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남유럽 3개국 여행일기

- 2025년 11월 3일 월요일(세비야 체류 2일 차)

by 차거운

사실상 세비야를 돌아볼 수 있는 온전한 날이 오늘뿐이라 최대한 많은 곳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침 조식을 먹고 우선 세비야 대성당의 입장권을 예매하지 못했기에 안내서의 조언에 따라 살바도르 성당에서 통합권을 구입하기로 하는데 시간이 조금 있어서 우선 가이드가 이야기하고 여행 안내서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메트로 파라솔을 보러 걸어서 이동했다. 메트로 파라솔은 목조 골조를 격자로 결합하여 구성된 특이한 건축적 특징을 보여주는 일종의 도시 전망대인데 높이가 그리 높거나 웅장하지는 않다. 다만 2층의 동선을 따라 도시의 조망을 360도에 걸쳐 일람할 수 있게 되어 있어 한번은 볼 필요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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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 급해서 시장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관람대 아래 지하로 내려가니 화장실이 있다. 가서 보니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가 없어서 난감해하니 아주머니가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신다. 못 알아듣고 어리바리하니 약간 짜증이 난 표정으로 장애인 칸의 문을 세 번 부서져라 탕탕탕! 두들기며 신체언어로 보여주신다. 그래서 얼른 들어가서 볼일을 보고 나오면서 아주머니에게 들은풍월로 ‘무차스 그라시아스!’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돌아서는데 별로 분위기가 호전된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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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하나의 깨달음이 나온다. 오버 투어리즘이다 뭐다 말들도 많고 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고단하게 사는 분이 있다면 나와 같은 이방인이 뜬금없이 나타나서 자신을 방해한다고 느끼면 좋은 반응이 나오지는 않겠구나 그런 깨달음 말이다. 우리의 삶이 팍팍할 때 다른 사람에게 여유롭고 관대하게 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렇지만 나도 유한족이어서 이렇게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피카소 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여기 세비야의 메트로 파라솔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만으로 58년 3개월 하고도 며칠이고 우리 결혼한 시점으로 따지면 만 31년 하고도 7개월이 지나서니까. 그렇게 쉽게 온 것은 아니다. 내가 또 유럽에 언제 또 올 수 있을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세비야 메트로 파라솔의 화장실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나는 기도하고 싶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고 싶다.

메트로 파라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살바도르 성당으로 가서 새벽 줄 서기를 하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기에도 갖가지 사연을 안고 새로운 아침을 시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드디어 시간이 되고 가장 먼저 들어가서 통합권을 구매하였고 히랄다 성당 즉 세비야 대성당 입장 시간도 받아 두었다. 11시 입장이다. 살바도르 성당을 둘러보고 잠시 화살기도를 하고 나서 시간에 맞춰 세비야 대성당으로 갔다. 히랄다 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무리가 줄을 서고 있지만 우리는 성당으로 들어가는 줄로 가서 내부로 입장했다. 그런데 내 입장권 위에 영어로 ‘prince’라고 손글씨로 기재되어 있어서 그 의미를 내내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1착으로 발권을 했다는 뜻으로 보이기도 하고 혼자 내가 왕자처럼 보였나? 하고 제정신이 아닌 자기도취에도 빠져보고 하지만 뭐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거지’라고 쓰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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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에서는 황금으로 된 성서부조가 단연 눈에 확 들어왔다. 황금빛은 왜 사람을 유혹하는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일까. 가장 가치 있고 귀한 것이어서 그럴까. 너무 넓어서 집사람은 자리에 앉아 쉬겠다고 해서 혼자 좀 돌아다니면서 둘러보았다. 한 카펠라 앞에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종의 말씀이 영어로 씌어 있는데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십자가는 고통과 슬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평화와 희망의 근거’라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는 우리 구원의 근거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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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에서 나온 후 황금의 탑을 보고 이동해서 무리요 정원과 스페인 광장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세비야 대학교 즉 왕립 담배공장이었던 건물과 카르멘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간도 둘러본 후에 숙소에 들어와서 근처에서 피카소를 생각하며 저녁을 좀 거하게 먹었다. 하루에 세비야를 모두 돌아볼 수는 없는 법이니 그 정도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내일은 일찍 리스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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