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Shape of Water)> 톺아보기
1-1. 길스는 이 영화를 "사랑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 모두를 파괴하려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그(amphibian man)는 사랑과 상실을 파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의 괴물은 스트릭랜드를 일컫는 게 분명하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대사를 통해 괴물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괴물은 괴상한 것처럼 여겨져 온 인어가 아니라 사랑과 상실을 파괴하려는 스트릭랜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람다운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괴물은 누구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1-2.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사람다움에 대한 실마리를 엘리자의 말을 통해 보여준다. 엘리자는 길스에게 "곤경에 처한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엘리자에 따르면 사람은 곤경에 처한 이를 곁에 두고서 침묵하지 않는 사람이다.
2. 엘리자는 그와 사랑에 빠진 후 물을 볼 때마다 그를 생각한다. 그녀에게 물은 곧 그를 생각나게 하는 매개물이다. 누군가 사랑에 빠졌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가 사물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일상적인 풍경을 낯설게 보고 그것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은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영원히 너와 함께 한다"는 말은 이 지점에서 수사학적인 표현을 넘어 진실이 된다. 그 사람이 없는 공간과 그 사람이 없는 시간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람과 함께 한다.
3. 엘리자는 길스에게 "그는 내 불완전하고 부족한 부분을 모른다”라고, “그는 나를 나 자신으로 봐준다"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무지는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진다. 모른다고 여기거나 정말 모르거나 둘 중에 하나에 수렴한다. 후자의 무지는 사랑에 이롭고 전자의 무지는 사랑의 본질이 서는 토대가 된다. 작가 이승우가 <사랑의 생애>에서 옳게 말한 대로 무지는 어떻든지 간에 사랑에 이롭다.
4. 길스는 "그를 구하자"는 엘리자의 말에 "너는 정말 두려움이 없구나"라고 말한다. 엘리자는 그의 말에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고, 나도 두렵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흔히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이 말은 로맨틱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용기 없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로 만든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가게 하는 힘이다.
5. 길스는 "가끔 자신이 너무 일찍 태어났거나 늦게 태어났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은 보통 무엇인가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되는데, 이 영화는 이러한 후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에 의하면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 복잡하고 엉망이 되어버린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회는 사랑 앞에서 삶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다.
6. <셰이프 오브 워터>는 극적 형식으로 농아인 엘리자가 말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엘리자가 하는 유일한 말은 "나는 당신을 정말 아껴요. 정말 사랑해요"라는 말이다. 이 장면은 어디까지나 극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이 말은 그에게 실제로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찌 사랑이 말로만 전달되는 것이겠는가. 이 장면은 수백 번 몸의 짓으로, 눈의 빛으로 고백되었을 사랑을 친절하고 아름답게 안내해 주는 장면이다.
7. 인어에게 엘리자는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여인이지만, 젤다의 남편에게 엘리자는 불법을 저지른 사람에 불과하다. 사람은 이처럼 관계의 양상에 따라 타인에게 다양한 모습과 의미를 지닌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사람의 다층성을 보지 못하고 사람을 단편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사랑의 반대 개념이자 이데올로기의 무서움이라고 말한다. 인어라는 극단적인 인물의 등장을 통해서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이 아닌 것에 대해서.
8. 그대의 모양 / 무언지 알 수 없네 / 내 곁엔 / 온통 그대뿐 // 그대의 존재가 /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 내 마음 겸허하게 하네 /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인간다움과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이 영화의 제목이 '셰이프 오브 워터(Shape of Water)'인 것은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시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사랑은 무정형이다"라는 것을 로맨틱하지 않음으로 로맨틱하게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