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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Feb 02. 2019

성천사성이 토스카의 배경이 되기까지

토스카와 그레고리오 성가

바티칸에서 멀지 않은 카스텔 산탄젤로, 천사성으로 음악팬들을 안내한다.


바티칸에서 조금 떨어진 테베레 강가에 카스텔 산탄젤로, 천사성이라고 부르는 요새가 있다. 원래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묘로 조성한 것인데 르네상스 시대 교황청의 금고이자 요새로 쓰인 탓에 지금은 무기 박물관이 되었다. 전쟁을 달고 살았던 유럽의 주요 도시마다 무기고(Arsenal)가 남아 있다. 베를린, 드레스덴, 베네치아, 파리 모두 시내 복판이나 심지어 궁전 안에 무기고를 두었다. 예전에는 언제 있을지 모를 적의 침입(또는 침공)에 대비해 닦고 조이고 기름 치기에 만전을 기하던 무기고였지만, 대개 지금은 유물이 된 갑옷과 총창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그러나 무기 박물관은 어디나 크게 붐비지 않는다. 가장 붐비는 곳은 런던을 연고로 한 축구팀 아스날의 경기쯤일까!

성 베드로 대성당과 천사다리를 건너 천사성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음악팬이라면 로마의 무기 박물관인 이곳 산탄젤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는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하던 무렵을 배경으로 한다.


공화파인 화가 카바라도시는 반역죄로 몰려 산탄젤로에 수감된다. 같은 시간 산탄젤로에서 테베레 강 아래로 15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파르네세 궁전. 토스카는 연인 카바라도시를 가둔 총감 스카르피아와 대면한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산 인생이 왜 이런 모진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하늘을 원망한다.

대체불가

토스카는 자신을 향한 스카르피아의 야욕을 허락하는 대신 카바라도시를 풀어주기로 약조를 받는다. 일단 원하던 것을 얻어낸 토스카는 그를 단도로 찌르고 주머니에서 만능 통행증을 꺼내 카바라도시에게 달려간다.

산탄젤로에 갇혔던 카바라도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샛별을 보고 신세를 한탄한다.

산탄젤로 현지 로케이션

토스카는 카바라도시에게 처형에 공포탄이 사용될 테니, 총성이 들리면 죽은 채 쓰러져 있으라고 귀띔한다. 동틀 녘에 처형이 이뤄지지만 카바라도시는 한참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간교한 스카르피아가 토스카에게 거짓 약속을 한 것이다. 토스카는 지옥에 먼저 간 악당 스카르피아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성 아래로 몸을 던진다.

불가리아 소프라노 라이나 카바이반스카의 명연이 돋보인다

많은 음악팬이 <토스카>의 무대로 산탄젤로를 기억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원래 이 성은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138)가 자신의 영묘(陵墓, Mausoleum)로 지은 것이다. 역시 자신의 묘를 거대한 지하도시로 만들고 수많은 병마용에게 지키게 했던 진시황도 떠오른다. 그러나 하드리아누스는 고대 로마의 다섯 현제(賢帝) 가운데 세 번째 황제이다. 로마의 번영을 이뤄내 백성의 신망이 높았다는 점에서 진시황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다섯 현제는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 양자에게 양위한 것으로 유명하니, 전제 국가에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황제 영묘의 모형

오현제 가운데 특히 하드리아누스는 판테온과 로마 인근의 명소인 티볼리 별장을 지은 사람으로 관광객도 자주 접하는 이름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이라는 소설을 통해, 병상에 누운 황제가 자신의 다음다음 보위에 오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지난날을 회고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이후 후대 황제들에 이르기까지 무덤으로 사용되었으나, 제국의 몰락과 더불어 고트족의 침략으로 건물이 손상을 입고 많은 유물이 도굴되었다. 게르만족의 월경이 잦아들고 로마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을 무렵인 590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베드로의 옥좌에 앉게 된다. 미사 통상문을 확립하고 여러 성가를 정리하도록 한 치적으로 성인에 추대된 인물이다.


어느 날 교황이 전염병에 걸린 백성들을 위해 참회의 기도를 갖는다.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부터 이곳 하드리아누스의 영묘까지 순례했는데, 그때 건물 상공에서 대천사 미카엘이 피 묻은 칼을 망토에 닦고 칼집에 넣는 장면을 보았다. 전염병을 물리친 천사의 모습이라는 교황의 해석처럼 진짜 병이 잦아들었고, 이에 교황은 영묘 위에 칼을 든 천사상을 세우게 한 뒤 천사성, 카스텔 산탄젤로라 부르도록 했다.


16세기 조각가 라파엘로 다 몬테루포가 대천사 미카엘의 대리석상을 만든 데 이어, 18세기에는 페터 안톤 폰 베르샤펠트가 현재의 청동 천사상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천사 미카엘, 곧 ‘미켈란젤로’ 성이 완성된 것이다.

수르바란이 그린 그레고리오 1세 교황
천사성의 미카엘 대천사. 칼을 빼는 것이 아니라 넣으려는 것이다

그레고리오 교황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보자. 토마스 만은 소설 <선택된 인간Der Erwählte>에서 그의 생애를 그렸다. 중세 음유시인 하르트만 폰 아우에(Hartmann von Aue, 1165 즈음~1215 즈음)가 쓴 설화를 다시 소설로 옮겨 놓은 작품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오랜 옛날 플랑드르 지방에 그리말트 왕과 바두헤나 왕비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다. 이들은 느지막이 쌍둥이 남매 지빌라와 빌리기스를 둔다. 왕비가 죽자 왕도 자식들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난다. 어린 나이에 서로 의지하게 된 지빌라와 빌리기스는 세상에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서로 닮은 모습에 이끌리고 이내 근친상간을 저지르게 된다. 이에 태어난 아이는 ‘17일’만에 출생의 비밀이 적힌 서판(書板)과 함께 작은 통에 놓인 채 바다에 버려진다. 서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이는 고귀한 태생이지만 혈육 간인 부모 사이에서 났습니다. 고모가 바로 어머니이며 아버지가 외삼촌입니다. 이를 숨기기 위해 아이를 바다에 띄워 보내니….”

한 어부가 아이를 건지고, 그를 자식으로 키운다. 수도원장은 아이가 자신의 서판을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을 보관하기로 하고, 아이에게 ‘그리고루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고루스는 수도원에서 학문을 익히며 고귀하게 자란다. ‘17세’가 되던 해 형제와 크게 싸우다 자신이 어부의 자식이 아니라는 출생의 비밀을 안 그리고루스는 수도원을 떠나 기사(騎士)가 되어 대륙으로 건너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아름다운 여왕이 이웃으로부터 강압적인 구혼을 받아 곤궁에 처한 도시였다. 그리고루스는 이 나라에 평화를 되찾아 주고, 여왕과 결혼한다. 그녀는 바로 그리고루스의 모친 지빌라였다. 그들은 첫째 딸을 낳고, 둘째를 임신할 때까지 ‘3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리고루스는 늘 출생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날 그가 숨겨둔 서판을 지빌라가 보게 된다. 아내가 어머니임을 안 그리고루스는 이 이중의 근친상간에 대한 속죄를 위해 고행을 떠난다. 지빌라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뉘우치기 위해 병자를 위한 구휼소를 세워 헌신한다.

방랑을 떠난 지 ‘3일’ 째 되는 날, 그리고루스는 한 어부의 안내로 호수 가운데 험한 바위섬에서 지내게 된다. 그는 바위 위에서 족쇄를 찬 채로 태양과 비바람, 눈 속에서 누더기를 걸친 채 견뎠다. 그는 작은 구멍에서 스미어 나오는 흰 액체를 마심으로써 가까스로 허기를 달래고 연명할 수 있었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고독 속에서 하느님이 자신의 속죄를 받아들이고 죄를 씻는 날 은총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17년’ 동안 참회한 그리고루스. 교황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두 귀족인 프로브스와 리베리우스의 꿈에 한 마리의 양이 나타나 하늘의 계시를 전한다. 그들은 그리고루스를 교황으로 모시기 위해 그를 찾아 떠난다. 어부의 안내로 바위에 도착한 그들은 ‘17년’ 동안 자란 털과 수염이 비바람에 저항하며 딱딱해진, 한 고슴도치 인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프로브스와 리베리우스는 그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들이 받은 계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이내 참회자를 바위섬에서 데리고 나온다. 찌들고 거칠어졌던 그리고루스는 호수를 건너는 동안 신기하게도 40세에 가까운 훌륭한 남자의 모습으로 다시 회복된다.

그리고루스를 떠나보낸 지빌라는 그동안 둘째 딸을 낳은 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힘쓰며 속죄한다. 그러던 중에 위대한 교황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회의 고백을 위해 그곳으로 간다. 아들과 어머니인 줄 모르고 한 때 남편과 아내로 지냈던 두 사람은 20여 년만에 눈물로 재회하고, 사랑과 고뇌, 참회와 은총에 대해 감사하며,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어머니가 죽은 뒤 거의 한 세대를 더 산 교황은 만민의 목자로서 더욱 명성을 떨쳤으며, 온 세계를 감복시켰다.

아우에가 처음 이 설화를 쓴 것이 12세기이므로 만일 이름대로라면 주인공은 그 이전을 살았던 그레고리우스 1세부터 7세까지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산탄젤로를 명명한 첫 번째 그레고리오 교황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굳이 그 점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 이유를 토마스 만의 관점으로 살펴보자.


토마스 만은 또 다른 4부작 대하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Joseph und seine Brüder>을 통해 신화를 역사로, 역사를 신화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는 구약성서에 증조부와 증손자로 나오는 아브라함과 요셉이 실제 고증으로는 20대에 걸쳐 600년의 차이가 있다는 고증의 사실을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받아들인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우물이 바닥을 쳐다보았을 때 그 중간과 바닥의 차이가 확연하지 않은 것과 같이, 인간사 또한 그 아버지와 아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고 늘 반복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특히 ‘선택된 인간들’의 삶은 더욱 그렇다. 은총과 구원의 전례(前例)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화가 페르디난트 호들러가 그린 <선택된 인간>

역사 바라보는 데에 이처럼 신화와 과학의 차이를 두지 않는 시각이야말로 토마스 만의 예술가 기질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음란함과 방탕함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늘의 심판이 과학적으로는 자연이 두 팔을 걷어붙인 지각 변동이라는 것. 이것도 그가 보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만의 결론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어쩌면 각각이 부자(夫子)가 아닌 멀리 떨어진 선조와 후손일지도 모르며, 심지어 어쩌면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런 설명대로라면『선택된 인간』의 주인공이 그레고리오 1세라고 생각하는 데는 어떤 무리도 없으며, 특별한 검증 절차도 필요치 않다. 실제로 음악사 또한 성가를 만든 교황이 고레고리오 1세라고 못 박지 않았다. 그는 전임 교황의 대리 사절로 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 부임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뒤에 교황에 취임했을 때는 동방 전례(典禮)를 포함한 모든 교회 음악에 정통했다고 한다. 그가 그레고리오 성가를 작곡했다는 어떤 증거도 남아 있지 않지만, 분명 그 레퍼토리의 성립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뒤에 교회의 관례를 기초로 성가를 정비했을 때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결국 서양음악의 위대한 뿌리는 어느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그레고리오 교황과 그의 후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갈고닦아 탄생한 것이다. 성경 속의 이야기가 여러 사람,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나뉘어 전개되는 것과 비교하면, 음악사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행적이 한 사람의 공덕으로 집약된 셈이다. 그러나 결국 둘 다 매한가지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선택된 인간>의 이야기 속에는 많은 다른 음악의 분위기가 녹아 있다.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한 사람이 떠난 뒤 아쉬워하는 그리말트 왕과 바두헤나 왕비의 이야기는 괴테의 발라드 ‘툴레의 왕’을 연상케 한다.

앙투안 타메스티의 비올라 반주에 부른 안네 조피 폰 오터
옛날에 툴레라는 나라에 임금님이 있었어.
일평생 진실한 분이었지.
사랑하는 왕비가 먼저 죽으면서
그에게 황금 술잔을 하나 남겼는데

임금님에겐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없어
잔치 때마다 그 잔을 비웠단다.
그 잔으로 마실 때마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넘쳐흘렀지.
 
죽음이 다가오자
임금님은 나라의 모든 고을을 세어
자식에게 물려주었지만
술잔만은 주지 않았어.
임금님은 큰 연회를 베풀었고
기사가 주위에 둘러앉았어.

바닷가 높은 성 위
선왕을 모신 홀에서
이 늙은 주객이 일어나
마지막 삶의 불길을 마셨지.
그리고 성스런 술잔을
바다로 던져버렸어.
 
술잔이 떨어져 기울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고
임금님 눈도 감겼어.
더 이상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단다.

또한 남매와 모자의 숙명적인 사랑에서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나 스트라빈스키의 <오이디푸스 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죄의 싹으로 버려진 아이가 되돌아온다는 이야기도, 신화와 전설에 깊이 뿌리내린 모티프이다. 아들을 떠나보내고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지빌라 왕비는 남편의 친구이자 부정한 연인인 랜슬롯을 떠나보내고 속죄의 길을 걷는 아서왕의 아내 기네비어와 다르지 않다.


근친혼을 속죄하기 위해 길 떠나는 그리고루스의 모습은 신성한 노래의 전당에서 육체의 쾌락을 노래했던 자신의 타락을 뉘우치고 로마로 순례를 떠나는 탄호이저와 같지 않은가!

여동생과의 사이에서 미뇽을 낳고 죽을 때까지 자신을 숨긴 채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의 하프 타는 노인도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을 떠났을 때 길에서 본 노인이 모델이다.

슈베르트의 <하프 타는 노인의 노래 I>

이 모든 것을 결합한 듯한 토마스 만의 소설은 한 편의 그레고리오 성가와 같이 가슴을 붙들어 맨다. 이제 카스텔 산탄젤로의 진짜 주인공을 만날 차례이다.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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