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와 그레고리오 성가
오랜 옛날 플랑드르 지방에 그리말트 왕과 바두헤나 왕비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다. 이들은 느지막이 쌍둥이 남매 지빌라와 빌리기스를 둔다. 왕비가 죽자 왕도 자식들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난다. 어린 나이에 서로 의지하게 된 지빌라와 빌리기스는 세상에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서로 닮은 모습에 이끌리고 이내 근친상간을 저지르게 된다. 이에 태어난 아이는 ‘17일’만에 출생의 비밀이 적힌 서판(書板)과 함께 작은 통에 놓인 채 바다에 버려진다. 서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이는 고귀한 태생이지만 혈육 간인 부모 사이에서 났습니다. 고모가 바로 어머니이며 아버지가 외삼촌입니다. 이를 숨기기 위해 아이를 바다에 띄워 보내니….”
한 어부가 아이를 건지고, 그를 자식으로 키운다. 수도원장은 아이가 자신의 서판을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을 보관하기로 하고, 아이에게 ‘그리고루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고루스는 수도원에서 학문을 익히며 고귀하게 자란다. ‘17세’가 되던 해 형제와 크게 싸우다 자신이 어부의 자식이 아니라는 출생의 비밀을 안 그리고루스는 수도원을 떠나 기사(騎士)가 되어 대륙으로 건너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아름다운 여왕이 이웃으로부터 강압적인 구혼을 받아 곤궁에 처한 도시였다. 그리고루스는 이 나라에 평화를 되찾아 주고, 여왕과 결혼한다. 그녀는 바로 그리고루스의 모친 지빌라였다. 그들은 첫째 딸을 낳고, 둘째를 임신할 때까지 ‘3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리고루스는 늘 출생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날 그가 숨겨둔 서판을 지빌라가 보게 된다. 아내가 어머니임을 안 그리고루스는 이 이중의 근친상간에 대한 속죄를 위해 고행을 떠난다. 지빌라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뉘우치기 위해 병자를 위한 구휼소를 세워 헌신한다.
방랑을 떠난 지 ‘3일’ 째 되는 날, 그리고루스는 한 어부의 안내로 호수 가운데 험한 바위섬에서 지내게 된다. 그는 바위 위에서 족쇄를 찬 채로 태양과 비바람, 눈 속에서 누더기를 걸친 채 견뎠다. 그는 작은 구멍에서 스미어 나오는 흰 액체를 마심으로써 가까스로 허기를 달래고 연명할 수 있었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고독 속에서 하느님이 자신의 속죄를 받아들이고 죄를 씻는 날 은총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17년’ 동안 참회한 그리고루스. 교황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두 귀족인 프로브스와 리베리우스의 꿈에 한 마리의 양이 나타나 하늘의 계시를 전한다. 그들은 그리고루스를 교황으로 모시기 위해 그를 찾아 떠난다. 어부의 안내로 바위에 도착한 그들은 ‘17년’ 동안 자란 털과 수염이 비바람에 저항하며 딱딱해진, 한 고슴도치 인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프로브스와 리베리우스는 그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들이 받은 계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이내 참회자를 바위섬에서 데리고 나온다. 찌들고 거칠어졌던 그리고루스는 호수를 건너는 동안 신기하게도 40세에 가까운 훌륭한 남자의 모습으로 다시 회복된다.
그리고루스를 떠나보낸 지빌라는 그동안 둘째 딸을 낳은 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힘쓰며 속죄한다. 그러던 중에 위대한 교황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회의 고백을 위해 그곳으로 간다. 아들과 어머니인 줄 모르고 한 때 남편과 아내로 지냈던 두 사람은 20여 년만에 눈물로 재회하고, 사랑과 고뇌, 참회와 은총에 대해 감사하며,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어머니가 죽은 뒤 거의 한 세대를 더 산 교황은 만민의 목자로서 더욱 명성을 떨쳤으며, 온 세계를 감복시켰다.
옛날에 툴레라는 나라에 임금님이 있었어.
일평생 진실한 분이었지.
사랑하는 왕비가 먼저 죽으면서
그에게 황금 술잔을 하나 남겼는데
임금님에겐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없어
잔치 때마다 그 잔을 비웠단다.
그 잔으로 마실 때마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넘쳐흘렀지.
죽음이 다가오자
임금님은 나라의 모든 고을을 세어
자식에게 물려주었지만
술잔만은 주지 않았어.
임금님은 큰 연회를 베풀었고
기사가 주위에 둘러앉았어.
바닷가 높은 성 위
선왕을 모신 홀에서
이 늙은 주객이 일어나
마지막 삶의 불길을 마셨지.
그리고 성스런 술잔을
바다로 던져버렸어.
술잔이 떨어져 기울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고
임금님 눈도 감겼어.
더 이상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