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인 척하는 A급 영화
타란티노의 향기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를 즐겨보는 타입은 아니다.
일본 영화는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있는데 그런 분위기는 왠지 때를 타야 한달까,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근데 나라는 인간은 그런 때를 잘 감지하지 못한다.
다만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라면 다르다.
테츠야 감독 영화는 총 두 편을 봤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그리고 갈증.
두 작품 모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다. 아마 일본 영화의 감성이 없어서,
그리고 이 양반 특유의 B급 감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요즘엔 작정하고 B급 영화 만드는 게 더 힘들다.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B급 영화를 만드는 건 쉽다. 그냥 대충대충 하면 나오니까.
정말 어려운 건 B급 감성을 내는 거다.
근데 테츠야 감독은 이걸 기가 막히게 잘한다.
사심 좀 보태서 아시아의 타란티노라고 표현하고 싶다.
위 두 편의 공통점은 B급 감성이 제대로 묻어 있는 영화라는 점과 내용이 매우 어둡다는 점이다.
그냥 어두운 것도 아니고 심각하게 어둡다.
미칠 듯이 어두운 B급 영화라니, 상상이 가는가?
두 영화 호불호의 핵심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고 3일 간 우울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 영화의 초반 호흡은 매우 빠르다. 과거와 현재를 쉴 새 없이 오가는 것으로 모자라 컷간 간격도 좁다.
게다가 주인공을 맡은 야쿠쇼 코지의 화면상 배치도 뒤죽박죽이다.
180도 법칙이고 뭐고 자기 있고 싶은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난 이 어지러운 초반 시퀀스를 보고 이 영화가 내 취향을 저격할 것이란 기대를 품었다.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아키카주란 인물은 상당히 괴팍하고 폭력적인 인물이다.
거친 성격에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친다. 사람 때리는 건 우스운 일이다.
이 영화는 초반 빠른 호흡으로 아키카주를 조명하며 이 인물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가를 나타내고 있다.
영화는 보여주는 것이다. 대사가 과도하게 많으면 그건 영화가 아닌 드라마다.
후에 고마츠 나나가 연기한 카나코를 이야기할 때도 테츠야 감독은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이 영화는 아키카주가 행방불명된 딸 카나코를 찾으며 카나코의 진상을 깨달아가는 내용이다.
극 중 카나코는 마약에 손을 댄다. 그리고 친구들을 유혹해 마약을 먹이고 변태 성욕자에게 상납한다.
이 부분을 보여주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카나코는 극 중에서 '그저 재밌는 파티'라며 친구들을 마약 파티에 초대한다.
피해자 친구들의 시선에서 본 이 파티는 그저 흥겨운 파티처럼 보인다.
테츠야 감독은 이 장면을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찍었다. 파티 송의 뮤직비디오 같다.
어안렌즈로 촬영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 것처럼 중간중간 화면이 정지하기도 한다.
색감도 매우 화려하다. Yeah! 같은 타이포그래피도 본 것 같은데 이건 확실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씬의 컷간 간격 역시 좁다는 것이다.
호흡이 빠르다는 것인데, 덕분에 관객들은 이 파티가 매우 흥겹다는 사실과 동시에 지나칠 정도로 광기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파티 씬이 등장하고 잠시 후 선정적인 씬이 나온다.
아주 적나라하게 말이다.
이 영화는 가정폭력으로 사라진 딸이 무서운 악마가 되어 친구들을 팔아넘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용만 보자면 섬뜩하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대단한 건 테츠야 감독이 이 섬뜩함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은유적으로 표현하거나, 아예 싹 다 보여주거나 하지 않는다.
테츠야 감독은 영화 중간중간에 B급 감성을 녹여내며 인물들의 광기를 표현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타란티노의 향기를 느꼈다.
난 갈증에 평점 5점 만점 중 4점을 줬는데 이유는 B급 감성으로 가리지 못하는 높은 완성도를 봤기 때문이다.
진짜는 진짜를 증명한다는 격언이 떠오른다.
이 외에도 이야깃거리는 많지만 영화를 보고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쓴 글이기에 여기서 마무리하려 한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긴 하나 개인적으로 배운 점이 많았기에 추천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