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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Mar 15. 2019

랜슬롯과 기네비어의 고사를 읽다가...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단테의 <신곡>이야말로 근대의 시작을 알린 걸작이다. 지금 여기를 천국과 지옥, 연옥으로 펼쳐보인다


피렌체로 돌아왔다. 사실 1시간 거리의 아레초와 피렌체는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페트라르카의 아버지가 피렌체를 떠나 아레초로 간 까닭도 그와 관련된 것이다.


12세기 이탈리아에 뿌리 깊은 지역감정이 싹튼다. 원래 갈등은 독일에서 비롯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놓고 벨프 가문과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대립하던 시절, 호엔슈타우펜의 프리드리히(1122-1190)가 1152년 황제에 즉위한다. 기골이 장대한 황제는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Barbarossa’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바르바로사는 붉은 수염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이다. 뒷날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할 때 작전명이 ‘바르바로사’였다. 황제가 독일의 영광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믿음의 자기 암시였다.


일찍이 프랑크 왕국의 샤를 마뉴 대제와 독일의 첫 황제인 오토 1세 이후 독일의 황제는 현재의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도 지분이 있었다. 동프랑스인 부르고뉴와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북이탈리아인 롬바르디아 지역이 거기에 속했다. 때문에 붉은 수염 황제도 아헨(독), 아를(프), 파비아(이)에서 따로 대관식을 가졌다. 황제가 이탈리아의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는 한, 로마 교황과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교황을 견제하려는 지역은 황제를 지지했다. 그렇게 해서 벨프와 호엔슈타우펜의 대립이 이탈리아에서 교황파인 ‘구엘피Guelfi’와 황제파인 ‘기벨리니Ghibellini’의 반목으로 이어졌다.

황제파와 교황파의 대립을 소재로 한 베르디의 오페라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한 지역 안에서도 어느 쪽을 지지하나를 놓고 대립이 극심했다. 대표적인 것이 베로나의 두 집안, 카풀레티와 몬테키였다. 줄리에타와 로메오 비극의 씨앗인 것이다. 피렌체도 극심한 분열 끝에 구엘피가 권력을 잡았으나, 그 안에서 다시 ‘백파Bianchi’와 ‘흑파Neri’로 분열한다. 구엘피는 교황파이긴 했지만, 그중 백파는 당시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 반대했다. 때문에 백파 지지자가 피렌체에서 추방되거나 피신했으니, 대표적인 사람이 단테 알리기에리와 페트라르카의 아버지였다.


피렌체의 실각한 망명 정객 단테가 <신곡>을 쓴 동기이자, 페트라르카가 피렌체가 아닌 아레초에서 태어난 이유이다. 또한 이 시기에 교황의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고, 새 교황과 프랑스에 머물던 페트라르카가 로마에서 온 콜라 디 리엔초를 만나 이탈리아 공화정의 이상을 꿈꾸었다는 이야기를 앞서 했다.

위대한 단테를 읽은 뒤에 리스트는 환상곡풍의 소나타(Après une lecture du Dante: Fantasia quasi Sonata, 1849)를 썼다. 이 또한 순례의 해에 속한 곡이다.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 잘 치네

그로부터 8년 뒤인 1857년 리스트는 단테에 대한 생각을 교향곡으로 확대한다. 물론 <신곡>이 제재이다. 흔히 <신곡>을 어렵다고 하지만 그것은 선대의 많은 인물과 당대의 여러 사건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므로 충실한 주석을 따라 읽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니체를 읽는 것처럼 해독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니체도 300년쯤 지나면 더욱 많은 주석이 따라붙어 더욱 쉽게 읽히지 않을까?

피렌체 두오모에 있는 신곡을 묘사한 프레스코

어려운 것이 아름답다. 리스트의 <단테 교향곡> 또한 <신곡>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교향시의 시대를 연 리스트가 아니면 누가 이런 곡을 썼겠는가? 말러 또는 부조니까지 기다려야 했으리라. <신곡>은 ‘지옥Inferno’, ‘연옥Purgatorio’, ‘천국Paradiso’으로 되어 있지만 리스트가 쓴 것은 지옥과 연옥까지이다. 친구 바그너가 어떤 이생의 작곡가도 천국의 기쁨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하자 그 대신 마지막에 합창의 ‘마니피카트’를 덧붙이는 것으로 끝냈다.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를 가지고 만든 단테 교향곡의 동영상. 다니엘 바렌보임 / 베를린 필하모닉

I. 지옥 Inferno (0:00)

II. 연옥 Purgatorio (21:50- 마니피카트 Magnificat (42:28)


위 동영상에서 보듯이 리스트는 지옥과 연옥의 장면들을 음악 드라마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신곡의 너무도 유명한 첫 글귀는 내가 좋아하는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생의 절반을 보낸 나는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홀로 어두운 숲 속에서

ché la diritta via era smarrita.

길을 잃고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손에 이끌려 지옥문 앞에 도달한 단테는 아래와 같은 글귀를 읽는다.


Per me si va nella città dolente, 

나를 통하면 슬픔에 가득 찬 도시에 이를 수 있다.

Per me si va nell'eterno dolore, 

나를 통하면 영원한 슬픔에 이를 수 있다

Per me si va tra la perduta gente. 

나를 통하면 버림받은 사람들에 이를 수 있다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

이곳으로 들어가려면 희망을 내려놓으라


이 글귀가 지옥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첫 악장을 지배한다. 


중심부의 로맨틱한 음악(7:27)은 ‘지옥편’ 칸토 5에 나오는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이야기를 그린다. 프란체스카 다 폴렌타는 라벤나(단테가 숨진 도시이다)의 규수였다. 그의 아버지는 교황파였지만 정략적으로 리미니의 황제파 몬테펠트로 집안과 혼사를 맺기로 한다. 몬테펠트로의 아들 잔초토는 추남이었다. 때문에 혼사를 그르칠까 봐 약혼 때는 미남 동생 파올로가 형을 대신해 나왔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한눈에 반했지만, 정작 결혼식 뒤에 그녀가 맞은 사람은 마음에 없는 잔초토였다. 결국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고사를 읽다가 입을 맞춘다.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만남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장면. 내가 당신을 떠나더라도 여름은 아닐 거예요. 가을도.. <카멜롯> 가운데

단테는 이들의 고사에 또 하나의 핵심 구절을 남겼다.


Nessun maggior dolore 

이보다 큰 고통은 없을 것이니

che ricordarsi del tempo felice 

행복한 시절을 돌아보지만

ne la miseria.

현실은 가장 비참한 지경인 때 말이다


리스트 또한 절묘한 에로티시즘으로 이 부분을 그려낸다. 이윽고 지옥의 다음 풍경(16:42)은 주피터를 모독하다가 번개를 맞은 카파네우스를 보여준다. 단테는 그리스 신화의 주신(主神) 주피터를 기독교의 야훼 하느님과 동일시한다. 음악으로 표현된 가장 처절한 형벌에 ‘희망을 내려놓으라Lasciate ogni speranza’의 동기가 더해지며 첫 악장이 마무리된다.


2악장 ‘연옥편’은 호른의 독주로 지옥과 천국의 사이에 왔음을 알린다. 해변에서 시작해 가파른 산기슭을 오르는 여정은 단테 ‘연옥편’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두 번째 부분(30:41)에서 비올라를 시작으로 현의 푸가가 시작된다. ‘푸가’라는 말의 어원이 쫓고 쫓기는 것(fugare, fugere)이니, 속죄의 순례를 그린 ‘연옥편’의 진행에 꼭 필요한 요소이리라. 푸가가 고조되어 호른이 가세하는 부분에서 리스트는 친구 베를리오즈의 <레퀴엠> 첫 악장을 연상케 하는 압도적인 음향을 들려준다.

작곡가들은 참 자기 최고 작품이란 말을 자주한다. 이 또한 그렇다

이제(37:20) 속죄의 행렬은 성스러운 연극이 된다. 연옥의 후반부(40:06)에 단테는 연인 베아트리체와 재회하며 스승 베르길리우스를 떠나보낸다. 마지막에 ‘마니피카트’(42:28), 곧 성모의 노래를 넣은 것은 이상적인 여인 베아트리체를 성모와 구원의 대리인으로 삼은 것이다. 이것은 괴테의 파우스트가 그레트헨에 이끌려 성모 앞으로 올라가는 것과 상응한다.


리스트의 <단테 교향곡>은 <파우스트 교향곡>과 같은 시기에 발표되었다. 내가 <FM실황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11년 동안 <파우스트 교향곡>을 소개한 것은 한두 번이다. <단테 교향곡>은 전무하다. 그러니 얼마나 값진 것인가! 이 곡을 따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다른 작곡가의 숱하게 들었던 교향곡은 접어두시라.


1876년 바이로이트를 방문한 차이콥스키는 리스트의 음악을 듣고 영향을 받아 교향적 환상곡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를 썼다. 25분에 달하는 장대한 곡이다. 

이고르 마나셰로프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2015년 6월 18일 차이콥스키 홀 연주

시작은 역시 숲에 이르러 길을 잃은 단테의 모습니다. 휘몰아치는 지옥의 불길을 뚫고 단테는 ‘욕정’ 때문에 지옥에 온 사람들을 만난다. 파리스와 헬레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이어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나타난다. 단테의 <신곡>에서처럼 프란체스카가 자신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나지막이 털어놓는다. 잔초토를 동생 파올로인 줄 알고 속아서 결혼한 데서 빚어진 비극 말이다. 기네비어와 란슬롯의 고사를 돌아보는 지점에서 열정은 극에 달한다. 그 순간 나타는 잔초토가 동생과 부인을 살해하면 음악은 레퀴엠으로 바뀐다. “가장 비참할 때 행복한 시절을 돌아보는 최악의 슬픔”을 느끼는 것으로 곡은 끝난다.


차이콥스키가 쓴 교향시들 가운데 가장 많이 연주되는 것은 환상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나머지 <햄릿>, <템페스트> 그리고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를 다 합쳐도 <로미오와 줄리엣> 하나보다 자주 들을 기회가 없다. 다른 두 곡은 다음 기회로 돌리고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의 가치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것은 “만프레드 교향곡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바이런의 시에 붙인 <만프레드 교향곡>은 교향곡 4번과 5번 사이에 쓴 곡이다. 작곡가 자신이 그때까지 쓴 곡 중 최고라고 자평했다.


차이콥스키를 무진장 존경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이 아이디어를 물려받았다. 1906년 단막 오페라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가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학창 시절 차이콥스키의 <만프레트 교향곡>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편곡한 적이 있다. 지금은 악보가 전하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선배의 숨은 걸작을 알아본 것이다. 그의 대표작이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이미 5년 전에 나왔고, 역시 푸시킨 원작의 짧은 오페라 <인색한 기사>를 직전에 작곡해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함께 무대에 올렸다. 대본은 차이콥스키의 동생 모데스트가 썼다.

2015년 프랑스 낭시의 로렌 국립 극장 공연. 빈약한 대본을 좋은 연출이 보완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오페라는 림스키코르사코프로 대표되는 러시아 국민음악파의 전통보다는 차이콥스키의 어법을 충실히 계승했다. 그가 혁명에 따른 망명 이후 생계를 위해 지휘와 피아노에 매진하지 않고, 모국어로 오페라를 계속 썼더라면 훨씬 의미심장한 작품을 많이 썼으리라 짐작하게 한다.


친구였던 베이스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의 저음에 익숙한 덕분인지 그의 서곡은 여태껏 들었던 어느 단테의 지옥보다 낮은 곳으로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를 안내한다. 가사 없이 울부짖는 망자들의 합창은 곧이어 작곡할 교향시 <죽은 자들의 섬>과 일맥상통한다. 파우스트를 마녀들의 향연으로 데려갔던 베를리오즈의 음악 다음으로 가장 생생한 지옥의 묘사이다.

아르놀트 뵈클린이 그린 <죽은 자들의 섬> 연작. 베르길리우스와 단테의 뒷모습 아닌가!

라흐마니노프는 란초토의 입으로 그때까지의 일을 노래하게 한다. 아내가 추남인 자기 대신 동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괴로운 그이다. 그는 두 사람의 부정을 덮칠 계략을 세운다. 원래 이 이야기가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라 불리는 까닭은 단테가 지옥에서 만난 사람이 세 당사자 가운데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 라흐마니노프의 주인공은 남편 란초토이다. 본래 조반니(Giovanni) 또는 잔초토(Gianciotto)인 그의 이름도 여기서는 란초토(Lanciotto)이다. 마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읽을 호수의 기사 란슬롯(Lancelot)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라흐마니노프는 그에게 베이스 바리톤 음성을 부여했다. 


라흐마니노프 또한 “가장 비참할 때 행복한 시절을 돌아보는 최악의 슬픔”을 노래하는 것으로 처절하게 막을 내린다. 그것은 먼 뒷날 미국에서 그가 작곡할 <교향적 춤곡>의 피날레를 미리 듣는 것 같다.

중랑천 아님

단테는 <신곡>의 세 편을 모두 별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그 별이야말로 지옥에 내려갈 때 내려놓았던 ‘희망’인 것이다. 피렌체 밤하늘은 도시의 야경과 둥근달이 모든 별을 감춰버렸지만, 불빛을 반사하며 흐르는 아르노 강은 은하수와 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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