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었던 그날에 산책에서
〈봄의 두 그림자〉
바람이 부드럽게 불었다.
흙냄새와 꽃향기가 뒤섞인 공기가,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말없이 전했다.
우리는 공원의 좁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발걸음이 겹칠 듯 말 듯, 어색하지 않은 거리로.
벚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다, 한 장씩 우리 사이로 내려앉았다.
그 장면이 오래전 봄날을 불러왔다.
첫 만남도 이렇게 꽃이 피어 있던 날이었다.
당신은 흰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웃으며 나를 불렀다.
햇빛이 눈부셨지만, 그때 나는 눈을 가리지 않았다.
혹시 당신의 얼굴을 놓칠까 봐.
“여기 봐, 이 나무 기억나?”
당신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봤다.
굵은 가지 위로 꽃이 가득 번져 있었다.
기억난다고 말하면, 그때의 마음까지 들킬까 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벤치가 보였다. 우리는 자연스레 그곳에 앉았다.
멀리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예전처럼 하루를 환하게 만들었다.
그때도 우리는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었지.
손이 닿을 듯 말 듯,
서로의 온기를 알아차리면서도 모르는 척했던 시절.
당신이 가볍게 묻는다.
“요즘 잘 지내?”
잘 지낸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 대답이 내 입술을 떠나는 순간,
속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부서지고 있었다.
잘 지내지 않았다고, 사실은 여전히 네가 마음속 어딘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말들은 바람과 함께 흩어졌다.
잠시 바람이 세게 불었다.
꽃잎들이 눈앞을 가득 메우며 흩날렸다.
그 속에서 나는, 처음 당신을 바라봤던 눈빛과 지금의 눈빛이 얼마나 다른지 깨달았다.
그때는 다가가고 싶었고,
지금은… 다가서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길 위에 나란히 놓였다.
그 그림자들은 여전히 한 쌍처럼 보였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계절을 향해 가고 있었다.
봄은 짧다.
그리고 우리가 나누는 이 걸음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을 오래 붙잡아두고 싶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