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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진 Feb 17. 2016

우리 인간적으로 좀 삽시다

무개념부부와 프로정신을 발휘한 주차할아버지

지독한 안개가 하늘을 덮었던 지난 토요일. 제주에서 일하는 내 단짝친구는 부산에 오기로 했다. 제주의 하늘은 이상하리만큼 맑았다고 한다. 아침 8시 제주공항에 도착한 친구는 그로부터 12시간55분 뒤,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먼길 오는 친구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뜨거운 토요일 밤을 위해 나는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갔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안개를 비집고 드디어 김해공항 도착. 나는 문화시민이니까 불법주차하지 않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20분은 무료라고 했으니까. 마침 국내선 도착 게이트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가 있어 주차를 했다.

그로부터 1시간 뒤, 짐을 찾아 나오는 친구와 상봉. 제주도에서 날 위해 사왔다는 귤하루방을 먹으며, 다음 코스에 대해 재잘재잘 얘기하며, 주차장으로 가는데. 끝나지 않았던 불운이 우릴 덮쳤다. 

덩치 작은 마이카, 모닝 앞에 덩치 큰 카니발이 떡하니 서있었다. 공항주차장에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왜 이중주차를 했을까. 설마 사이드를 올려놓고 가진 않았겠지. 밀어보았다. 망할 사이드를 올려놓고 갔다. 설마. 번호는 남겨뒀겠지. 번호도 없었다.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주차상황실로 전화를 걸었고, 곧 주차요원이 도착했다. 하지만 직원이 온들 차를 끌고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직원(할아버지)가 렉카를 불렀다. 차 주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12시간동안 공항에 갇혀있다 나온 내 친구를 일초라도 빨리 쉬게하고 싶기도 했다. 나는 주인이 왔을 때, 어떻게 화를 낼지 고민했다. 상상의 나래를 펴고 어느새 우리는 경찰서에 가있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하지만 참지말자고 생각했다.

감동받은 것은 퇴근시간이 9시50분이었던 주차요원 할아버지는 우리 일을 끝까지 해결해주고 가야한다며 퇴근시간이 한참 지나서까지 남아있었다. 흥분한 우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때로는 주차를 이렇게 해놓고 갔냐고 동조해주면서. 직업정신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렉카가 다와간다는 전화를 받았을때쯤, 저멀리 젊은 부부가 걸어오고 있었다. 

"설마, 이중주차한 사람들이 저렇게 느긋하게 걸어오겠어?"

라고 생각했다. 점점 우리쪽으로 가까워지더니, 당황한 표정을 짓는 그들.

"차주세요? 차주시냐구요!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라고 주말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친구도 덩달아 고함을 쳤다. 

"죄송합니다"라고 연신 고개를 숙였지만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다짜고짜 소리치는 우리가 당황스러웠는지 이상한 미소를 띄며 사과를 하는 그들을 보니 정말 경찰서까지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차를 이렇게 세워두고 가실 수가 있어요?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 생각 좀 하세요. 저희가 지금 여기서 몇분을 기다렸는지 아세요?" 

친구는 견인차 돌아가라는 아저씨에게 "왜 돌아가라고 하세요. 그냥 견인해요."라고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그제서야 차주의 와이프가 가까이 다가와서 정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됐고, 얼른 차나 빼주세요"

그리고 예의바른 내 친구는 끝까지 직업정신을 발휘하며 우리곁을 지켜준 할아버지께 악수를 청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전했다.


인간적으로, 도리에 맞게, 조금만 생각해보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이 있다. 드라마틱했던 하루를 마무리하며, "인간적으로 살자."고 다짐했다. 나 스스로도 돌아보면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으니까. 


오늘의 청춘의 단상. 우리, 인간적으로 좀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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