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농도

by 서령

밤은 언제나 정직한 얼굴로 찾아온다. 빛이 물러간 자리에 남겨진 것은 오롯이 나 자신의 몫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통과해 온 수많은 밤의 풍경 속에는 늘 누군가를 향한 지독한 그리움이 서성이고 있었다. 어둠은 기억의 촉매제가 되어, 이미 멀어진 사람들의 얼굴과 이제는 손 닿지 않는 시간들을 내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때의 나는 밤을 '복습'하는 시간이라 믿었다. 낮 동안 외면했던 감정들을 하나둘 꺼내어 먼지를 털고, 혹시나 놓친 의미가 있을까 봐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며 잠을 설쳤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방 안으로 길게 늘어질 때면, 나의 고독도 그 그림자의 길이만큼이나 선명해지곤 했다. 어둠은 나를 깊게 파고들게 만들었고, 나는 기꺼이 그 침잠의 시간을 감내했다.


하지만 밤이 지닌 고요함도 매일같이 쌓이다 보니 어느덧 무게가 되었다. 혼자라는 감각이 더 이상 '자유'가 아닌 '고립'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텅 빈 방 안에서 시계 초침 소리를 듣고 있으면, 문득 이 적막을 깨트릴 누군가의 기척이 간절해졌다. 나를 가두었던 밤의 벽을 허물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갈증. 그것은 단순히 외로움이라 명명하기에는 조금 더 복잡하고도 뜨거운 변화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둠 속에서 과거의 파편을 줍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혼자여서 서늘했던 밤의 온도가 누군가의 곁에서 조금은 눅진해지기를 바란다. 나를 삼킬 듯이 깊고 막막했던 검은 하늘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바라보며 이름 붙일 수 있는 무수한 별들의 집합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혼자일 때 밤은 그저 빛의 부재일 뿐이지만, 둘이 함께일 때 밤은 비로소 찬란한 은하수가 된다.


나의 밤들이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걷는 산책길의 배경이 되기를, 낮 동안 나누지 못한 사소한 이야기들이 은하수처럼 흐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어둠은 여전하겠지만, 그 속에서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별빛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우리의 밤이 더는 시리지 않고, 아스라이 빛나는 온기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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