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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촬영감독 김정욱 Mar 11. 2020

9.11 대테러 사건과 포크록의 거장

미국이야기 3 _ 닐 영(Neil young) 

( HEART OF GOLD )_NEIL YOUNG 


Keep me searching for a heart of gold

내가 순수한 마음을 계속 찾게 하죠

I've been a miner for a heart of gold

나는 순수한 마음을 찾는 광부였죠

And I'm getting old

난 나이가 들어가지만

Keeps me searching for a heart of gold

순수한 마음을 계속 찾아요


70년대 통기타로 시작하는 7080 세대를 살아온 사람은 포크록의 거장, 살아있는 포크록의 전설, 닐 영(NEIL YOUNG)의 대표곡 HEART OF GOLD의 가사 내용을 기억할 것이다. 통기타의 음률처럼 순수했던 시절 그 시절 우리는 음악다방에서 나오는 닐 영의 노래를 들으며 감성을 키웠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70대의 노장인 닐 영의 새로운 음악 "LETS ROLL"을 들으며 더 이상 70년대 HEART OF GOLD의 가사에 나오는 황금 심장을 찾아다니던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그가 2001년 미국의 9.11 대테러 사건 후 발표한 노래 "LET'S ROLL"의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LET ROLL" 

~ 악을 급습해 ~ 

~ 제압해버려 ~

~ 끝까지 쫒아 가 찾아내 ~ 


이 노래의 가사는  9.11 테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가사는 공격을 부추기는 외침이었다. 그런 후에 그는 새로운 정치적 문구를 제시하는 대통령 탄핵에 대한 노래 "living with war"를 발표한다. 사실 그는 미국인이 아니라 캐나다 시민으로 40년 동안 미국에서 부와 명예를 얻었고 캐나다 출신의 사회운동가로 약자의 입장에 서온 싱어송 라이터이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런 그가 "living with war"에서 레퍼들처럼 대통령의 탄핵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다. _ 촬영 일지 2001.9.11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30분경 나는 KBS 일요스페셜_ 미 연방정부의 공립학교 개혁에 관한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퀸즈보로 브리지 다리 위에 있었다. 옆좌석 에는 촬영 어시스트 제임스(한인 2세)라는 청년이 있었고 청년은 미국 청소년 선교 단체인 youth and family focus 소속이었다. 우리는 쌍둥이 빌딩위로 검게 피어 오르는 검은 연기를 무감각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바로 그때 라디오에는 급박한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시의 상황으로 미국 방송사 cnn과 abc에서도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검은 연기에 대하여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_중략 

우리가 다운타운에 도착했을 때는 뉴욕경찰 (NYPD)의  철저한 통제로 쌍둥이 빌딩 건물 가까이 가는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제임스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동양인으로는 현장에 처음 도착하여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건물 안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유독가스를 견디지 못해 빌딩에서 뛰어내렸고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며 죽음을 각오하고 미국의 소방관들은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공격받지 않았던 미국의 본토를 공격한 사상초유의 대테러이다

이 테러는 테러범을 포함하여 2,996명의 사망자와 최소 6,0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은 전원 사망하였고, 워싱턴 국방부 청사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이 125명, 세계무역센터에서는 약 2,500명의 사람이 사망하였다. 미국 전역은 하루 만에 일어난 큰 테러사건으로 인해 비상사태에 빠지게 되었고, 세계 경제의 중심부이자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은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테러 발생 직후 CNN 방송망을 시작으로 사건의 상황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9·11 테러는 순식간에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_ 계속 



9.11 테러는 이슬람교과 기독교의 종교적인 문제도 있지만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문제를 떠나 사람이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였다. 


9.11 테러는 이슬람주의 지역분쟁과 같은 유럽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다른 어마어마한 충돌이었다. 근대에 들어 종교는 폴란드의 가톨릭과 독일의 루터교회. 알제리의 이슬람. 티베트의 불교, 등 민족과 결합된 것이다. 9.11 테러 후 종교적으로 중요한 점은 이슬람을 악마화하고 이슬람 세계와 관련된 합리적인 논의를 거부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9.11 테러는 세계를 테러리즘과 종교를 중심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당시 9.11 테러 후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미국에서는 2001년 9월 11일의 테러를 간단히 9/11이라 쓰고 'Nine Eleven'이라고 읽는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긴급구조 전화번호 911(Nine One One)과 똑같은 숫자다.      

또한, 테러조직 알 카에다 두목 빈 라덴이 테러범들을 미국에 보내 민간 항공기들을 납치하여 미국 정치와 경제의 심장부 워싱턴과 뉴욕의 주요 건물에 돌진시켜 약 4천 명의 희생자를 내게 한 이 가공할 테러의 거사일을  9월 11일로 정한 이유는 332년 전 이 날 이슬람 과격분자들에게는 잊지 못할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1683년 9월 11일 오토만 제국(지금의 터키를 중심으로 한 대제국)의 이슬람 군대가 오스트리아 수도 빈(비엔나)을 점령하려다가 기독교 국가인 폴란드 왕국 군대에 대패했다.  만일 이 전투에서 이슬람 군대가 이겼다면 오늘날 유럽 대륙은 대부분 아슬람 국가들이 되었을 것이라는 게 역사가들의 얘기다. 이렇게 중요한 전투에서 이슬람군 대가 기독교 군대에 참패한 치욕적인 날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빈 라덴이 이날을 미국 공격의 날로 정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그런가 하면, 실용적인 이유에서 9월 11일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즉, 미국 동북부 지역의 9월 중순은 맑은 날이 많은 시기이며,  주 중 항공기 승객이 가장 적은 날은 화요일이다. 승객이 적어야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범들에게 저항이 적을 것이기 때문에 9월 11일 화요일을 거사일로 택했는데 우연히 긴급전화번호 911과 같아졌을 뿐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진실이 땅에 떨어진 세대에 살고 있다. 미국은 테러가 일어난 동기에 대하여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고 9.11 테러의 동기는 심지어 공식 보고서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어쨌든 9,11 대테러는 교리의 충돌?이나 예수를 바라보는 견해의 문제? 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 였다.

스페인 태생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과거를 기억 못 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라고 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 과거를 숱하게 반복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과거는 대개 아프고, 하루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이기에 우리는 습관처럼 그것들을 내던져버리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내팽개쳐 버린다면 우린 그 아프고 서러웠던 아픔의 역사를 다시 한번 반복해야만 할 것이다


아직도 9.11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는 6건가량된다. 미국은 FBI를 통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정신병이 있거나 테러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시나리오를 꾸며 테러리스트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있다 


" 과거는 지난 시간입니다.

때문에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에 비하면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과거를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됩니다.

과거 속에서 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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