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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밤 (1/2)

알프레드 드 뮈세

by 정준호

알프레드 드 뮈세(1810-1857)는 빅토르 위고, 알프레드 비니와 더불어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였다. 비단 시뿐만 아니라 희곡 <로렌자초>, <마리안의 변덕> 그리고 소설 <세기아의 고백 La Confession d’un enfant du siècle>으로도 비범한 재능을 떨치고 갔다. 46세의 그리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이미 이십 대 중반까지 작품 대부분을 썼고, 그 뒤로는 스스로 ‘세기의 병’이라 불렀던 우울과 권태, 신경 쇠약으로 점점 퇴락했다. 그 병을 얻은 계기는 조르주 상드(1804-1876)라는 여성 작가와 나눈 불꽃같은 사랑과 이별이었다. <세기아의 고백>의 앞부분은 뮈세 자신이 겪은 격정적 사랑에 관한 내용이다.

뮈세는 여섯 많은 상드와 1833년 6월 17일 파리의 한 살롱에서 처음 만났고, 곧바로 연인이 되었다. 뮈세는 17세에 빅토르 위고의 낭만주의 문학 결사 ‘세나클’(‘다락방’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의 은유이다)의 일원으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상드는 이미 한 차례 결혼에 실패했고, 많은 남성 편력을 거쳐 뮈세와 만나기 직전에도 프로스페르 메리메(뒷날 <카르멘>을 쓸)와 관계가 있었다. 또 뮈세와 2년의 짧은 연애 뒤로 프레데릭 쇼팽과 유명한 사랑을 이어간 풍운과 같은 여걸이었다.

프랑스 영화인데 영어로 제작. 결과는 폭망

뮈세와 상드는 1833년 12월 12일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났다. 12월 31일 베네치아에 도착할 때까지 상드는 이질과 고열로 고통받았다. 상드는 베네치아에서도 2주 동안 더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뮈세는 그동안 밤의 쾌락을 만끽했다. 이탈리아에서 내내 한눈판 뮈세를 향한 실망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이번에는 뮈세가 장티푸스에 걸려 누웠다. 측은지심에 원망을 거둔 상드는 극진히 그를 간호했다. 그러나 뮈세를 진찰하던 젊은 피에트로 파젤로라는 의사가 상드에게 열정을 고백했다.

DSC03021.JPG 뮈세와 상드 외에도 숱한 명사가 다녀간 베네치아 다니엘리 호텔

병세가 호전된 뮈세는 3월 29일 두 사람을 남긴 채 파리로 돌아갔다. 8월 14일 상드가 파리로 왔을 때는 파젤로와 함께였다. 열정이 식지 않은 뮈세와 상드는 다시 만나 서로를 비난했고, 죽을 만큼 괴로워했다. 파국을 인정하고 각자 파리를 등졌지만, 뮈세는 다시 상드에게 편지했고, 10월 20일에 두 사람은 다시 합쳤다. 설 자리가 없어진 파젤로는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재결합은 순탄치 않아 둘은 싸우다 지쳐 11월 9일 결별했다. 슬픔에 잠긴 상드가 머리카락을 잘라 보내며 화해를 시도하자, 뮈세도 마음을 열었다. 1835년 1월에 다시 연인이 되었지만, 이번에도 실패였다. 3월 6일 이들은 영원히 헤어졌다.

뮈세의 묘, 파리 페르 라 셰즈

뮈세는 <세기아의 고백>에 이 사랑을 담았고, 상드는 뮈세 사후 <그녀와 그 Elle et lui>로 응수했다. 뮈세의 형 폴은 상드가 관계를 왜곡했다며 <그와 그녀 Lui et elle>로 항변했다. 뮈세와 사귀던 루이즈 콜레도 <그 Lui>로 힘을 보탰으니, 이 네 편의 소설을 ‘베네치아 이야기’라 부른다.

시선 제목으로 쓸 만큼 대표작이다

뮈세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쓴 또 하나의 걸작이 네 편의 밤의 연작 <오월의 밤 La Nuit de mai>(1835), <십이월의 밤 La Nuit de décembre>(1835), <팔월의 밤 La Nuit d'août>(1836), <시월의 밤 La Nuit d'octobre>(1837)이다. 네 장시는 모두 ‘시인’이 ‘뮤즈’ 또는 ‘환영’과 나눈 대화 형식으로, 내면 투쟁의 생생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보고서이다. 먼저 <오월의 밤>에 시인은 고통이 너무 큰 나머지 침묵할 수밖에 없음을 토로하고, 뮤즈는 그런 그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북돋는다.

앙토냉 메르시에, <뮈세와 뮤즈>, 파리 몽소 공원

<십이월의 밤>에 시인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검은 옷의 존재를 떠올리며 마침내 그가 ‘고독’임을 떠올린다. <팔월의 밤>에 뮤즈는 창작을 버리고 사랑에 빠진 시인을 질책한다. 그러나 시인은 예술에서 길을 잃기보다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죽겠다”라고 선언한다. <시월의 밤>에 시인은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새벽녘에야 나타난 연인에게 화를 낸다. 뮤즈는 “인간은 도제이며, 고통이 그의 스승”이라고 타이르며 용서를 권한다. 시인은 과거를 용서하며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그는 뮤즈의 노래를 들으며 첫 번째 햇빛을 받아 다시 태어날 것을 기대한다.

안토니오 베졸라, <우상>, 밀라노 현대 미술관

낭만주의의 화신 뮈세는 상드와 나눈 사랑의 파국을 딛고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리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다만 실제로 그렇게 살지는 못한 채 알코올 중독과 심신쇠약 끝에 심장마비로 삶을 마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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