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불안함 속에 살아왔습니다
이제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에, 어린 시절 이야기는 상투적일 수 있지만 시작과 끝의 동일 선상에서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나의 어머니... 아들 아들 아들 내세우시며 아버지 가족에 천대를 견디셨다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견디셨는지 전혀 들을 수 없었습니다. 듣는다 해도 한쪽 집안의 일방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극적 요소를 위하여 나를 불행하게 만들거나 확실치 않은 어머니의 과거에 대하여 혹 아버지 집안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나의 기억 속에 어머니는 상당한 미인 이셨고, 아직도 나의 침실에는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의 눈을 열어 미소 짓게 합니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 겨울 우리가 살고 있던 집 앞의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당시 나와 동생의 운명은 어른들의 손에 달려 있었고. 어른들의 자리에는 우리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운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사랑보다는 강해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강해 질 수밖에 없었다.
꽝, 꽝, 꽝... 신은 나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언질을 주지 않으셨다. 아니 말씀을 주셨으나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당시 나와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고 우리는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꽝 꽝 꽝 *** 씨 댁 맞습니까?
잠결에 집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어릴 적 나는 엄마를 무척 힘들게 했다. 아비 없이 혼자 키우는 아들이 안 쓰러 우셨는지 나는 이름보다 아들, 아들로 불려지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우리를 위해 일 나가시는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마른오징어와 과자를 사달라고 조르며 엄마를 귀찮게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오징어를 좋아한다. 얼마나 철없는 자식 인가? 어머니는 생업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자식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얼마나 하셨을까? 돌이켜 보면 어머니가 일 나가시는 것이 싫어서 혼자 있는 게 싫어서 외로움이 싫어서 엄마를 괴롭힌 것이다. 한 번은 붉은 가로등에 하얗게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엄마를 기다리던 나는 지쳐 있었고 시간이 흘러 엄마가 두드리는 문소리를 듣고도 문을 열지 않았다. 오징어와 과자를 사 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얼마나 춥고 속 상하셨을까? 날씨의 추움은 견딜 수 있어도 철없는 자식을 보는 마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결국 나는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나고 영하의 추운 겨울 문밖에서 벌을 섰다. 붉은 가로등으로 흐르는 하얀 눈꽃송이는 나에게 고통으로 그날을 기억하게 한다
엄마를 다시 보지 못했던 그날 tv에서는 홍수환 선수의 권투 시합이 있었고 몇 분 후 어머니는 가던 길을 뒤로하고 내가 좋아하는 마른오징어와 과자를 사다 주셨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어머니는 14살. 12살의 어린 남매를 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얼마나 괴로 우셨을까? 시간이 지나 부모가 되어 어머니보다 훨씬 더 오래 살게 된 나로서는 죽어서도 하늘나라에 가지 못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나는 어머니 생전에 큰 죄를 지은 아주 못된 아들이었다.
자식 이란? 이런 것인가?
부모란? 이런 것인가?
그 후로 동생과 함께 곱게 화장을 한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은 삼 사일 후였다. 흰 소복에 곱게 화장을 한 어머니. 밝은 오후의 어여쁜 어머니의 모습이다. 저 멀리 아지랑이 피는 사람들 모습으로 밝은 빛이 들어온다. 병원 입구의 실루엣이다. 사람들의 모습이 검었고. 검은 형체의 사람들로 더 밝은 빛이 들어 오는 듯했다.
밝은 오후 어여쁜 모습으로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마치 우리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이려 빨 갖게 칠하신 입술은 선정적 이기까지 했다.
나는 어머니를 그냥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 하고 불러 보지도 못했고 마지막 모습을 내 눈과 기억 속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햇살이 어머니와 어머니가 누워 계신 관에 내리쬐고 있었다. 고왔다. 멀리 빛이 들어오는 입구에는 사람들의 서성거림이 보인다.
어머니와 헤어질 시간인 듯하다.
나는 잊혀질까 두려워 어머니의 모습을 눈 안 가득 깊이깊이 새겨 놓고 있었다. 어머니는 너무나도 곱게 차려입으셨고 편한 미소로 누워계셨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다.
눈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지워지고 나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사람들 마음속에..
사람들 마음속에 텅 빈 구멍 하나 있다
사람들 마음속에 쓰라린 상처 있다.
어떤 상처 아프지 않으랴
모든 상처 숨기고 살아간다.
살아남기 위해.....
다음날 아침 뉴스에 어머니의 교통사고가 보도되고 있었다
어머니는 뺑소니 차에 치어 돌아가셨다. _중략
당신을 만난 후 나는 예전에는 입밖에 낼 줄 몰랐던 말들을 찾아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말들을....
나는 슬프므로 슬프지 않았습니다.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이면 외로움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의 마음
세상 모두가 겨울입니다.
이번 겨울은 그 어느 해 보다 길게 느껴집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서 고민합니다
41주년 어머니 산소에서 동생과 함께 2020.1.27(음)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_바다의 기별 _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