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리스보아

by 차거운

리스본이라는 발음도 괜찮고 현지음으로 리스보아 하다 보니

리스보아도 좋다 밤거리에 익숙하지 않은 삶이어서

저녁이면 빨리 나의 동굴 속으로 숨고 싶지만

낯선 거리의 풍경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상형문자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새겨진 가우디의 상형문자를 읽다가

리스보아의 밤에 새겨진 글자를 읽어본다

버거킹이라는 명칭은 반갑기도 하고 집요하기도 하다

스타벅스나 서브웨이도 그렇고 그래서

생각하건대 따로국밥, 홍어삼합, 설렁탕집

김밥천국도 여기 리스보아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나 치킨에 가서 닭 한 마리를 먹고서

영화 '명량'의 마지막 장면에서

'먹을 수 있어서 좋구나'라는 말을 떠올렸다

살아서 좋고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당신이 함께여서 좋고 이렇게 31년 만에 리스보아에서

숨 쉴 수 있어서 좋다 그렇다

여기 오기까지 내 평생을 기다렸으니

연어의 일생처럼 매미의 여름 한 철처럼

진하게 진하게 어두워지는 리스보아의 11월 어느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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