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앞에서 사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녹슬어 간다 쇠는 붉은 눈물을 흘리며
조금씩 안으로 부스러져 내리고
나무는 흰개미의 양식이 되어 속이 점점 비어가며
돌은 이끼에 덮여 옷을 입듯이
물들어 간다 시간 앞에서 모든 존재는 그렇게
낡아져 가고 무너져 가는 법이다
그렇게 무너지고 퇴락해 가는 것들에는
묘한 아름다움이 있으니 현자의 모습이랄까
그 어떤 비약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순간이 있어 그렇다면
저 탑은 어떤 지혜를 얻었을까
이끼를 뒤집어쓰고 단단하게 서서
네 개의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무얼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혹 선사와도 같이
'뜰 앞의 잣나무'를 보라거나
'차나 한 잔 하고 가시게' 뭐 그런 선문답이 아닐지
모든 것들이 길 위에서 나의 스승이 되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