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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r 01. 2019

도레미송의 고향 아레초

귀도 다레초와 도레미송

아레초는 피렌체에서 동남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아름다운 도시이다.


피렌체에서 하루 이틀 여유가 있는 사람은 대개 1시간 거리에 있는 피사나, 토스카나의 와이너리를 찾곤 한다.


미국의 ABC가 1992년에 상영한 TV 미니시리즈 <영 인디애나 존스Young Indiana Jones>에서도 빈을 떠난 인디애나 존스 가족이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우피치 미술관을 둘러본 뒤 저녁에 오페라에 간다. 베를리오즈처럼 벨리니의 <카풀레티 가와 몬테키 가>를 보았다면 어린 인디가 성소수자의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겠지만, 다행히 푸치니의 <라보엠>이 상연되었다. 그것도 작곡가 자신이 지휘하는 무대였다. 인디의 엄마 존스 부인은 푸치니의 열정에 홀린 듯이 사로잡히고 푸치니도 이국적인 그녀에게 이탈리아 남자다운 호감을 보인다.


푸치니는 다음날 가족의 피사 나들이에 가이드를 자청한다. 인디는 가정교사 시무어 부인과 피사의 사탑에 올라 갈릴레이의 실험을 재현한다. 밀도가 같은 물체는 크기나 무게에 상관없이 같은 높이에서 떨어뜨렸을 때 동시에 땅에 떨어진다는 중력의 법칙이다. 물론 꼭 피사에서만 가능한 실험은 아니다.

그러는 사이 푸치니는 존스 부인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의 예술성에 탄복했던 존스 부인은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선을 넘지 않으려 안절부절못한다. <라보엠>, <나비부인>, <토스카>의 선율이 피렌체의 역사적인 명소와 아름다운 풍광을 잇는다. 갈릴레오의 망원경으로 엄마와 푸치니의 밀회를 본 인디는 엄마에게 곤란한 질문을 한다.


결국 존스 부인은 시무어 부인의 조언으로 유혹을 이기고 제자리를 찾는다. 물론 푸치니의 실화는 아니지만, 수없이 많은 비슷한 일들을 겪었으리라.

말할 수 없이 잘 만든 시리즈이다. 계속 연결되니 찾아서 보셔야.. 앞 이야기 <빈과 프로이트> 편은 다음에...

어쨌거나 난 피사를 안내해줄 푸치니가 없었기 때문에 피렌체 아래쪽의 아레초(Arezzo)를 가기로 했다. 아니 푸치니가 있었더라도 피사보다는 아레초를 가자고 했을 터이다. 성 프란체스코 바실리카에 있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벽화를 보기 위해 몇 달 전에 예약까지 했다(성수기가 아니면 그럴 필요까진 없었던 것이, 예약증을 호텔에 두고 왔지만 문제없었다).


아레초 역 앞 광장에서 날 반긴 것은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의 동상이다. 아레초의 귀도라는 뜻이니 이름이 편리하다. 중세 11세기 수사이자 음악가였던 그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이 나오기 900년 전에 이미 ‘도레미송’(여기서 굳이 안 들어도 될 것이다)을 썼다.

동상 옆에 그 내력을 적은 안내판(맨 위 표지 그림)이 있다. 귀도는 세례자 요한을 찬미하는 바오로 부제(서기 8세기)의 다음과 같은 가사에 곡을 붙였다.

당신의 종복들이 편안한 목소리로 당신이 행하신 이적을 노래하도록, 우리의 얼룩진 입술로부터 죄를 사하소서, 성 요한이시여.

귀도는 라틴어 가사 가운데 각 행의 첫음절을 오늘날 계명의 자리에 오도록 곡을 썼다. 첫음절은 곧 ‘Ut-Re-Mi-Fa-Sol-La-Si’이다. 마지막 ‘시’는 ‘성 요한Sancte Iohannes’의 각 첫 글자를 따온 것이다. 귀도가 제안한 음계 이름 덕분에 악보를 읽는 법이 수월해졌다.


뒤에 17세기 음악가 조반니 바티스타(세례자 요한) 도니(Giovanni Battista Doni)가 ‘Ut’도 다른 계이름처럼 모음으로 끝내도록, 하느님을 뜻하는 ‘Domine’의 첫 글자를 가져다 쓰자고 제안했다. 이는 물론 ‘도니’의 첫 글자이기도 했다.


영어권에서는 ‘솔’과 ‘시’가 같은 자음이 겹치는 것을 피하도록 ‘시’를 ‘티Ti’로 바꿨다. 그래서 마리아 수녀가 트라프 아이들에게 노래 부르는 법을 가르칠 때, ‘티(tea)’는 잼 바른 빵과 마시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헝가리 아마추어 합창단의 공연. 중국집 웍 두 개를 합친 듯한 악기는 항(Hang)이라고 부른다. 요즘 유럽 거리에 많이 보인다.

나는 귀도 다레초 이야기를 1991년 가을, 대학 교양 음악사 시간에 배웠다. 바흐를 음악사의 시작으로 여기던 나에게 김철륜 교수의 강의안은 충격적이었다. 대략 중세에서 시작해 바흐쯤에서 끝난 것이다. 덕분에 나는 교양 수준으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을 레오냉, 페로탱, 아르스 노바와 아르스 안티콰, 조스캥 데프레와 같은 이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라디오 중계방송을 할 일이 있었다. 무슨 연주회였는지는 생각나지 않고, 그날 홀에서 김철륜 교수를 다시 만났다. 인사를 받고 나만큼이나 반가워하는 모습이 감사했다. 기도 모임에 나오지 않겠느냐는 말씀이 비신자인 나에게는 솔직히 좀 부담스러웠다. 유튜브를 보니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사시는 것 같다.

훈훈한 내용. 저분의 트레이드 마크는 나비넥타이이다

다음에 뵙게 되면 내가 자막을 만든 영화 <중단된 멜로디Interrupted Melody>를 선물로 드려야겠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역 가운데 유일하게 노래가 없는 남작 부인 역의 엘리노 파커가 얼마나 음악 재능이 넘치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숨은 걸작이다. 소아마비로 무대를 떠났던 호주 소프라노 마조리 로런스의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에서 파커는 푸치니, 베르디, 비제, 생상스, 바그너의 대표 아리아를 열연한다. 목소리는 역시 숨은 실력자 에일린 패럴을 더빙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열연의 가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혼자만의 즐거움을 위해 이 영화의 자막을 번역하는 동안 나는 남작부인(이름이 ‘엘자’이다)을 그 외모 이상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작년 한 해 카멜롯의 전설, 세종문화회관, 제주시청 인문학 강좌, 나주 한국전력, 전주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상영해 절찬을 얻었다. 다행히 파커도, 그녀의 남편 역인 글렌 포드도, 동생인 로저 무어도 모두 죽었고, MGM 영화사도 망했으니, 적당한 때를 봐서 유튜브에 올려보아야겠다.


김철륜 선생의 <서양 음악사>에서도 나는 B학점을 받았다. 그러나 C를 받은 최승규 선생의 <서양 미술사>보다는 낫지 않은가! 다음 이야기에 미술사 나머지 공부를 올리겠다. 명예 A학점은 없나? 아레초에 간 진짜 이유는 진짜 십자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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