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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영 Jan 19. 2024

여름날은 온다

<봄날은 간다> 톺아보기

#1 봄날을 맞이하다

은수와 상우는 서로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들은 설렘이 감추어질 수 없다는 사실과 자신의 발가벗겨진 마음을 서로에게 나눈다. 그들은 음향 엔지니어와 PD라는 직업적 상관관계로 인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어색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하지만 은수와 상우는 이 시간들을 어렵지 않게 극복해 낸다. 그들은 이미 서로 미소를 교환하며 애프터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은수에게 상우의 시시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은수는 상우에게 그 유명한 대사를 건넨다. "라면 먹을래요? … 자고 갈래요?"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발가벗기며 온몸으로 봄날을 맞이한다.


#2 봄날

상우의 고모는 상우에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많이 사랑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상우는 "그런데 어떻게 바람을 피울 수 있냐?"라고 되묻는다. 상우의 세계에서 봄은 영원하기 때문에 상우는 계절을 헤아리는 고모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상우는 그렇게 "봄날은 간다"라고 노래하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강릉을 향해서 자신의 존재를 내던진다. 하지만 봄에도 밤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은수는 상우의 정체를 묻는 동료에게 '아는 동생'이라고 둘러대고, 가족들에게 은수를 소개하고 싶어 하는 상우에게 "나는 김치를 담그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규정하고 이를 확인하며 계절은 바뀌어간다.


#3 봄날은 간다 1

시시한 상우와는 달리 분위기를 전환할 줄 아는 남자가 은수에게 묻는다. "맥주 한 잔 할래요?" 그 이후에 은수는 집에 있는 착한 상우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다음 날 눈물을 훔친 은수는 상우에게 이러지 말라고, 내버려 두라고 소리친다. 며칠 후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봄날을 붙잡고자 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상우는 결국 은소가 입은 민소매 원피스를 눈으로 보게 된다.


#4 봄날은 간다 2

여전히 봄날을 보내지 못한 상우는 은수에게 묻는다. "너 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지만 다른 계절을 살아가는 은수는 봄만 아는 상우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상우는 아직도 수색역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말한다. "이제 정신 좀 차리세요." 할머니는 상우에게 대답한다.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사실 상우와 할머니는 당신이 아닌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우가 강릉에 있는 상우에게, 할머니가 수색역에 있는 자신에게 말한 것이다.


#5 여름날을 맞이하다

상우는 은수의 선물과 "봄날을 기억하냐?"는 말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는다. 이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든지 계절은 변했다든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상우는 은수에게 화분을 건네며 손을 흔들 뿐이다. 두 사람 모두 뒤를 돌아보지만 두 사람 모두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제는 봄날이 다 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상우는 봄날을 맞이했던 날처럼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고 은수에게 보여주었던 미소를 자신에게 지어 보인다. 이제 사계절을 아는 상우는 그렇게 여름날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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