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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Feb 28. 2019

우피치 미술관으로 음악책을 쓰다

비너스와 성모 마리아

발 디딜 틈 없는 우피치 미술관에서 음악이 쏟아져 나오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은 2017년 기준 220만 명이 다녀가 관람객 수로 세계 25위를 기록했다. 1위는 루브르, 2위 북경 중국 국립 박물관, 3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 박물관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이 전체 4위이다. 이탈리아 박물관 중에는 우피치가 1위이지만, 우리나라 국립 중앙 박물관이 340만 명으로 13위인 것을 보면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 피렌체의 인구는 38만 명이다.


우피치의 소장품을 빼면 서양미술사 책은 가벼워진다. 또한 유럽의 많은 왕실 미술관들이 이 메디치 가문의 전시관을 모델로 한 것이다. 한 작품씩 앞에 설 때마다 머릿속에 음악이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세 걸작이다. 대표작 <봄Primavera>, <동방박사의 경배L’Adorazione dei Magi>, <비너스의 탄생Nascita di Venere>이 모두 우피치에 있다. 

마치 '파리스의 심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붉은 옷의 남자는 헤르메스, 그 옆의 헐벗은 여인네는 세 우미신이다

<봄>로부터 떠올릴 음악은 매우 많다. 비발디와 하이든의 <사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슈만의 첫 교향곡 따위이다. <동방박사의 경배>도 크리스마스에 얽힌 많은 음악을 대비할 수 있으리라. 비너스가 등장하는 음악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이 세 그림을 가지고 음악을 지은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번 오토리노 레스피기이다. 그는 1927년 미국의 중요한 현대음악 후원자 엘리자베스 스프러그 쿨리지 여사(Elizabeth Sprague Coolidge, 1864-1953)로부터 신작을 위촉받았다. 쿨리지 재단의 지원을 받고 작곡된 20세기 음악은 매우 많은데, 중요한 것만 추리자면 대략 이렇다.


버르토크의 현악 사중주 제5번, 애런 코플런드의 <애팔래치아의 봄>, 쇤베르크의 현악 사중주 제3번과 제4번, 스트라빈스키의 <뮤즈를 거느린 아폴론> 그리고 레스피기의 <보티첼리 삼부작Trittico Botticelliano>이다. 

레스피기의 첫 곡 ‘봄’은 앞선 로마 연작의 느낌 그대로이다. 새소리와 훈풍 가득한 비발디의 느낌도 들어 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 레스피기를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봄’이라는 느낌보다 고래의 비상(飛上)을 떠올릴 법하다.

프리마베라: 봄

<보티첼리 삼부작>의 두 번째 곡, ‘동방박사의 경배’는 훨씬 종교적이다. 보티첼리의 그림은 당대 메디치 가문의 일원들을 모델로 했고, 화가 스스로 맨 오른쪽에서 화면 밖을 쳐다보고 있다. 거기서 착안한 걸까? 중세 성가 ‘오소서, 임마누엘Veni Veni Emmanuel’의 선율을 끌어 온다.

이 친구들 의외로 괜찮다. 베니 베니 임마누엘
맨 오른쪽 갈색옷이 보티첼리이다
동방박사의 경배

보티첼리의 그림도 그러하듯이 레스피기의 음악도 ‘비너스의 탄생’이 가장 아름답다. 피아니시모로 시작한 물결은 산들바람과 하나 되어 물거품으로부터 태어나는 비너스의 모습을 그려준다. 보티첼리의 그림으로부터 왔으되, 우리를 다시 화가의 아틀리에로, 아니 탄생의 순간으로 데려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후배 작곡가 보후슬라프 마르티누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세 프레스코>를 작곡할 때 레스피기의 음악을 떠올렸을 듯하다(곧 아레초에서 만날 음악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너무 유명하므로 테리 길리엄 감독의 <뮌히하우젠 남작의 모험>으로 보자. 뒤에 나올 빌 비올라의 선구이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듯한 비너스의 자태는 또한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 가운데 ‘금성Venus’과도 일맥상통한다.

홀스트의 <행성> 가운데 '금성: 평화를 가져다주는 자'

뿐만 아니라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는 곧 동정녀 마리아의 모습과 하나 된다. 자연히 우피치 미술관의 또 다른 대표작 다빈치의 <수태고지Annunciazione>로 가보자. 처녀인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가 성령으로 잉태했음을 알려주는 순간이다. 

가운데 먼 풍경이 그림의 심도를 극대화한다
<키지 코덱스> 가운데 <수태고지 미사>

바티칸 도서관이 소장한 키지 필사본에는 아름다운 요하네스 오케겜(Johannes Ockeghem, 1410/1425 – 1497)의 악보가 들어 있다. 바로 수태고지 순간, ‘주님의 여종을 보라Ecce Ancilla Domini’를 가지고 만든 미사이다.

오케겜은 기욤 뒤파이와 조스캥 뒤프레 사이를 잇는 플랑드르악파의 거장이다

마음이 산란한 마리아가 사촌 엘리사벳을 찾아간다. 먼저 아이(세례자 요한)를 잉태한 엘리사벳에게 축하를 받아 용기를 얻은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루가복음이 전하는 이 노래가 숱한 음악의 가사가 되었으니, 바로 <마니피카트>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가운데는 비발디의 작품이 최고이다.

그러나 비발디를 참고해 만든 바흐의 <마니피카트>가 내게는 더욱 와 닿는다. 이 곡은 바흐가 1723년 재혼한 어린 신부와 아이들을 데리고 라이프치히에 부임했을 때 쓴 것이다. 그를 썩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차선으로 택했던 시 당국자들을 위해 바흐는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그것이 바로 이 곡이었다.

2017년 12월 1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공연

앞으로 자신의 아들이 할 행적을 미리 예고하는 듯한 마리아의 노래 끝으로, 그것을 오래된 약속으로 다짐받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말 그대로 아브라함과 요셉, 모세, 다윗이 보였던 빈틈없음이 느껴진다. 아, 이걸 말로 해야 하다니!

아르농쿠르의 2000년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 공연 가운데 제일 끝자락

다빈치의 ‘수태고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카트)는 사촌에게 부른 노래이다. ‘방문Visitation’을 그린 그림은 우피치에도 여럿 있지만, 나는 피렌체 방문 중에 흥미로운 전시를 만났다. 스트로치 궁전에서 열린 빌 비올라(Bill Viola, 1951-) 전시회이다. 비디오 아트의 최일선에서 활동 중인 비올라의 작품 가운데 <만남The Greeting, 1995>이라는 것이 ‘방문’을 소재로 한 것이다. 피렌체를 방문해 폰토르모가 그린 <방문>의 복원 작업을 본 비올라가 특유의 슬로모션 영상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왼쪽이 폰토르모의 원화이고, 오른쪽이 빌 비올라의 비디오 아트이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

비디오 아트는 반드시 음악에 손짓하게 마련이다. 2004년 연출가 피터 셀라스가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공동제작을 제안했고, 두 사람의 협업은 LA를 시작으로 파리, 뉴욕, 로테르담 그리고 토론토로 이어졌다. 영상 연출은 아이디어만 좋다면 제작 과정을 간소화하고 재공연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현실에 매우 적합하다. 백남준의 나라에서 가장 앞서갈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대단하지 않은가!

다시 우피치로 돌아와야 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에서 다빈치의 동정녀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육욕의 화신이다. 고야의 <마하> 연작과 마네의 <올랭피아>로 이어질 도발적인 시선을 한 누드의 시작이다. 뭘 들어야 할까? 만일 빌 비올라가 이 그림을 시간으로 만든다면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말이다.

베네치아 거장 티치아노가 그린 비너스가 화면 밖으로 떨어질 것 같다

옷을 벗은 비너스 뒤로 두 하녀가 궤짝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 그녀가 입은 희고 붉은 옷이, 비너스의 붉고 흰 침상과 조응한다. 이 그림이 걸린 벽의 붉은 색깔이 더욱 강렬하게 마음에 불을 지른다. 시냇가에서 시녀와 목욕을 준비하는 신녀(神女) 라크메와 말리카의 이중창이 어울리지 않는가?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두 프랑스 성악가들: 사빈 드비엘레와 마리안 크레바사. 앞서 라모와 베를리오즈로 만났던 언니들이다

그러나 결혼을 앞둔 처녀라기에 비너스의 자태는 너무 농염하다. 마치 신부의 정결한 침상을 미리 점령한 ‘미의 여신’의 노골적인 유혹처럼 보인다. 때문에 남편을 두고 이웃나라 왕자와 눈이 맞아 달아나는 헬레나의 모습에 더 가깝다. 오펜바흐의 <아름다운 헬레네La Belle Hélène> 가운데 ‘이것은 꿈이야Ce n’est qu’un rêve’가 제격이다.

로랑 페와 마르크 민콥스키 콤비의 오펜바흐 시리즈 가운데 최고인 <아름다운 헬레네>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은 헬레나도 파리스도 청중도 모두가 다 안다.


우피치에는 그 밖에도 초기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부터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라파엘로의 <마돈나>, 카라바조의 <바쿠스>와 <메두사>와 같은 걸작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음악과 미술의 만남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다. 베키오 다리로 이어지는 회랑을 바라보며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을 돌아본다.

우피치에서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 궁전까지 연결되는 바사리 회랑. 현재 보수 중이라 2021년에 재개방된다

‘우피치Uffizi’는 ‘오피스Office’라는 뜻이다. 1560년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코시모 1세를 위한 관청 건물로 설계한 건물이다. 바사리 사후에 완성된 건물은 메디치 가문이 소장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되었다.


바사리는 르네상스 시대로 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람이다. 그가 1500년부터 1568년까지 쓴 <예술가들의 생애Le Vite>가 뒷날 이 시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핵심 자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평양의전을 나와 해방 뒤 국내에서 생화학 교수를 역임했던 이근배 교수가 탐구당에서 세 권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을 번역한 것이 1986년이다. 역자 사후 작년에 한길사가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란 제목으로 컬러 도판을 넣어 재간했다.

바사리의 원 표지와 한길사의 광고지

한길사의 새 책은 고인에게 부끄러운 수준이다. 요즘에는 제목만 알면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좋은 이미지를 얻거나 살 수 있다. 그런데 어디서 구했는지, 복원되기 전 우중충한 그림을 그대로 둔 경우가 태반이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라파엘로 항목을 보면, 바티칸 ‘라파엘로 방’의 걸작들이 전부 낡은 이미지이다. 벽화야 그렇다 치고, 그리스도의 변용을 담은 회화는 위키피디아에도 선명한 색상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온 원화와 그것을 절반만 우중충하게 실은 번역판의 비교

심지어 도판 해설이 제 자리를 찾아가지 못한 곳도 있다. 라파엘로의 선배 핀투리키오의 그림 <바젤로 출발하는 피콜로미니>에는 희한한 해설이 붙어 있다.

“성녀 카타리나의 얼굴은 루크레치아 보르자를, 옥좌에 앉은 막시밀리안 대제는 그녀의 동생 체사레를 그린 것이다.”

그림 어디에도 이런 모습은 없다. 몇 페이지 뒤에 나온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논쟁>에 있어야 할 설명을 잘못 편집한 것이다. 심지어 체사레가 루크레치아의 동생이 아니라 오빠인 것은 르네상스의 문턱에 선 나도 안다. 나는 절친한 C형을 졸라 권당 4만 원이 넘는 책을 제4권까지 생일선물로 받았지만, 5권과 6권을 마저 사야 하는지 고민이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바사리의 흥미진진한 일화는 그의 고향 아레초에 가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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