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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an 26. 2019

바티칸 (3) - 감춰진 공포가 더 무섭다

라오콘

내 여행의 목적은 하나이다. 음악이 탄생한 곳에 음악을 되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것으로 그 장소와 음악 그리고 어쩌면 내가 완성된다. 내가 가는 곳에 음악이 있다. 2017년 4월 이탈리아에서 들었던 음악을 회고한다. 바티칸의 두 번째 코스인 비오와 클레멘트 박물관은 <라오콘>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피나코테카를 나서 큰 솔방울이 서 있는 작은 광장에 발을 디딘다. 솔방울 분수는 원래 판테온 옆에 있던 것을 이곳에 옮겨 온 것이다. 이 광장을 비롯해 바티칸의 곳곳은 미켈란젤로의 라이벌이자, 라파엘로의 스승이던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가 설계했다. 로마의 대표 수종이 소나무이고, 로마에는 5천 개의 분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솔방울 분수가 또 있을까?


이쯤 되면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가 떠오른다. 그는 이른바 ‘로마 3부작’을 통해 독창적인 관현악을 선보인 사람이다.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는 각기 그 곡이 지정한 곳에 가서 듣기로 하자.


광장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구리 지구본이 있다. 이탈리아 조각가인 아르날도 포모도로가 만든 ‘지구 속의 지구’ 연작이다. 다른 작품이 UN 본부를 비롯한 십여 군데 명소에 더 있을 만큼 유명한 조각가이다. 나는 모나코 몬테카를로 오페라 극장 앞에서 그가 만든 손바닥 위에 놓인 지구본을 본 적이 있다.


포모도로는 파스타집 메뉴판에 빠지지 않는 단어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토마토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포모도로의 원뜻은 황금사과이니, 이탈리아 사람들이 토마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아르날도 포모도로가 이 조각을 만든 것은 1960년 로마 올림픽 때이다.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만든 뜻도 보람 없이 지구는 정말 저런 모양이 되어 가고 있다. 형태뿐만 아니라 색깔 마저도! 건너편에 보이는 솔방울이 특유의 치유와 정화력으로 살려주길 기대한다.

조각가인 포모도로는 오페라 무대 제작도 많이 했다. 자신의 시그니처인 지구본 디자인은 1982년 로마 오페라를 위해 만든 로시니의 오페라 <세미라미데> 무대에도 등장한다.


또 다른 연작인 <신화의 형태> 또한 많은 무대에 사용되었다. 1988년 시에나에서 겐나디 로주네스트벤스키의 지휘로 공연한 스트라빈스키의 <오이디푸스 왕>과 2002년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이 선보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카프리치오>, 2005년 라이프치히 오페라의 베르디 <가면무도회>가 대표적이다. 만일 미켈란젤로나 그의 후배 벤베누토 첼리니가 오페라의 시대를 살았다면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시조가 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첼리니가 자신의 삶이 오페라로 만들어졌음을 알았다면 호탕하게 웃어젖히지 않았을까! 더욱이 이런 협업은 오페라라는 말이 작품을 뜻하는 ‘오푸스’의 복수형임을 떠올리면 더욱 당연하다.


포모도로가 만든 <세미라미데>의 무대
오이디푸스 왕을 위한 무대
포모도로의 무대 작업을 보여주는 동영상

다음 코스는 교황 클레멘스 14세와 비오 6세의 이름을 딴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이다. 고대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는 이곳을 상징하는 조각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다. 트로이의 제사장이던 라오콘은 그리스 군이 두고 간 목마를 성에 들여놓으면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목마에 숨어서 성에 잠입하려 한 오디세우스의 꾀를 간파한 것이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그리스 편의 포세이돈 신이 거대한 바다뱀을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물고 갔다는 이야기이다.


16세기 초 율리우스 2세와 미켈란젤로 전성기에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가까운 포도밭에서 이 조각이 발굴되었다. 플리니우스가 <박물지>에서 극찬했던 조각이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알린 것이다. 달려간 미켈란젤로는 자기 기술로는 부서진 곳을 복원할 수 없다며 경탄했고, 교황은 이것을 구입해 바티칸 궁전으로 옮겼다.


영화 <고뇌와 환희>를 보면 교황이 대개 뭔가 돈이 필요할 때면 귀족의 어린 자제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는 대가로 헌금을 받곤 한다. 그런 성직매매가 극에 달한 것은 율리우스 2세의 맞수였던 스페인 태생의 교황 알레산드로 6세 때부터였다. 교황 자신이 다른 추기경들을 매수해 발렌시아 태생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지상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바로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의 아버지가 알렉산데르 6세 로드리고 보르자였다.

베를리오즈의 악보에 공을 돌리는 지휘자 존 넬슨 © Gregory Massat

<라오콘>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를 모방한 르네상스의 완벽한 모델이었다. 르네상스를 모범으로 고전의 부활을 꾀한 독일의 문예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이 다시 한번 그 중요성을 부각했다. 라오콘의 고통을 격정적으로 묘사한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보다 찰나의 냉정한 침착성으로 포착한 조각이 더 위대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후배 극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은 빙켈만을 반박해야 주가가 올라갈 차례였다. 레싱의 많은 비극에서 보여주듯이 인간은 고통에 처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며, 고통이 크면 클수록 공포나 보상도 크게 마련이다.


음악으로 거의 유일하게, 그리고 정말 압도적으로 이 광경을 표현한 사람이 엑토르 베를리오즈이다. 그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의 전반부가 바로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을 그린다. 그런데 베를리오즈는 실제 라오콘의 재앙을 보여주는 대신 그것을 본 트로이 사람들의 공포를 통해 끔찍함을 표현한다. 팔중창과 합창의 ‘끔찍한 재앙이다Châtiment effroyable’를 지휘하는 존 넬슨의 모습이 마치 “라오콘이 이랬다”라고 연주자들에게 주문하는 듯하다.

2018년 그라모폰상 오페라 부문상을 받은 녹음의 실황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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