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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Feb 06. 2019

바벨탑의 모델의 된 콜로세움

스파르타쿠스에서 십자가의 길까지

멀리서 콜로세움이 보이면 누구나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콜로세움 외벽의 두 겹은 베드로 사원 등을 짓기 위해 벗겨냈음을 보여준다.

로마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콜로세움의 웅장함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얘기한다. 건축 과정과 이름의 유래 따위에 얽힌 많은 이야기보다 더욱 압도적인 것은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노예 검투사들의 대결이다. 기독교인들을 맹수의 밥으로 던져 넣기도 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스트립쇼나 포르노에 해당하는 쇼도 빠질 수 없었다. 심지어 물을 채우고 해전(海戰)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니 그 스케일이 얼마나 굉장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원형극장은 전설의 고향이다. 달턴 트럼보가 대본을 쓰고 커크 더글러스가 제작 주연한 <스파르타쿠스>나 영화는 못 본 사람도 전차 경주는 아는 <벤허> 그리고 러셀 크로의 호연에 빛나는 <글래디에이터>는 세대마다 고전이 되었다. 우리는 음악 이야기이므로 아람 하차투리안(1903-1978)이라는 작곡가의 발레로 만나보자.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의 2016년 공연. 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
제1막
집정관 크라스수가 개선 행렬과 더불어 로마로 입성한다. 그는 트라키아 왕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아내 프리기아를 포로로 잡아왔다. 스파르타쿠스는 신세를 한탄하고 크라수스의 후궁으로 잡혀가는 프리기아에게 작별을 고한다. 귀족의 오락을 위한 검투사로 전락한 스파르타쿠스. 그는 눈을 가린 결투에서 친한 친구를 죽이게 된다. 스스로의 행동에 경악하며 스파르타쿠스는 노예 반란을 선동한다.

제2막
풀려난 노예들이 자유를 만끽하며 스파르타쿠스를 우두머리로 추대한다. 스파르타쿠스는 아직 노예로 있는 프리기아 생각에 가슴 아파한다. 홀로 크라수스 궁전에 잠입한 그는 프리기아와 밀회한다. (아다지오) 크라수스의 애첩 에기나는 크라수스를 이용해 귀족이 되고자 한다. 노예들은 귀족의 향연을 급습해 크라수스를 사로잡는다. 반란군은 크라수스를 죽이려 들지만, 스파르타쿠스가 둘만의 승부를 제안한다. 결투에서 이긴 스파르타쿠스는 그를 죽이지 않고 내쫓는다. 군중은 환호한다.

제3막
크라수스는 땅에 떨어진 자존감에 분해 한다. 에기나가 복수를 선동한다. 동시에 그녀는 스파르타쿠스 진영에 내분이 일게 한다. 이를 모른 채 스파르타쿠스는 프리기아와 재회한 것을 기뻐한다. 크라수스의 군대가 밀려오자 반란군에서는 동요가 인다. 전투에 임하는 스파르타쿠스는 비장하다. 에기나의 유혹에 넘어간 반란군이 크라수스에게 패한다. 스파르타쿠스가 그를 모멸한 대가를 치를 차례이다. 전투에서 패하고 상처 입은 스파르타쿠스를 로마 군대가 십자가에 못 박는다. 전장에서 남편의 시신을 찾은 프리기아는 오열한다. 그녀는 남편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신들께 기도한다.
발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 보리스 베레좁스키가 연주한다

“내가 스파르타쿠스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낳은 영화 못지않게, 이 조지아 태생 작곡가의 발레도 민심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자유를 향한 뜨거운 갈망을 감동적으로 포착한다.


지금은 콜로세움의 바닥으로는 내려갈 수 없고, 관중석만 돌아볼 수 있다. 꼭 보고 싶은 사람은 역시 영화가 해결해 준다. 순간이동 초능력자를 주인공으로 한 <점퍼> 가운데 콜로세움 내부 장면이 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빌리 엘리엇이 주인공이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콜로세움은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플랑드르 화가 피터 브뤼헐은 바벨탑을 그릴 때 콜로세움과 자신의 고향 산천을 모델로 했다. 구름 끝까지 닿은 거대한 나선형의 탑은 곧 있을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심판을 상징한다. 그림 왼쪽 아래에는 바빌로니아의 니므롯 왕이 석공(mason)에게 명령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바벨탑을 짓게 한 바로 그 사람이다. 석공은 고대에나 브뤼헐 시대에나 똑같다. 미켈란젤로도 그중의 하나이다. 뒷날 석공들은 직업 조합을 만든다. 프리메이슨 결사의 시작이다.


니므롯이라는 왕은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과 연결된다. 그 열 번째 변주 ‘님로드’가 바로 니므롯이다. 한글로 적으면 달라 보이나 ‘Nimrod’를 발음해 보면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엘가는 이 변주곡에 절친한 친구 예거(Jaeger)를 숨겨놓은 것인데, 예거는 독일말로 사냥꾼이다. 님로드, 아니 니므롯 왕이 사냥을 즐겼기 때문에 멀리 끌어 붙인 것이다.

어딜 가나 이 곡을 앙코르로 즐겨 연주하는 유리 테미르카노프. 역시 로열 앨버트 홀 공연
붉은 석재를 나르는 광경이 인상적이다. 멀리 강가에는 니므롯을 향해 용변을 보는 사람도 세밀하게 묘사를... 에이 장난꾸러기!

그런데 브뤼헐의 바벨탑 안에 자리 잡고 사는 보통 사람들은 어쩐지 그곳이 바벨탑이 아니라 노아의 방주와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고 보면 대홍수 또한 인간의 타락을 심판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벌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 콜로세움이 꼭 방주처럼 거대한 식물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17세기 식물학자 도메니코 파나롤리는 1643년에 낸 도감에 콜로세움 안에 서식하는 684종의 식물을 실었다. 19세기 중반 420종을 헤아리던 식물은 현재 242종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많은 관광객 틈바구니에서도 그 정도이니 만일 이곳을 인간 통제구역으로 만들면 머지않아 거대한 식물원으로 되살아나지 않을까? 구경거리가 되었던 맹수들이 아름드리 소나무 그늘에서 쉬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앙리 루소의 그림처럼 말이다. 루소의 스승 장 레옹 제롬이 콜로세움을 즐겨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앙리 루소, 사자의 식사, 1907.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오브 아트
장 레옹 제롬, 기독교 순교자의 마지막 기도, 1863-83. 월터스 아트 뮤지엄, 볼티모어

현대인에게 웅장한 볼거리이지만 그것이 고대에 반인륜의 만행이 자행되었던 곳임을 계속 고발하는 장면들이 있다. 나치가 만든 뉘른베르크의 전당대회장 콩그레스 할레도 콜로세움이 모델이다. 로마에 와서 제일 처음에 본 이탈리아 문명 궁전 또한 ‘현대의 콜로세움’이라 불린다. 무솔리니가 만국박람회를 위해 짓게 한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원작으로 한 줄리 테이머 감독의 영화 <티투스>가 이곳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매우 감각적인 연출의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

앞으로 끔찍한 이야기를 구경하게 될 거라는 암시이다. 이교도의 복수가 무고한 처녀의 손목과 혀를 자르게 하고, 그 복수를 위해 아비는 상대방의 시신으로 음식을 해내는 엽기 잔혹극 말이다. 과연 고대 로마의 군중은 그리 난폭하고 광기 어리기만 했을까?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아래로 향하는 것만으로 생사여탈을 결정했을까? 아니, 고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일이지 않은가! 오히려 콜로세움이 따로 필요 없이 지구 전체가 구형극장이 된 것만 같다.

뉘른베르크 콩그레스 할레. 레니 리펜슈탈 <의지의 승리>의 무대이다

콜로세움을 그보다 세련되게 모방한 경우도 있다. 영국의 로열 앨버트 홀은 여름마다 BBC 프롬나드 콘서트로 연일 장사진을 이룬다. 원형극장의 바닥은 입석이고, 특히 마지막 날 공연은 깃발이 휘날리고 휘파람을 부는 축제이다. 1997년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의 독주회 앙코르는 전설이 되었다.

흰색 제복을 입은 글래디에이터가 준비한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다시 무대에 올라 앙코르를 시작한다. ‘아테네의 폐허’ 가운데에서 ‘터키군이 행진’하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그는 무려 50분 동안 자기보다 훨씬 몸집이 크고 윤기가 반지르르한 검은색 맹수와 결투를 벌인다. 군중은 흥분해 발을 구르고, 투사의 흰색 제복은 땀에 절어 더욱 무거워졌지만 그는 지칠 줄을 모른다. 무대까지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린 그보다 손뼉 치는 입석의 관중이 더 지쳤을 것이다.


콜로세움에 와서 광기(狂氣)만을 얘기해서 안 되었다. 해마다 수난절이면 교황이 이곳에서 ‘십자가의 길Via crucis’ 미사를 집전한다. 그리스도의 사형선고부터 무덤에 묻힐 때까지의 고행을 열네 개 기도로 재현하는 전통이다. <십자가의 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음악은 프란츠 리스트가 썼다. 만년에 사제의 길을 갔던 리스트가 자신의 신앙심을 음악으로 표현한 ‘백조의 노래’이다. 원곡은 합창과 독창, 오르간을 위한 것이나, 건반 독주만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여섯 번째 곡은 바흐의 유명한 코랄을 가져왔다. ‘아, 피와 상처로 가득하신 머리O Haupt voll Blut und Wunden’는 <마태 수난곡>의 골조를 이룬다.

스페인 어느 시골 교회 성가대가 부른 6번째 코랄
레인베르트 데 레우의 전곡 연주
00:11  왕의 휘장이 앞장 서니 Vexilla regis prodeunt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의 시)
04:31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받으심.
05:55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
08:04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
09:28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
11:33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
14:20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16:42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
18:08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19:43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
21:00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
22:36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23:33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28:55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32:21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프란시스코 교황은 구형극장의 선(善)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전 세계 위정자들이 그를 모범으로 한다면 세상은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 연말 사랑의 온도를 재듯이 위정자의 덕을 재는 콜로서스라도 세워야 할까? ‘콜로세움’의 어원이 ‘콜로서스’에서 왔다. 폭군 네로가 자신의 거대 동상을 세우려 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2019년 4월 19일 프란시스코 교황이 콜로세움 앞에서 집전한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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