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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골무일기

시간을 담은 골무

2025 이집트 기행 (마지막)

by 정준호

2025년 11월호 노블레스 매거진 게재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 첫 부분에서 빌헬름은 산길에서 나귀를 끌고 가는 사나이를 만난다. 나귀에는 갓난아기를 안은 예쁜 부인이 타고 있었다. 빌헬름은 그토록 그림에서 자주 보았던 ‘이집트 피신’이 눈앞에 펼쳐진 것만 같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나는 이 구절에서 화보로 본 렘브란트의 그림을 떠올리는 공감각으로 만족했다.

La_Fuite_en_%C3%89gypte_Rembrandt_Tours.jpg 투르 회화 박물관

‘Flight into Egypt’라는 영어 제목으로 본다면 마치 이집트 취항 여객기라는 뜻 같지만, 이는 헤롯 왕의 신생아 학살을 피해 요셉과 마리아가 갓난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피한 일을 말한다. 성가족의 이집트 피신은 성탄의 마지막 퍼즐이며, 정치적 박해에 내몰린 구사일생의 가족애는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정신에 부합한 주제였다. 실제 괴테가 보았던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조토, 카라바조, 엘스하이머? 숱한 그림으로만 보던 끝에 마침내 이집트의 기독교 성지에 도착했다. 성 세르기우스와 바쿠스 교회는 성가족이 피난 당시 머물렀다는 동굴 위에 지었다. 지하 예배당에서 두려움과 피로에 지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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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1_194900.jpg 조토,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DSC02567.JPG 엘스하이머, 뮌헨 알테피나코테크
20250227_093820.jpg 카이로 성모 마리아 콥트 정교회의 <이집트 피신> 모자이크

이집트의 기독교 신자인 콥트교도는 현재 1천8백만 명쯤으로 이집트 인구 가운데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작지 않은 규모이다. 그런데 이들의 삶이 극단적이다. 소수 상류층은 회계사, 의사, 약사와 같은 고소득층인데, ‘자발린’이라 부르는 하층민은 쓰레기 수거와 재활용으로 먹고산다. 자발린의 쓰레기 재활용률은 80퍼센트이다. 서유럽은 20퍼센트쯤이다. 콥트교도가 없다면 카이로 시내는 쓰레기장일 것이다. 헤롯이 죽을 때까지 수개월 또는 길어야 1년 정도로 추정되는 성가족의 이집트 체류와 오늘날 그들을 믿는 자발린의 삶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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