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2일 일요일(그라나다 - 세비야 샌딩 투어일)
오늘은 주일이다. 따라서 미사를 보아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로 도시 간 이동을 위해 샌딩 투어를 신청한 날이다. 계획된 일정에 따르면 저녁 7시 정도가 되어서야 세비야라는 도시에 도착한다고 여행 상품에 안내되어 있어서 주일 미사에 참석할 수 있을지가 고민된다. 아무튼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자 하는 우리의 원의를 주님께서 아시니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리라 믿는다. 이동을 위해 약속된 장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괜히 헤매면서 마음을 졸이느니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 것 같아서 이번 여행 기간에 비용이 좀 많이 들었지만 이 나이를 먹고 또 마님을 모시고 가는 길에 너무 고생을 시키면 나의 노후가 순조롭지 않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 또 커다란 짐을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20대라면 최소한 30대이기만 하더라도 비용 절감과 경험을 위해서 좀 더 과감하게 고생길을 택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60대에 다다른 나이가 아닌가 말이다.
집결지에 도착하니 우리 차에는 총 6명이 함께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신혼부부가 2쌍이고 우리는 31년을 넘긴 구혼부부니까 세 쌍의 부부가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길 위의 인연이라 서로 인사를 하고 비록 깊은 이야기는 서로 하지 않지만 인사 정도는 가볍게 나눈다. 또 다른 가족 네 명은 비슷한 규모의 승합차인 다른 차로 이동하는 것 같다. 많이들 이 현지 투어 상품을 활용하는 것 같다.
이날 경험해 보니 이 상품은 이용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우선 프리힐리아나라는 언덕 위의 하얀 마을에 도착해서 예쁜 골목과 역사를 간직한 집들과 성당을 둘러보고 사진 찍기 좋은 곳에서는 가이드 겸 운전자가 사진을 각각 찍어주는 데 사진이 참 잘 나왔다. 그런 후에 이동하는 곳은 가까운 해안 도시 네르하인데 여기서 점심식사를 할 만한 곳을 안내하고 각자 해결하도록 한 뒤에 휴식을 하고 다시 이동한다. 집사람과 나는 영업 준비를 하는 가게에 들어갔다가 영업 개시 시간이 10분 남았다고 몇 번 쫓겨나다시피 해서 무안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그런 심리 상태를 겪었다. 영 적응하기 힘든 부분 중에 하나다. 그래서 바닷가로 내려가서 유럽의 발코니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들은 이곳의 바다를 둘러보고 돌아와서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말라가 생선튀김과 뽈뽀(문어) 요리를 시켰는데 맛도 있고 양도 무지막지하게 많아서 남은 음식을 싸간다고 용기를 받아서 가져왔고 이는 저녁과 다음 날 아침까지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었다. 스페인 음식 중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다.
그리고 다시 승합차에 탑승하여 한참을 이동한 후에 들른 도시는 스페인 관광 안내서에 빠지지 않는 론다라는 곳이다. 여기는 협곡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다리가 유명하고 투우장이 유명하고 헤밍웨이를 비롯한 투우사들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헤밍웨이는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역마살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된다.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닌 그의 행보가 우선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탈리아 전선에 참여해서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작품을 남기고 파리에서 지내고 스페인 여행을 한 뒤에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쓰게 되었고 스페인 내전과 관련한 경험을 토대로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쿠바에 가서 지내면서 ‘노인과 바다’와 같은 불후의 작품을 남겼으나 결국 알코올 중독증을 겪었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발길이 여기에도 머물렀던 것이다. 론다에서의 시간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가이드가 숙소를 묻기에 호텔 히랄다 센터라고 하니 시내로 들어와서 우리를 가장 먼저 내려주고 작별인사를 하고 갔다. 가이드는 세비야에 살고 있다고 하고 세비야에서 들러야 할 곳 등의 정보를 제공해 주었으며 같이 하룻길을 동행했던 신혼부부들은 각각의 숙소로 떠나갔는데 이날 차에서 처음에는 우리가 나란히 앉았다가 나중에 보니 신혼부부들이 같이 앉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우리가 앞뒤로 떨어져서 오기로 했었다. 우리야 구혼이지만 이들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신혼이 아닌가. 앞으로 그들이 함께 힘을 모아 살아내야 할 인생의 행로가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의 여정으로 흩어져 가기로 한다. 길 위에서 잠시 스쳐 가는 인연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여름날 들판에 반짝이는 반딧불이처럼 잠시 빛나는 순간들에 대해서도 떠올려 본다. 삶에는 얼마나 다양한 경로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교차점에 해당하는 순간들이 또한 얼마나 많은가.
이날의 할 일이 하나 남았다.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지도 앱을 작동시키니 세비야 성당의 마지막 미사가 8시에 있다. 사위는 어두워졌는데 세비야의 지리는 잘 모르고 상황은 쉽지 않아 보인다. 거리상으로는 십 몇 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벌서 7시 30분 정도가 되었다. 부지런히 손잡고 걸어가서 세비야 대성당에는 도착했는데 미사가 열리는 소성당이 어디쯤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묻고 물어서 한 바퀴 성당을 돌아가니 작은 문이 있고 사람들 몇이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에 여성 관리자가 통제를 하고 있다. 다가가니 들어갈 수 없다는 표시를 하기에 ‘미사에 참석하기를 원한다’고 하니 들어가라고 한다. 안도의 숨을 들이쉬고 들어가니 나와 같이 여행자들이 많은 것 같았다.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숨을 고르니 미사가 시작된다. 전혀 미사 경문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어떤 순서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감을 잡을 수는 있겠다. 알아듣지 못할 강론을 듣고 나서 봉헌을 하는데 여기서는 아직도 봉헌을 잠자리채처럼 생긴 주머니를 이용해서 사람이 걷으며 다닌다. 이탈리아에서도 그랬고. 영성체를 하고 조금 지나 미사를 마친 후에는 우리가 있던 성당 내부를 잠시 돌아보고 숙소로 밤길을 걸어 돌아왔다. 이렇게 주일미사를 무사히 드리고 나니 오늘의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안도감이 든다.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