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프레스코와 보후슬라프 마르티누의 음악
너무 옆길로 빠졌다. 귀도를 만나기 위해 아레초에 온 것은 아니다. 이곳의 성 프란치스코 교회에 있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5-1492)의 벽화를 보는 것이 목적이다. 겉으로 보기엔 특별할 것이 없다. 단조로운 골격이나 사치스럽지 않은 색깔이 그 이름을 가져온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수수하다.
내부도 로마나 피렌체의 호화로운 교회들에 비할 바가 못된다. 델라 프란체스카의 벽화가 없다면 말이다.
그림이 묘사한 <진짜 십자가 이야기The Legend of the true Cross>는 13세기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인 자코포 다 바라기네(Jacopo da Varagine)가 쓴 <황금전설>에 나오는 설화이다. 1452년, 델라 프란체스카는 문화에 소양이 깊은 조반니 바치(Giovanni Bacci)로부터 벽화를 의뢰받았다. 교황청 살림을 책임지는 카메라 아포스톨리카의 성직자였던 바치는 프란체스카에게 가족 교회당의 성가대석에 로렌초 디 비치(Lorenzo di Bicci)가 작업하던 일련의 프레스코화를 그를 대신해 완성해 달라고 부탁했다.
피에로는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특히 소중하게 생각했던 <진짜 십자가 이야기>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그려 넣었다. 그 이야기에는 수 천 년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과 군주, 황제가 들어 있다. 그가 그린 열 개의 그림에는 정치적, 종교적인 상징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야기는 까마득한 옛날, 930세에 이른 아담이 죽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에피소드는 세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오른쪽에는 노쇠한 아담이 역시 나이 든 이브와 세 아들에 둘러싸인 채 앉아 있다. 일찍이 대천사 미카엘은 그에게 몸에 바르면 병이 낫는 기름을 약속했다. 아담은 아들 셋(Seth)을 천국의 문으로 보내 기름을 받아 오라고 한다. 뒤쪽을 보면 작게 묘사된 그림에서 셋이 대천사에게 말을 건네고 천사는 그에게 지혜의 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준다. 그 지팡이로부터 구원의 기름이 나올 것이지만 그것은 5500년이 지난 뒤이다. 셋이 돌아왔을 때 아담은 이미 죽어 있었다. 아담은 바닥에 누워있고, 셋은 그의 입에 지팡이를 물린다. 거기서 풀이 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들 나무가 자란다. 벽화가 벗겨져 그림이 드문드문 보이지 않지만, 이 장면의 배경에는 웅장한 나무가 뒤로 서 있다.
두 번째 그림은 굵은 기둥이 두 장면을 나눈다. 아담의 무덤에서 자란 작은 가지는 뿌리를 뻗어 수 백 년이 지나 솔로몬 왕의 궁전을 지을 만큼 자랐다. 그러나 나무는 너무 굵거나 가늘어 기둥으로 쓸 수 없었다. 솔로몬 왕은 이 나무로 냇물에 다리를 놓기로 했다. 시바의 여왕이 수행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찾았다. 그녀는 나무다리를 보고 인류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올 그리스도를 예감했다. 그녀는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형을 당할 성스러운 나무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솔로몬 왕과 신하들이 그녀를 맞는다. 이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통합을 상징한다. 그녀는 왕의 손을 잡고 그 나무가 유대 왕국의 끝을 볼 것이라고 말한다. 솔로몬 왕은 예언에 재빨리 반응했다. 그는 나무를 베어 땅에 묻었다. 그런데 다시 그 자리에 연못이 생겼고 사람들은 거기서 번제(燔祭)에 바칠 동물을 씻겼다. 연못은 기적을 행해 그 물에 목욕하면 병자도 씻은 듯이 나았다.
화가와 그의 조수들은 나무가 옮겨지는 순간을 그렸다. 전체 그림을 비스듬하게 채운 널빤지는 십자가를 연상케 한다. 그것을 짊어진 사람들의 자세도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때문에 일꾼의 머리를 둘러싼 나이테를 후광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는 나무가 주인공이고 사람들의 행동은 죽음과 부활의 운명에 다가가게 한다.
세월이 흘러 예수의 강림에 도달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임신을 알리는 천사를 그렸다. 이 에피소드는 원래 <진짜 십자가 이야기>에는 나오지 않는지만,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을 십자가에 연결해 준다. 이것은 전체 이야기에 그리스도가 빠졌기 때문에 더욱 의미 깊다. 인물들은 기하학적인 르네상스 건축 속에 정확히 자리한다. 동정녀의 슬픈 모습은 자신의 아들이 인간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것을 예감한 듯하다. 천사는 구름 사이에서 거룩한 모습을 비추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나뭇잎을 들고 있다.
이야기는 3세기를 건너뛴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나오지 않는다. 앞선 장면과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중심인물은 이번에도 천사이다. 그는 작은 십자가를 들고 커튼 뒤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비춘다. 두 위병이 지키는 가운데 황제는 잠들어 있다. 그는 다음 날 정적(政敵) 막센티우스와 밀비우스 다리를 사이에 두고 싸울 것이다. 천사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것은 “이 상징으로 승리하리라In hoc signo vinces”였다. 천사는 군사의 수가 적어 걱정하는 황제에게 병사들 방패에 십자가를 그리도록 명령한다.
전투의 날이 밝았다. 왼쪽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군대가 제국의 독수리 문장을 매단 창을 하늘 높이 들고 나선다. 그것은 이미 공격이 아닌 승리를 상징한다. 가운데에는 황제가 작은 십자가를 들고 강을 향해 말을 몬다. 반대편의 적군은 단지 이 징표만 보고도 도망을 친다. 그림이 지워져 넓은 부분이 보이지 않지만, 말과 사람이 뒤엉켜 도망하는 것과 그들의 얼굴이 공포와 절망에 질린 것을 볼 수 있다. 막센티우스는 두 주먹으로 말의 갈기를 꽉 움켜쥐었다.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를 공인한다. 그런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얼굴을 1448년에 세상을 떠난 동로마 제국의 황제 팔레올로구스 요한 8세로 그렸다. 그는 동로마와 서로마의 교회를 재결합하려고 노력했고, 투르크 제국에 맞서 새로운 십자군을 창설했다. 화가는 이 인물을 또 다른 그림 <그리스도의 책형> 가운데 붉은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빌라도 총독으로 묘사했다.
이제 그리스도교의 수호자가 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모후 헬레나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진짜 십자가를 찾게 한다. 헬레나는 예루살렘에 도착해 유다라고 불리는 유대인을 심문한다. 그는 성물이 어디에 묻혔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대답하지 않자 황후는 그를 우물에 매단다. 이래가 지나 유다는 결국 비밀을 털어놓기로 한다. 밧줄에 달린 그를 도르래로 끌어올리자 그는 비너스에게 바친 신전 아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묻혔다고 털어놓는다. 헬레나가 이교도의 신전을 허물자 골고다의 세 십자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어떤 것이 그리스도를 못 박았던 것인가?
그림은 두 가지 순간을 보여준다. 왼쪽 그림에서 황후는 십자가를 발굴하는 인부를 보고 있다. 그녀 옆 사람이 작업을 지켜보는데, 아마 화가 자신으로 보인다. 뒷 배경은 예루살렘 시가이나, 그 모습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레초의 도시 건축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값진 대리석으로 장식된 교회 앞에 진짜 십자가가 보인다. 그것을 죽은 젊은이 앞에 놓자 그는 살아나 관에서 일어난다. 이 십자가가 진짜로 판명된다.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세기 뒤, 페르시아의 코스로에스 왕이 예루살렘에서 성물을 약탈한다. 그는 신으로 추앙받고 싶어 십자가를 옥좌 오른편에 둔다. 동로마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그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프란체스카는 전사와 말과 깃발과 무기가 뒤엉킨 군대로 전투를 보여준다. 화가는 헤라클리우스가 코스로에스 병사의 목을 베어 피가 치솟는 잔혹한 장면을 여과 없이 그렸다. 빈 옥좌 앞에 페르시아 왕이 끌려 나왔고 패자들은 끌려가 참수를 당한다. 이를 바라보는 세 사람은 화가 당대의 옷을 입은 그의 후원자들, 곧 프란체스코 디 바초, 안드레아 디 톰마소, 아뇰로 디 지롤라모이다.
헤라클리우스는 승리를 자축하며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묘소로 가져온다. 그러나 도시의 문은 닫혀 있다. 한 천사가 그리스도가 죽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를 예루살렘 안으로 들인다. 헤라클리우스는 말에서 내려 십자가를 들고 맨발로 성벽에 다가가 안으로 들어간다. 구약과 신약을 뜻하는 두 나무 사이로 십자가가 있고 그 앞에는 군중이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아담의 나무는 이제 거룩한 예루살렘으로부터 속세로 계속된 여정을 마무리하고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 된다.
20세기 체코 작곡가 보후슬라프 마르티누(Bohuslav Martinů, 1890~1959)는 1954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아레초에서 이 그림을 보았다. 그는 곧이어 니스로 돌아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프레스코화Les Fresques de Piero della Francesca>라는 제목의 관현악곡을 작곡한다. 마르티누의 후기 작풍을 가리켜 종종 ‘신인상주의’라고 하는데, 이는 그의 스승 알베르 루셀의 인상주의와 스트라빈스키풍의 신고전주의를 결합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르티누의 독창성이 바탕이며, 소재를 다루는 그의 숙련된 솜씨는 탁월하다. 이 작품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음악에서 고요한 적막과 황혼, 예기치 못한 일로 가득한 색채감 있는 분위기, 안락하고 감동을 주는 시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프레스코화>는 세 악장으로 되어 있다. 첫 악장은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 두 번째 악장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꿈’을 그렸으며, 세 번째 악장은 델라 프란체스카 회화 전체의 인상을 녹인 듯 환상적이다.
195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마지막 콘서트는 체코 지휘자 라파엘 쿠벨리크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의 연주회로 꾸며졌다. 프로그램은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차이콥스키의 B단조 교향곡 ‘비창’ 그리고 바로 쿠벨리크에게 헌정된 마르티누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프레스코화>였다. 잘츠부르크의 지역 신문은 이 곡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마르티누는 미국 시절을 거치면서 초기작과 달리 훨씬 모차르트와 같은 친근한 면모를 보여준다. 시작부터 소용돌이치는 듯한 음색으로 파형을 만들고, 그것이 곧이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축제 같은 모습으로 확대된다. 2악장은 아다지오로 시작하지만 곧 색채감 있는 분산 화음으로 ‘삶의 기쁨’을 표현한다. 민속 요소와 초기 작품에서 보였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3악장 포코 알레그로는 강렬한 리듬의 고삐가 풀리고 머지않아 버르토크나 스트라빈스키 영역에 도달한다. 목관 악기의 매혹적인 춤곡은 다시 한번 디오니소스의 제전으로 안내한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음악은 역시 헨델의 오라토리오이다. 헨델은 <솔로몬>을 1748년 그의 나이 63세에 작곡했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곡은 5월 5일부터 6월 13일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전광석화같이 이뤄졌다. 헨델 생전에 고작 다섯 차례 공연되었을 뿐이지만 이는 노대가의 최고 걸작 오라토리오 가운데 하나이다. 작품은 총 3부이고 다시 다섯 개 장면으로 나뉜다.
5:15 CHORUS OF THE PRIESTS: "Your harps and cymbals sound"
8:24 (Levite – air) "Praise ye the Lord for all his mercies past"
13:18 CHORUS: "With pious heart"
17:39 SOLOMON: "Almighty power"
20:18 ZADOK: "Imperial Solomon"
28:40 (Solomon – air) What though I trace each herb and flow'r
35:19 (Queen – air) Bless'd the day when first my eyes
40:30 (Queen Solomon – duet) Welcome as the dawn of day to the pilgrim on his way
43:55 (Solomon – air) Haste to the cedar grove
49:00 (the nightingale chorus) "Let no rash intruder"
52:42 CHORUS: "From the censer curling rise"
1:21:45 (First harlot, Solomon – duet) Thrice bless'd that wise discerning King
1:25:02 CHORUS: "From the east unto the west"
1:33:00 (First harlot – air) "Beneath the vine" (1:34:02부터 1:37:44까지 먹통)
1:38:42 CHORUS: "Swell the full chorus to Solomon's praise"
1:41:31 The famous Sinfonia ("Arrival of the Queen of Sheba")
2:09:32 CHORUS: "Praise the Lord"
제1장은 오랫동안 지속된 성전의 완성을 경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전은 원래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짓기 시작했지만,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많은 피를 흘린 탓에 그 완성을 보지 못하는 벌을 받았다. 두 번째는 솔로몬이 아내로 맞은 이집트 파라오의 딸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을 서로 나란히 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이다. 구약에 따르면 솔로몬은 우상 숭배하는 아내와 후궁들 때문에 몰락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제2부는 다윗 왕조의 영광을 찬양하는 합창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곧바로 솔로몬이 적통이 아니라는 사실이 환기된다. 그는 다윗이 부정하게 얻은 아내 바세바와 사이에 낳은 넷째 아들이었지만, 왕이 되기 위해 세 형을 암살한다.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옥좌에 오르는 길이 하늘의 뜻인 것처럼 정당화된다. 이것은 마치 헨델 당대에 영국 국교도들이 가톨릭이었던 스튜어트 가문 대신 독일 하노버 궁정의 조지 1세를 국왕으로 맞은 것을 연상케 한다.
다음 네 번째 장면은 솔로몬의 지혜를 예찬하는 유명한 일화가 소개된다. 두 사람이 창녀가 한 아이를 가지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한다. 솔로몬은 천칭을 가져다 아이를 반으로 잘라 똑같이 나눠주라는 판결을 내린다. 그 결과 진짜 어미를 가렸음은 잘 알려진 대로이다. 아이를 둘로 가르라는 임금의 명령은 레치타티보로 다소 심드렁하게 처리되었고, 대신 헨델은 두 매춘부의 반응에 집중한다. 애틋하게 가슴 저미는 슬픔을 노래하는 진짜 어미와, 될 대로 돼라 식의 막가파인 가짜 그리고 번득이는 지혜와 준엄한 평결로 백성의 찬사를 받는 솔로몬 왕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마지막 3부는 그 유명한 ‘시바 여왕의 도착’으로 시작한다.
여왕은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치적을 안내받는다. 솔로몬은 마치 축제 사회자가 진행을 하듯 자신의 궁전과 성전을 여왕에게 뿌듯하게 소개한다. 여기서 솔로몬은 고대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이자,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요, 베네치아 건축의 명장 안드레아 팔라디오와 같다. 시바의 여왕은 지금까지 이런 장관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말로 경탄을 아끼지 않는다. 두 사람은 사랑의 연가를 부르며 끝을 장식하고, 이는 아름다운 여인에 약했던 솔로몬의 부정한 모습을 암시하는 또 다른 예이다.
오라토리오 <솔로몬>의 대본 작가는 미상이나 적어도 그의 눈에 비친 솔로몬 왕이 널리 알려진 것처럼 성군(星君)의 모습만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는 왕이 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 형의 인간이었고, 여색에 탐닉했던 절대군주였다는 점을 이 작품은 간과하지 않는다.
헨델은 <솔로몬>을 위해 일반적인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큰 합창단을 염두에 두었다. 열세 개의 합창곡 가운데 단 한곡만이 4부 합창이고, 일곱 곡이 8성부로 되어 있으며, 나머지도 대개 두 파트로 나뉘어 노래하는 구조이다.
솔로몬과 파라오 딸의 결혼 초야를 그린 일명 ‘나이팅게일 합창’은 감미로운 자장가로, 이를 가리켜 헨델 권위자 윈턴 딘은 “전무후무한 음악과 영어의 완벽한 결합”이라고 말했다.
헨델은 <솔로몬>을 통해 외국 작곡가로서 귀화한 자신의 대영제국에 대한 애국심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제국의 왕’ 솔로몬을 하늘의 은총으로 얻은 지혜로 국부를 이룬 뒤 그것을 문화와 예술을 위해 사용하는 계몽 문화 군주로 묘사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이 작품은 그의 생전에 고작 다섯 번 상연되었다. “시정과 환희에 빛나는 음악의 위대한 제전”이라는 로맹 롤랑의 평가가 웨스트민스터에 묻힌 그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아마도 솔로몬은 그보다 시바 여왕의 사랑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델라 프란체스카의 프레스코 가운데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부분은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에 등장한다. 간호사 해나와 폭탄 제거병 킵의 동화 같은 나들이 장면이다. 킵은 해나를 교회에 데려가 미리 설치해둔 도르래와 조명으로 프레스코의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말로 설명할 것이 아니다.
마이클 온다치가 쓴 원작 소설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은 쥘리에트 비노슈가 연기한 해나가 아니다. 킵이 영국에서 온 교수의 유적 연구를 지원하는 장면에 이 부분이 나오고, 그 또한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이 아니라 ‘막센티우스 황제의 도주’를 살펴본다. 앤서니 밍겔라의 영상이 온다치의 글을 매만진 결과가 많은 사람에게 좀 더 낭만적인 인상을 남겼다.
모든 남자들의 적(敵)이 될 만한 킵의 이 깜짝 선물 뒤로 유키 구라모토풍의 음악이 흐른다. 좀 더 들어보면 그 뿌리는 바흐이다. 킵과 해나의 첫 만남이, 버려진 피아노로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는 데서 이루어졌으니, 두 사람이 연인이 된 뒤인 이 교회 장면에도 바흐의 곡이 썩 어울린다. 파르티타 4번의 ‘알르망드’가 유키 구라모토풍의 사운드트랙보다 낫지 않을까?
많은 그림을 듣고 음악을 보았지만 아레초에 온 지 한 시간밖에 안 지났다. 아직도 이 교회와 프레스코를 떠나고 싶지 않은 분에게 리카르도 무티가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을 지휘한 실황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