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의 문 앞에서

by 서령

여름의 끝자락은 늘 묘한 감정을 남긴다. 한껏 늘어져 있던 방 안의 공기가 서서히 긴장감을 띠고, 책상 위에 방치되었던 공책과 필기도구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캠퍼스는 아직 뜨거운 햇볕에 반짝이지만, 그 속에 스며드는 바람에는 분명 가을의 향기가 섞여 있다. 그것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다시금 시작되는 학기의 리듬을 알리는 신호 같다.


2학기는 마치 새로운 출발선과도 같다. 1학기 동안의 시행착오와 무기력, 혹은 작은 성취와 깨달음을 모두 짊어진 채 다시 출발해야 하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복학 후의 첫 학기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일 수도 있다. 나에게 2학기는 늘 '다시 써 내려가는 연필심' 같은 시간이었다. 이미 조금 닳고 무뎌졌지만, 새롭게 깎아내어 다시금 종이에 선명한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


사실 개강은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과제가 밀려올 것이고, 발표와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안다.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비교,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불안, 때로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까지. 그러나 나는 이 모든 복잡한 감정들이 오히려 대학 생활을 대학 생활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불확실함 속에서 방향을 잡아가는 훈련,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이번 학기에는 한 가지 다짐을 하고 싶다. 결과보다 과정을 더 사랑하기. 완벽한 성적표나 화려한 스펙이 아니더라도,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인정하는 것. 도서관에서의 고요한 밤, 동아리방에서 흘리는 땀, 수업 후 교수님께 묻는 짧은 질문 하나까지도 모두 나를 채우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개강은 단순히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다시 정리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작은 선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다시 빈 노트의 첫 장을 펼친다. 이번 학기는 어떤 이야기로 채워질까. 두려움도 있지만, 그 두려움조차 내 삶의 일부로 껴안으며 걸어가고 싶다.


언젠가 이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 나는 충분히 고민했고, 충분히 시도했고, 무엇보다도 나답게 살아냈다.” 그것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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