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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an 26. 2019

바티칸 (6) - 남자들의 사랑 이야기

아테네 학당

내 여행의 목적은 하나이다. 음악이 탄생한 곳에 음악을 되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것으로 그 장소와 음악 그리고 어쩌면 내가 완성된다. 내가 가는 곳에 음악이 있다. 2017년 4월 이탈리아에서 들었던 음악을 회고한다. 라파엘로의 방을 나서려다 다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어째 변죽만 울리고 주인공은 소개하지 않는 느낌이다. <아테네 학당>을 보지 않고 라파엘로의 방을 얘기할 수 없으리라! 발길을 돌린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각기 <티마이오스>와 <윤리학>을 손에 들고 아네테와 아폴론이 새겨진 기둥 사이로 나온다. 발아래 계단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일조권을 놓고 시비했다는 디오게네스가 뭔가에 몰두해 있다. 오른쪽 맨 앞에는 컴퍼스를 든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 또는 아르키메데스가 제자들에게 동그라미 그리기 시범을 보인다. 그 뒤에 지구본을 든 프톨레마이오스와 공을 든 자라투스트라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볼링 선수들 같다. 그들 곁에 유일하게 그림 밖을 쳐다보는 검은 모자의 젊은이가 라파엘로 자신이다.

이런 철학의 아버지들을 놓고 어떤 음악을 떠올려야 할까? 아마도 피타고라스가 있었다면 모든 ‘조화로운 음악’의 아버지로 꼽혔을 것이다. 만물의 근원을 수라고 생각한 그는 그 에누리 없는 셈으로 음정(音程)을 계산했다. 그 비례가 조화로워야 인간의 영혼이 정화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꼭 피타고라스가 아니라도 그림에 있는 철학자들은 모두 공감했으리라. 빈 필하모닉이 수년 째 신년 음악회에서 가장 미는 곡이 있다. 요제프 슈트라우스가 쓴 <천체의 음악Sphärenklänge>이라는 곡이다.

밀기는 미는데 큰 호응은 없다. 원래 좋은 것은...

그러나 이 정도 왈츠로는 라파엘로의 도량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쓴 바이올린 협주곡인 <플라톤의 향연에 붙인 세레나데>가 좋겠다. 아테네 학파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플라톤이다.

안젤름 포이어바흐의 <향연>

<향연>은 사랑을 논한 대화집이다. 풍류가 아가톤의 집에 모여 술자리를 갖던 친구들이 각자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이 줄거리이다. 고대 그리스는 현명한 어른 남성이 젊은 청년의 멘토가 되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였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소크라테스가 이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잘 생기고 용맹하고 머리도 좋은 훈남 청년 알키비아데스가 자신의 멘토인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것으로 내용이 마무리된다. 번스타인은 쿠세비츠키 재단의 위촉으로 1954년에 이 곡을 썼다.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작곡가 자신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아이작 스턴의 협연으로 초연된 이래 가장 사랑받는 ‘현대’ 음악이 되었다.

<향연>에 여성은 없었는데...

다섯 개 악장에 일곱 논객의 이름이 붙어 있다.


1. 파이드로스와 파우사니아스 (0:25) : 사랑의 신 에로스에 대한 예찬이다

2. 아리스토파네스 (7:07) : 희극 작가이지만 여기서는 사랑의 낭만적인 면을 얘기한다

3. 에릭시마코스 (11:56) : 의사로서 사랑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육체적인 조화에 대해 짧게 말한다.

4. 아가톤 (13:35) : 집주인이 사랑의 장점에 대해 온화하고 서정적으로 설명하는 악장이다.

5.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20:43 / 24:45)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멘토인 디오티마에게 들은 대로, 모든 사랑은 겹핍의 충족이며 그 가장 고결한 형태는 지혜에 대한 사랑, 곧 철학이라고 얘기한다. 그때 술 취한 꽃미남 알키비아데스가 흥청거리며 들어와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며 주연을 고조시킨다.


이제 라파엘로의 방들을 나서는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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