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과 홀로페르네스 (1)
아브라함의 증손이자, 이삭의 손자이며, 야곱의 서자인 요셉은 성서 전승에 따르면 기원전 1600년 무렵 이집트에서 재상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 요셉은 자신의 유해를 아버지가 처음 정착했던 세겜(Shechem)에 가져가 묻어달라고 형제들에게 유언했다. 약 300년 뒤인 기원전 1290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했다. 모세가 죽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까지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을 헤맸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기원전 1250년 이집트에서 가져온 요셉의 유골을 세겜에 이장(移葬)했다.
이후 열두 지파(支派)가 결합해 국가 체계를 갖추면서 앞선 이야기와 결합한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각 지파를 이루는 것이다. 이때 필력(筆力)이 개입했다. 열두 아들 가운데 지파를 이루는 것은 열 형제이다. 레위와 요셉은 제외되었다. 둘은 각각 십이 분의 일이 되기에 너무 컸다. 야곱은 생전에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입양했다. 요셉의 지분을 둘로 나누어 열둘을 맞췄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정착한 곳은 사마리아(Samaria)였다. 뒷날 모세가 십계를 가지고 시나이산에서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은 황금송아지를 우상으로 받들고 있었다. 기가 찬 모세가 꾸짖으며 야훼 편에 설 자를 부르자 그를 배출한 레위 지파만 답했다. 그 뒤 레위 지파는 대대로 제사장이 되었다. 열두 지파에 고루 파견되어 종교를 관장한 것이다.
기원전 1175년부터 약 500년 동안 철기 문명을 가진 블레셋(팔레스타인)인들이 유대를 겁박했다. 델릴라의 유혹에 넘어갔던 삼손이 다몬 신전을 무너뜨리고, 골리앗의 목을 벤 다윗이 왕이 된 시기이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죽은 뒤 왕국은 둘로 갈라졌다. 북쪽의 이스라엘은 사마리아가, 남쪽의 유다는 예루살렘이 중심이었다. 서로 누가 더 정통성이 있는가를 놓고 대립했지만,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 제국의 침략에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다른 민족과 섞이면서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남유다는 아시리아에 굴복했지만 망하지는 않았고, 6세기 바빌론에 정복될 때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바빌론에 끌려간 유다 포로들은 강둑에 앉아 쉬며 금빛 날개를 타고 고향에 돌아가 형제자매를 다시 볼 날을 꿈꿨다. 바빌론도 결국 페르시아에게 다음 세기를 넘기면서 유다인들은 고향에 돌아와 성전(聖殿)을 다시 일으켰다. 그 뒤로 사마리아인은 순수하지 못한 혈통의 실체 없는 부족으로 낙인찍혔다.
기원전 5세기 중반 크세르크세스가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이끌 때 유대인 에스더가 그의 황후가 되어 백성을 보호했다. 페르시아는 오래지 않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멸망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그리스 제국은 양분되었다.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4세 황제 때 예루살렘 성전은 모독당한다. 마카베우스의 유다가 반란을 이끌었다.
당대의 폭군 안티오코스 4세를 비판하기 위한 구약성서의 유딧서와 다니엘서가 이때 씌었다. 주인공 유딧과 다니엘 모두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왕 때 인물이지만, 유딧서의 저자는 네부카드네자르를 니느웨의 왕이라 불렀다. 이야기의 허구성을 강조해 역설적으로 현실 비판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때 세겜도 문학적 가상의 도시 베툴리아(Bethulia)로 불렀다. 적장의 목을 벤 유딧은 유다의 여성형으로 일부 학자는 그녀를 마카베우스의 유다와 동일 인물로 본다.
기원전 63년 로마가 지중해의 주인이 되면서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한다. 서기 30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나사렛으로 돌아와 자란 예수가 성인이 되어 열두 제자를 이끌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예수는 야곱이 처음 물을 길은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어찌 생각하는지 아는 그녀가 꺼렸지만, 예수는 개의치 않았고 그녀에게 영생을 주는 샘을 약속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을 예로 들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자신의 핵심 가르침을 설교한다. 강도에게 당해 길에 버려진 상인을 레위 사람도 모른 척 지나쳤지만, 측은지심을 가진 사마리아인이 구해줬다는 이야기이다.
유딧서가 베툴리아라 바꿔 불렀던 사마리아, 예수가 세겜 시대로 복권해 준 사마리아는 오늘날 다시 나블루스(Nablus)라 불린다.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세겜에 신도시를 건설했다. 라틴어로 신도시 ‘Flavia Neapolis’의 네아폴리스가 음운변화로 나블루스가 되었으니,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같은 어원이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70㎞ 떨어진 사마리아 땅 팔레스타인 자치령에 야곱의 우물과 그의 아들 요셉의 무덤이 있다. 이렇게 해서 요단강 서안에서 일어난 유딧과 홀로페르네스의 이야기를 할 채비가 되었다.
이틀 동안 공부한 결과이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