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르하의 밥상

by 차거운

한 끼 밥에는 저마다 이력이 있는 법이니

스페인에서 밥 먹으려고 앉았다가 몇 번이나 쫓겨나는 경험 후에는

밥 먹는 문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지

돈만 있다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나의 생리적 배고픔의 시계와

스페인 식당이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의 시차로 인해

짜증이 났었지 우리나라가 참 좋은 나라일 수도 있겠다

언제든 들어가면 물 주고 밥 주고 반겨주는 문화

화장실도 목마름도 돈을 주고서야 해결할 수 있는 여기는

내내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

술을 끊기 전의 나였다면 이곳은 천국이었을 테니

포도주가 싸서 실컷 먹었을 테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 좋은 술을 끊었으니

뽈뽀와 말라가 생선튀김을 앞에 두고

맹맹한 물만 홀짝거리다가

유혹에 빠질 뻔했다 은밀하고도 질긴 술의 매력

네르하의 밥상에서 남은 음식을 싸 갖고 다니며

끼를 해결했었다 푸짐한 한 끼의 식사는

바다와 함께 혀와 위장과 오감에

오래도록 남아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기억처럼

깊이 새겨질 것만 같았다

날마다 잔칫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언젠가 읽은 소설의 한 구절처럼

'다가올 한 끼의 배고픔 앞에서 지나간 모든 끼니의 기억은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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