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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an 26. 2019

바티칸 (7) - 시스티나를 해킹한 모차르트

시스티나 예배당

내 여행의 목적은 하나이다. 음악이 탄생한 곳에 음악을 되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것으로 그 장소와 음악 그리고 어쩌면 내가 완성된다. 내가 가는 곳에 음악이 있다. 2017년 4월 이탈리아에서 들었던 음악을 회고한다. 바티칸의 하이라이트 시스티나 예배당에 들어선다.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이제는 전 세계 어딜 가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손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스티나 예배당에서만큼은 모두가 그간 빠져나왔던 거북목을 교정하려는 듯이 고개를 쳐든다. 더욱이 옆사람과의 대화나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휴대전화는 꺼내들 필요도 없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심리학자인 로빈 윌리엄스가 빈민가에서 자란 천재 맷 데이먼을 치료하며 한 말이 생각난다. “넌 머리로만 아는 미켈란젤로에 대해 날 가르치려 들 테지만, 정작 시스티나 예배당의 공기는 숨 쉬어 보지도 못했지?” 다른 곳은 아니더라도, 시스티나 예배당은 공개되는 동안 한 번쯤 들어와 볼 필요가 있다.

최후의 심판과 함께 미켈란젤로가 그린 부분

앞서 보았듯이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데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 자꾸 조각가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지 투덜거릴 정도였고, 프레스코를 완성하는 데도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일이 걸려 율리오 2세 교황을 애태우게 했다.


예배당의 벽면은 미켈란젤로 이전에 이미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시뇨렐리, 로셀리 같은 선배 화가들이 그린 벽화가 있었다. 북쪽 벽은 그리스도의 행적들이 묘사되어 있고, 남쪽 벽에는 모세의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다.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보티첼리의 화풍이 가장 낯익다.

보티첼리가 그린 유혹을 시험받는 그리스도
역시 보티첼리의 모세의 삶

그리고 정면 제단 위로 보이는 것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다. 이 벽화는 율리오 2세가 아닌 클레멘스 7세의 위촉으로 그린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최후의 나팔이 울리는 심판의 날 죽은 자의 육신이 부활하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하단에는 단테가 <신곡>에서 언급한 저승의 뱃사공 카론도 보인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조화, 바로 르네상스 정신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담에게 생명을 준 조물주의 모습도 제우스를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간을 초월한 조물주가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는데 그 스스로가 노인일 수 있겠는가?

만년의 미켈란젤로 클레멘스 7세의 위촉으로 그린 벽화
베르디의 <레퀴엠> 가운데 '진노의 날'

다시 천장으로 돌아가면 중앙에 바로 그 상징적인 아담의 탄생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전에 빛과 어둠을 나누고 태양과 달과 행성을 만들고 바다와 육지를 나눈 위업이 묘사되어 있다.

해와 달의 탄생
파스텔톤을 좋아한 하느님

여기까지 이야기는 요제프 하이든이 작곡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Die Schöpfung>에 장엄하게 펼쳐진다. 특히 카오스를 묘사한 시작 부분은 마치 낭만주의 시대 화성을 예고하는 듯이 오묘하다.

레오나르도 가르시아 알라르콘이 지휘하는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과 합창단의 전곡 공연

창조의 위업을 찬양하고 높은 뜻에 감사하는 각 장의 피날레는 미켈란젤로의 장관에 부끄럽지 않은 음악이다.

뭉크의 벽화가 그려진 노르웨이 아울라 대학의 <천지창조>

미켈란젤로는 이어서 이브의 탄생과 낙원의 추방, 그리고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그렸다. 그런데 사이에 빠진 이야기가 있다. 바로 추방된 아담과 이브가 인생의 고통을 느끼면서 카인과 아벨을 낳고, 카인이 시기심에 아벨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대목이다. 성서에서 가장 슬픈 대목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이 빠진 부분을 음악으로 채워 넣고 싶다. 나폴리 악파의 창시자인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오페라 <첫 번째 살인Il primo omicidio>이다. 마침 2019년 1월 24일 파리 오페라가  르네 야콥스의 지휘로 이 곡을 무대에 올린다. 일찍이 이 곡의 녹음으로 그 진가를 알렸던 선구자이다. 다가올 비극을 예감하는 듯한 이브의 아리아는 스카를라티의 후배 작곡가 페르골레시의 <슬픔의 성모>를 떠오르게 한다.

파리 오페라가 만든 예고편: 아담과 이브의 자녀에게 일어난 일을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했다
낙원의 추방
대홍수

헨델은 기악에 대해 코렐리에게 배운 만큼 성악에 대해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에게 많은 것을 얻었다. 알레산드로의 아들 도메니코 스카를라티는 헨델과 같은 해에 태어났고, 헨델이 로마에 갔을 때 두 사람이 건반에 앉아 실력을 겨뤘던 기록이 있다. 사람들은 하프시코드에서는 스카를라티가, 오르간에서는 헨델이 더 앞섰다고 증언했다.


프레스코의 소재에 관련된 음악을 찾는 데 그친다면 시스티나 예배당 성가대가 섭섭할 것이다. 6세기부터 활동한 명실상부 세계 최고(最古)의 음악단체이다. 팔레스트리나, 조스캥 데프레, 알레그리와 같은 대표적인 르네상스 다성 음악가들이 성가대에서 활동했다. 성가대원은 벽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2004년 예배당의 복원 과정에서 한 연구원이 조스캥 데프레가 새긴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JOSQUINJ" (Photo by Evan MacCarthy)

조스캥 데프레가 로마에 머물 시절에 쓴 곡이 <미사, 바다의 별이신 성모Missa Ave maris stella>이다. 당대에 널리 불리던 선율을 차용해 지은 미사 중의 하나이다. 이런 미사를 지은 사람이 벽에 자기 이름을 새겼다니 웃음이 나온다.  

네덜란드 카펠라 프라텐시스의 노래. 프라텐시스는 데프레의 라틴어 표기이다.

조스캥은 율리오 2세 교황 즉위(1492년) 3년까지 로마에 체류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가 1508년부터 1512년까지 작업한 천장화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세기 뒤인 1638년에 <미제레레>를 작곡한 그레고리오 알레그리는 <최후의 심판>까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예배당을 다 보았을 것이다. 교황청은 <미제레레>의 사보(寫譜)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시스티나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 1770년, 14세의 모차르트가 예배당을 방문할 때까지. 소년은 음악을 한 번 듣고 모두 외워 악보에 옮긴 뒤, 다음날 다시 한 번 들으며 수정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시스티나에서 노래한 <미제레레>의 후반부
바티칸 밖에서 처음 출판된 영국에서 전곡을

너무 묵직한 곡들을 많이 들었으니, 시스티나 예배당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서려면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를 청해 들어야겠다. 그의 음악을 정리한 레이프 커크패트릭이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 등 비범한 피아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했던 작곡가이다.

니컬러스 케이지가 <캐스트 어웨이>로 나온 것 같은 장 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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