Triptych)를 모델로 한 대본을 요청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출항하려는 선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매춘부 마리아는 멀리 떠나고픈 충동에 사로잡힌다. 순례자를 만난 그녀는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성지(聖地)로 가는 중이라는 그의 대답에 감명받은 소녀는 선원들이 자신도 데려다 줄지 묻는다. 순례자가 선원들에게 뱃삯을 제안해 보라고 하자, 그녀는 대신 자기 몸을 바치겠다고 말한다. 경악한 순례자는 그녀를 꾸짖었지만 정작 선원들은 마리아의 제안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인다. 배가 뜰 때 그녀는 바다 건너편으로 부르는 신비로운 목소리를 듣는다. (첫 번째 간주곡)
오페라에서 레스피기는 많은 옛 음악을 회고한다. 목관이 여는 도입부는 언뜻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상케 하지만 그처럼 막연한 고대가 아니라 이집트의 마리아 전설이 채록된 중세로 이끄는 듯한 음률이다. 순례자와 대화하는 마리아를 바로크풍의 하프시코드가 반주한다. 마리아를 저주하는 순례자의 노래가 어딘지 귀에 익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이것이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가운데 ‘먼 곳에서 In der ferne’와 같은 곡조임을 알았다.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쓴 가사를 보면 더욱 순례자의 심경과 닿아 있다.
슬프다, 도망치는 자여
세상 밖으로 나가는 자여!
낯선 곳을 헤매는 자
고향을 잊는 자
어머니의 집을 미워하는 자
친구들을 버리는 자
아아, 그들의 길에는
어떤 축복도 따르지 않는다!
그리워하는 마음이여!
눈물 흘리는 눈이여
끝없는 그리움이여
고향으로 향하는
끓어오르는 가슴이여
메아리치는 탄식이여
깜빡이는 저녁별이여
희망 없이 지는구나
속삭이는 바람들이여
부드럽게 물결치는 파도들이여
서두르는 햇살이여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나에게 고통으로
아아! 이 충실한 마음을 부순 그대여
도망자의 인사를 전해주오
세상 밖에서 온 인사를
첫째 연은 탄식을, 둘째 연은 절망을, 마지막 연은 호소를 담았다는 면에서 <이집트의 마리아> 전체를 예고하는 시처럼 보인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의미 부여일까? 그러나 순례자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원들과 뒤엉켜 항해를 시작하며 첫 에피소드가 끝날 때 같은 선율이 간주곡으로 울려 퍼진다. 나는 레스피기가 슈베르트의 그림자를 끌어들였다는 심증을 더욱 굳혔다. 실제로 이 선율은 오페라 전체에 걸쳐 라이트모티프처럼 나타난다.
두 번째 에피소드
십자가 현양(顯揚) 축일, 가난한 남자와 나병환자가 십자가에 입 맞추고 축복받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려 한다. 성가 ‘왕의 깃발들이 나아간다 Vexilla Regis prodeunt’가 울리며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마리아도 눈먼 여자와 성전에 도착한다. 앞선 순례자가 나타나서 신자들을 따라 들어가려는 그녀를 저주한다. 문 쪽으로 몇 걸음 내디딘 뒤, 마리아는 자신을 붙잡는 신비로운 힘을 느낀다. 황홀한 환희에 사로잡힌 그녀는 잠시 나타난 하나님의 천사를 보고 땅에 엎드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뒤 성전에 들어간다. (두 번째 간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