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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an 26. 2019

바티칸 (8) - 베드로의 열쇠는 두 개

성 베드로 사원

내 여행의 목적은 하나이다. 음악이 탄생한 곳에 음악을 되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것으로 그 장소와 음악 그리고 어쩌면 내가 완성된다. 내가 가는 곳에 음악이 있다. 2017년 4월 이탈리아에서 들었던 음악을 회고한다. 사도 베드로가 순교한 곳에 가톨릭의 본산이 들어섰다.


드디어 교황 궁전을 나와 가톨릭 교회의 상징이랄 베드로 사원에 들어선다(사실 로마 대교구의 으뜸 성당은 성 베드로가 아닌 성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이다. 내가 찾았을 당시에는 보수 중이었기에 뒷날을 기약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그리스도의 으뜸 제자였던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교회의 설립을 명했다. 그러나 이후 1천 년 동안 교황의 거처와 중심 교회는 라테라노 궁전과 성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이었다.

14세기 말 교황이 아비뇽에서 돌아온 뒤에 폐허가 된 성 베드로 성당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콜로세움에서 2500여 개의 돌을 가져다 성 베드로 성당을 재건하려 했다. 지지부진하던 건설에 박차를 가한 사람 또한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 곧 율리오 2세 교황이다. 그 뒤로 15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오늘의 모습을 갖춘다. 일단 토대를 다진 사람은 세 거장이다. 브라만테와 그의 제자 라파엘로, 그리고 라파엘로의 때 이른 죽음 뒤에 미켈란젤로가 설계를 맡았다.

브라만테의 설계도
제자 라파엘로가 변경한 설계
라파엘로 사후 작업을 맡은 미켈란젤로의 도면

처음 브라만테가 정방형으로 시작한 것을 라파엘로가 십자가형으로 확대했고, 미켈란젤로가 이를 더욱 다듬은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미켈란젤로는 당대 최고의 난제였던 지붕의 돔을 덮는 일을 완성해야 했다. 한 세기 전에 피렌체의 브루넬레스키가 로마에 와서 고대에 만든 판테온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고 돌아가 피렌체 두오모를 완성한 전례가 있었다. 이를 모델로 한 미켈란젤로의 돔 설계를 완수한 사람은 그의 뒤를 이은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그의 제자 도메니코 폰타나였다.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이었고,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가 제자로 받아들이며 붙여준 이름이다. 이렇게 해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거대한 역사(役事)가 처음부터 한 세대에 완성될 수 없었고, 미완성의 건축물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을 본 것이다. 다시 한번 음악에서 이루어진 미완성의 완성 예를 떠올린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완성하는 데는 슈베르트의 작품만이 사용되었다. 브루크너의 마지막 작품에는 여러 사람이 매달렸지만, 대개 미미한 이름이다. 말러의 교향곡을 완성한 데릭 쿡도 원작자에 비할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성 베드로 사원에 얽힌 이름, 브루넬레스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심지어 브라만테도 굳이 우열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당대의 거장이었다.

이에 비할 음악이 있다. 슈만과 브람스, 알버트 디트리히 세 작곡가가 공동 창작한 일명 <F-A-E 소나타>이다. 슈만은 촉망받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을 위해 이 소나타를 기획했다. 첫 악장은 제자 알버트 디트리히가 썼고, 다음 인테르메초와 마지막 피날레를 슈만 자신이, 그리고 그 사이 스케르초를 젊은 브람스에게 쓰도록 했다. 각 악장은 F-A-E 음에 기초해 썼는데, 이는 요아힘이 자신의 모토로 생각했던 ‘자유롭지만 고독한Frei aber einsam’의 머릿글자였다.

앉은 브람스와 선 요아힘

완성된 소나타는 슈만의 집에서 요아힘과 클라라 슈만의 합주로 초연되었다. 슈만은 요아힘에게 각 악장이 누구의 작품인지 물었고, 요아힘은 쉽게 답을 댔다고 한다. 뒤에 슈만은 자신이 쓴 두 악장을 새로 쓴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위해 가져 갔는데, 만년의 요아힘이 다시 악장을 모아 출판했다.

브람스가 쓴 스케르초 악장
슈만이 쓴 인테르메초, 뒤에 자신의 소나타 3번에 가져간다
슈만의 피날레, 역시 소나타 3번의 피날레가 되었다

바티칸 실내에서 대곡을 워낙 많이 들었으니, 밖으로 나와 이런 실내악에 젖어 전체를 바라보는 느낌이 좋다.

그러나 하나 더 언급할 걸작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피에타>이다. 그는 20대에 이미 이 모자상과 피렌체 아카데미아에 있는 <다윗>을 조각했다.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만날 피에타들보다 바티칸의 것이 훨씬 유명하다. 가장 사실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티칸의 <피에타>를 놓고 많이 오가는 얘기는 33세로 죽은 아들보다 그 모친이 더 젊어 보인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아무런 의도 없이 그랬을 리 없다.


단테의 <신곡> 마지막에 이르면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베르나르 성인에게 맡긴다. 베르나르는 단테를 성모 마리아의 앞으로 인도한다. 그러고는 ‘동정이신 어머니, 당신 아드님의 따님이시여’라고 찬양한다. 그리스도는 성삼위일체 가운데 한 분이기에 마리아가 그분의 어머니이기 전에 딸이라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단테를 따랐다. 마리아가 안고 있는 분은 성자이면서 동시에 성부요, 성령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 얼굴은 슬픔 속에서도 광채를 잃지 않는다. <카르미나 부라나>나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을 떠올리게 한다.

1972년 예수를 자처한 관람객이 망치로 훼손한 뒤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는 <피에타>
바티칸의 <피에타>와 똑같은 재질의 대리석을 사용해 같은 크기로 복제한 분당 성 요한 교회의 복제상

바티칸의 <피에타>는 세계 여러 곳을 위해 복제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 분당 성 요한 교회에 있다. 아드님이나 어머님 모두 슬픔에 젖어 있기보다는 평온한 느낌이다. 브람스의 <성스러운 자장가Geistliches Wiegenlied>로 바티칸 순례를 마무리한다.

원래가 비올라와 알토를 위한 곡이다

종려나무를 맴도는 그대
바람만 이는 밤에
거룩한 그대 천사여,
가지를 멈추소서
내 아이 잠들었으니

베들레헴의 종려나무여
거센 바람 속에
오늘 그리도 화를 내며
거세게 몰아치는구나
그리 으르렁대지 말기를
가만히, 부드럽고
조용하게 누그러지길
가지를 멈추소서
내 아이 잠들었으니

천상의 아기가
이 불편을 견뎌내네
아, 얼마나 지칠까
이 세상 번민에
아, 이제 잠드네
가만히 살포시
고통은 사라지고
가지를 멈추소서
내 아이 잠들었으니

매서운 추위가
이리로 몰아치네
무엇으로 덮어줄까
이 아이의 팔다리를
아, 천사 같은 너
날개 달린 아이야
바람 속에 헤매는구나
가지를 멈추소서
내 아이 잠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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