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어디선가

하루 밤

by 서령

잠들기 전, 꼭 한 번씩 오늘이 지나간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침에 서둘러 나오면서 미처 잠그지 못한 것 같아 다시 돌아간 현관문. 돌아가보니 잘 잠겨 있었다. 그 쓸데없이 소비된 이 분이 자꾸 생각난다. 왜인지 모르겠다. 별일도 아닌데.


하루를 되돌아본다는 건 결국 자신이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살고 싶었는데 오늘도 그냥저냥 살았다. 점심은 혼자 먹었고, 오후에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두 개쯤 했고, 저녁은 대충 때웠다. 누군가에게 이 하루를 설명하려 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하루가 쌓여서 내가 된다.


낮 동안 흘려보낸 말들이 밤이 되면 다시 떠오른다. 오늘 회의에서 내가 한 말, 상대방의 표정이 잠깐 굳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순간. 나는 그 얼굴을 몇 번이고 다시 재생해 본다. 불쾌하게 들렸을까. 아니면 그냥 내 착각일까. 밤은 이런 작은 의심들을 키우는 데 탁월하다. 아무도 없으니까. 반박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도 좋았던 것도 있다. 오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했는데 할머니가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딱 그 두 음절. 별것 아닌데 하루 종일 따뜻했다. 사람은 이렇게 싸구려 온기에 쉽게 구원받는다. 그게 부끄러운 일인지 다행인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밤에 하루를 되돌아본다는 건 끝난 것들을 다시 살게 해주는 일이다. 고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해할 수는 있으니까. 나는 오늘 충분히 잘했는가,라고 묻는다. 그 질문은 언제나 너무 크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오늘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는가. 이것도 어렵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묻는다. 오늘 나는 너무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가. 이 질문에는 대체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 정도면 된 것 같다. 그 정도면 오늘을 마감해도 될 것 같다.


후회는 한다. 안 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더 친절하게 말했어야 했고, 더 집중했어야 했고, 점심 먹고 나서 커피를 한 잔 더 마신 건 분명히 실수였다. 그러나 후회는 어디까지나 오늘 밤만 하기로 한다. 내일 아침까지 끌고 가지 않기로. 밤이 되면 오늘 것을 오늘에 털어두는 것, 그게 내가 배운 가장 작은 지혜다.


창밖에 불이 켜진 창문들이 보인다. 저 안에서도 누군가 지금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있겠지. 혹은 아직 정리하지 못하고 화면만 보고 있거나. 밤은 이 도시의 모든 하루들을 동시에 접수하는 곳이다. 저마다의 크기로, 저마다의 무게로.


이불을 당긴다. 오늘은 오늘로 충분하다. 내일은 내일이 알아서 올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하루를 다 쓴 사람처럼 눈을 감는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살았다. 그것으로, 오늘은 끝낸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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