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 사이의 간

가장 먼 길은 내 안으로 가는 길이다

by 서령

어떤 날은 거울 앞에 오래 선다. 눈이 눈을 마주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묻는다. 지금 여기 서 있는 이 사람이 내가 알고 있던 나와 같은 사람인가. 대답은 항상 늦게 온다. 혹은 아예 오지 않는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기 자신의 가장 오래된 독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장 읽기 어려운 텍스트 역시 자기 자신이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를 남기지만, 정작 그 책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말하라고 하면 목이 멘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것은 무너지지 않으려는 힘이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도 다시 서겠다는 조용한 다짐에 가깝다. 자존이라는 이름의 기둥은 대리석으로 깎인 것이 아니다.

수없이 부러지고 이어 붙인 나무 막대기들이 서로를 의지해 세워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처음부터 찾지 않았던 것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다. 그런데 그 언어에는 교재가 없다. 말투 뒤에 숨긴

피로, 웃음 직전의 망설임, 대답하지 않기로 선택한 침묵 이것들은 어떤 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다.

이해는 언제나 번역이 아니라 해독이다.


그래서 가끔 우리는 서로를 읽다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읽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서로의 허기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을 수 있다.

이것이 관계의 가장 오래된 슬픔이다. 가까울수록 더 선명하게 보이는 거리.


감동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거대한 풍경 앞이 아니라, 문득 돌아봤을 때 누군가 아직 거기 있다는 사실

앞에서 오래된 노래 한 소절이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을 관통할 때

우리가 감동받는 순간은 세상이 넓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맞닿는 순간이다.


그러나 감동의 뒷면에는 언제나 어떤 균열이 있다. 기대했던 것과 실제 사이,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나와 상대가 보고 있는 나 사이. 그 균열을 나는 오랫동안 부끄럽게 여겼다.

메워야 할 틈, 감춰야 할 흠이라고. 하지만 어느 날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그 괴리는 삶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완성된 것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금이 가야 빛이 들어온다고 했던가. 나와 세계 사이의 간극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아직 누군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관계는 두 개의 섬 사이에 놓인 다리가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이 각자 반쪽씩 만들어 나가는, 완성되지 않는 문장에 가깝다. 한쪽이 쉼표를 찍으면 다른 쪽이 이어받고,

어떤 날은 둘 다 마침표를 찍기 싫어 그냥 침묵으로 다음 문장을 기다린다.


좋은 관계는 서로를 완전히 아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완전히 알려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여백을 채우려 달려들지 않고, 그 여백 자체를 함께 걷는 것.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나와의 거리를 잰다. 자로 재는 것이 아니라, 발걸음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거리를 좁히려 하기보다, 그 사이를 걷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가장 먼 길은 바깥을 향한 길이 아니라, 내 안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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