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월의 밤 (2/2)

루제로 레온카발로

by 정준호

(이어서)

루제로 레온카발로(1857-1919)는 알프레드 드 뮈세가 세상을 떠나던 해에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세에 산 피에트로 아 마젤라 음악원을 졸업했고 19세에 첫 오페라 <채터턴 Chatterton>을 작곡했을 만큼 조숙했다. 뮈세의 동료 프랑스 문인 알프레드 비니의 원작 희곡 <채터턴>은 뮈세의 <세기아의 고백>과 같은 1835년에 초연되었고, 뮈세와 상드는 마지막으로 결합했을 때 이 공연을 함께 보았다.


토머스 채터턴(1752-1770)은 낭만주의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실존 인물이다. 문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채터턴은 10대 초반부터 15세기 수도사 ‘토마스 롤리’라는 가상의 인물이 쓴 것처럼 중세 시들을 위조했다. 완벽하게 모방한 고풍스러운 언어와 문체에 세상은 감쪽같이 속았다.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놀라운 문학적 상상력의 발현이었음에도, 채터턴은 17세의 나이에 런던에서 가난과 절망 속에 비소를 먹고 자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죽은 뒤 더 유명해졌다. 워즈워스는 그를 ‘훌륭한 소년’이라 불렀고, 키츠는 그에게 시를 헌정했다.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그는 사회에 의해 파괴된 천재의 상징이었다.

헨리 월리스, 채터턴의 죽음, 테이트 브리튼

레온카발로가 시인 채터턴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음악 못지않게 문학에도 뒤지기 싫은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볼로냐 대학교에서 조수에 카르두치(뒷날 이탈리아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에게 배우며 20세에 문학 학위를 받았다. 그런 레온카발로를 1879년 이집트 정부의 고위 관료로 있던 숙부 주세페가 불렀다. 레온카발로는 이집트 왕실의 개인 음악 교사가 되었다. 베르디가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해 <아이다>를 작곡 초연한 직후였다. 그러나 곧 발발한 영국과 이집트 사이의 전쟁으로 정세가 험악해지자 그는 파리로 탈출해 몽마르트르에 새 둥지를 틀었다.

몽마르트르 성심 성당, 빵집 아님

보헤미안의 삶을 만끽하던 레온카발로는 뮈세의 <오월의 밤>에 깊이 빠져든다. 그는 뮤즈와 시인의 대화로 된 이 시를 교향시로 작곡하기로 한다. 교향시란 이탈리아 작곡가에게 거의 전례 없는 방식이었고, 성악이 포함된 교향시는 본산인 독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었다. 그는 분량이 많은 뮤즈의 부분을 오케스트라 단독 악장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시인의 부분은 테너의 노래로 작곡했다. 1886년 그의 나이 29세에 작곡한 <오월의 밤>은 뒤따르는 걸작들에 악상을 제공하는 수원(水源)이 된다. 출세작인 <팔리아치>(1892)와 바그너에 영향을 받은 야심작 <메디치>(1893) 그리고 푸치니와 경쟁한 <라보엠>(1897)이 대표적이다.

레온카발로는 ‘사자와 말’이란 뜻이니 스스로 물어뜯는 형국이다.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레온카발로에게 타지에서 명성을 안겨줬고, 이후에 쓸 작품의 자양분이 된 곡이지만, <오월의 밤>은 구스타보 포르타가 2003년에 녹음할 때까지 거의 묻혀 있었다(지금은 구할 수 없는 1990년 살바토레 피시켈라의 녹음을 제외하고). 그 뒤로 2010년 플라시도 도밍고가 녹음해 좀 더 알려졌고, 여기까지가 디스코그래피 전부이다. 도밍고는 2007년에 나온 콘래드 드라이든의 레온카발로 전기의 추천사를 쓰면서 <오월의 밤>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뮈세의 시에 붙인 레온카발로의 음악과 그것이 뒷날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살펴보자.

관현악 부분(뮤즈)은 구스타보 포르타의 음반, 성악(시인)은 도밍고의 음반을 링크했다. 파바로티가 광대로 찬조 출연한다. 음악을 안 들을 거면 여기까지만 보면 된다. 음악을 들을 거면 늙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하물며 올린 놈도 있는데...

바그너의 <탄호이저> 가운데 ‘베누스의 동굴’을 연상케 하는 오케스트라는 할미새가 알리는 봄의 기운과 더불어 시인이 깨어나기를 주문한다.


1. 뮤즈

시인이여, 네 류트를 잡고 내게 입맞춤을 다오. 들장미 꽃은 꽃봉오리들이 피어나는 것을 느끼고, 오늘 밤 봄이 태어나며, 바람은 불타오를 것이고, 할미새는 새벽을 기다리며 처음 돋아난 초록 덤불에 앉기 시작하네. 시인이여, 네 류트를 잡고 내게 입맞춤을 다오.

처음에 시인은 뮤즈를 알아보지 못한다. 뮤즈의 주문대로 깨어난 음성은 마스네의 베르테르, 바로 그이다.


2. 시인

계곡이 얼마나 어두운가! 베일에 싸인 형상이 저 멀리 숲 위를 떠도는 줄 알았네. 그것은 초원에서 나왔고, 그 발은 꽃핀 풀을 스치고 지나갔네. 기묘한 환상이었네. 그것은 흐릿해지고 사라지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떠오르게 하는 관현악이 시인에게 사랑을 고취한다. 피나무(Lindenbaum) 아래는 사랑과 만남의 장소이다. 동시에 이 멜로디는 뒷날 레온카발로가 쓰는 가곡 <나비 Papillon>에서 다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