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제주 보름살이

- 2024년 3월 11일 월요일

by 차거운

수레 선생은 말한다. 내 나이 56세이고 7월이면 한 살을 더 먹는다. 그렇다. 딱 좋은 나이다. 누가 말했듯 살기에도 죽기에도 좋은 나이라는 것이다. 예전 사람들 평균 수명이 동서를 막론하고 20세에서 30세를 오락가락하는 것은 아마도 유아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평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첨예한 화두가 되어 있는 것은 노령인구의 증가로 인한 사회적 문제와 세대 간의 부양 문제, 출생률 감소로 인한 사회적 역동성과 경제적 노동력의 문제 등이다. 이는 매우 복합적인 문제이며 전방위적으로 추가적인 사회적 과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인 빈곤 문제와 정년 연장, 사회적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 등의 문제는 곧 삶, 그 자체와 직결되어 있으며 인간의 복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늙고 길어진 노후를 견뎌낼 것인가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2024년 2월 말로 흔히들 말하는 명퇴를 하게 되었다. 지난 1993년 3월부터 31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퇴직한 것이다. 만 62세를 정년으로 하고 있으니 5년 하고도 6개월을 앞당겨 물러나게 된 것인데,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말들이 많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요즘 시대에 끝까지 더 일을 하고 학생들을 위해 보람 있는 가르침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조언을 해주고 싶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의미 있게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사정이겠지만. 사람은 저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생각하는 바, 추구하는 바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인데 생각해 보거니와 나도 생각과 사연이 나름대로 복잡한 사람이 아닐 수는 없다. 교직에 대한 사명감이 없다고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사표(師表)가 될 만큼 그렇게 치열하게 능력 있게 업적을 드러낸 바도 없다. 다만 밥값을 하겠다는 소박한 책임감을 피력하면서 살았고 가톨릭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최소한으로 지키면서 살고자 했고 허락되는 한 비린내를 풍기지 않으면서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살아온 세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감생심 동주 시인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랄 수는 없다. 나는 부끄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곤 하겠으나 나는 털지 않아도 마음으로부터 ‘나는 영이 더러운 사람이오.’라고 외쳐야 할 그런 소인배에 불과하다.

가끔 스스로 돌아보건대 ‘회칠한 무덤 같은 자’라는 주님의 질타가 뒤통수를 때릴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솟아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 자비의 소산으로 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그래서 감사할 따름이다. 심장의 부정맥도 있고 마음의 탈진도 어느 정도 있고 하여 스스로를 추스르고 세상을 배우고 공부할 마지막 시간을 얻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먹고사는 문제와 한 발 떨어져 인간의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 그리스인들이 그러하고 옛 선비들이 그러하였듯 지혜를 구하고 삶의 끝자락을 마주할 때까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느끼고 슬픔도 느끼고 역사도 반추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간절하게 원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한 가락 아름다운 노래 하나를 부를 수도 있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치열한 삶의 일선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기로 한다. 그러므로 사람아 너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환경의 변화는 사람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 오랜 관성이란 것이 있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삶의 틀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면 과도기가 필요한데 집에 가만히 있어서는 이것이 괴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주에 가서 한 보름 정도 지내면서 달라진 삶의 단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공제회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제주 00 리조트에 14박 15일 예약을 했다. 숙소는 해결되었고 이번에는 비행기가 아닌 내 차를 갖고 건너가기로 한다. 서울에서 완도까지 6시간에서 7시간이 걸린다. 땅끝마을이 있는 해남과도 지척이니 멀기는 멀다. 3월 11일 아침 6시에 서울집에서 출발하여 휴게소에서 기름을 한 번 넣고 집사람이 싼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완도에 도착한 시간이 1시 30분 정도 되었다. 완도에서 3시에 출발하는 실버클라우드호는 꽤 큰 배인데 매일 2회 정도 왕복하는 것 같다. 제주까지의 소요 시간은 3시간이 채 못 걸리는 것 같다. 완도항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 뒤에 차를 선적하고 모바일 승선권을 갖고 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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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결혼식을 마치고 떠난 신혼여행에서 우리 부부가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사천공항으로 가서 통영으로 이동해서 1박 하고 소매물도 민박으로 1박 하고 거제를 거쳤던 기억이 난다. 제주도는 결혼 10년쯤 되던 해에 00이 00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갔었지. 그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제주는 내게 여전히 이국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물론 수학여행 인솔이라는 업무적 성격을 띠고 가거나 지 00 선생님이 주도하는 학교 등산회 구성원들과 함께 겨울에 1박 2일 혹은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한라산 등반을 주목적으로 하는 겨울 비수기 산행 여행은 연에 1회 정도 꾸준히 가곤 했었고 가족과 한두 번 더 가기도 했다. 모두 렌트를 해서 길지 않게 다녀오는 정도여서 이번 장기 체류가 이례적이고 퇴직한 이후의 시간적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몇 년 전 한라산 등반 중에 심장의 부정맥이 주는 공포감을 느낀 후에 한동안 등산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살았다. 언제 심장이 멈추어도 놀라울 것이 없는 상태가 지금 나의 상태가 아닐까 한다. 의사가 정책에 반발하여 태업을 하고 있는 이 시기에 문제가 생기면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지만 인간의 목숨을 주관하시는 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니 ‘먼지여, 너 먼지에서 왔으니 먼지로 돌아갈지어다.’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어찌 스스로의 깜냥으로 피할 수 있으랴. 그러니 용기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론과 모세와 여호수아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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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경에 출항한 배는 바다가 잔잔해서인지 배가 워낙 커서인지 별 움직임 없이 항해를 하고 날이 다소 궂어서 3등실 바닥에 익숙한 승객들은 모두 드러누워 잠을 청한다. 이것이 가장 전형적인 장거리 항해자의 모습이겠지. 타이타닉의 3등 선객들도 그러했겠고. 여기서 멀지 않은 진도 앞바다에서 10년 전 2014년에 침몰한 세월호의 기억이 문득 새삼스럽다. 팽목항의 그 몸서리나는 아픈 기억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응어리가 맺혀 있다. 잊지 말아야지. 아니 잊으려고 해도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제주에 학생들을 인솔해서 갈 때마다 단원고 아이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수장된 사실을 생각하곤 한다. 누구의 잘못인가. 왜 아직도 체한 것 같은 답답함이 남는 걸까. 이태 전의 이태원 참사는 또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왜 달라지지 않는 걸까. 나 역시 ‘가만히 있으라’고 한 목소리의 한 사람은 아닐까. 학생들에게 나는 어떤 교사였을까. 두렵고 두려워서 머리가 쭈뼛 서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연대적 책임이 있다. 언젠가 홀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추모관에 간 적이 있다. 혼자 4호선을 타고 가서 그 하나하나의 영정을 바라본 적이 있다. 저들이 내 아이들일 수도 있는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같은 또래들인데. 그저 가슴이 먹먹해서 울었다. 지금 가자에서 조준사격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은 또 어떤가. 우크라이나의 희생자들은 또 어떻고. 우리는 다 함께 울어야 한다. 그리고 회개해야 한다. 이 미망에서 깨어나 조용히 뉘우쳐야 한다. 잊지 말자.

이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에서 벗어났으니 이 세상을 바라보고 성찰하고 돌아보는 일을 차분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2월에는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다녀온 것이다. 강원도 고성의 화진포에 있는 김일성 별장과 이승만, 이기붕 별장을 방문해서 살펴보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가 질타한 대로 ‘생각 없이 살지 말아야 한다.’ 수유동의 4.19 국립묘지에 가서 당시 희생된 영정들을 바라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참으로 많은 질곡의 현실을 헤치고 나아온 것이다. 가짜 뉴스와 유튜브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그런 능력을 가르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나는 그런 역할을 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우선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본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깨어 있어라. 언제 도둑처럼 결정적인 날이 닥쳐올지 모른다. 죽음은 실존적 차원에서든 역사적인 차원에서든 심판의 날을 동반하고 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살아서 기회가 있을 때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제주항에 6시경 도착하여 차에 올라 한참을 기다려 제주항 6 부두를 통해 나가다가 숙소를 향해 방향을 잡고 간다. 내 차를 갖고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길이 비는 좀 부슬거리지만 마음이 편안하다. 약간 흥분이 되는 것도 같고 여행은 이렇게 일상의 잔잔함을 뒤엎고 삶에 활력을 준다. 이제부터 아내에게 잘해야 한다. 삼식이의 삶은 전적으로 우리 마님 손에 달려 있으니. 조천에 있는 한식뷔페 식당에 들러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가려고 했더니 예전의 그 장소가 아닌 것 같고 영업이 종료된 시간이어서 포기하고 그냥 숙소에 들어간다.

앱으로 입실 처리를 하고 전자적으로 비번을 받아 번거로운 절차 없이 입실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편리하다. 앞으로 14일간 이곳이 우리 숙소가 된다. 5층에 있고 공사로 약간 불편이 발생할 수 있다는 안내가 있었으나 체류 기간에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서관 5층에 있는 방으로 숙소 관리동 쪽의 바닷가 전망이었는데 방이 두 개에 거실 화장실 이렇게 있는 25평형이었다. 집사람이 꼭꼭 쟁여 온 음식과 부식들을 냉장고에 가득 채우고 구내 편의점에 가서 급한 대로 생수와 치실 등을 사서 올라왔다.

물론 장을 보려면 대형마트에 가서 보는 것이 훨씬 싸지만 급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단적으로 생수 2리터 6개 들이가 3,000원 이상 가격 차이가 있다는 것만 언급하고자 한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 본인의 준비성과 수고로움이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으리라. 우리도 며칠 뒤에 제주 시내 대형마트에서 장을 충분히 봤고 떠나기 이틀 전에는 숙소 근처 중형 마트에서 한 번 더 필요한 장을 보았다. 3월 11일 월요일 첫날은 서울에서 완도로 완도에서 제주항으로 이동하고 숙소까지 도착하니 늦은 시간이어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 차를 갖고 오니 짐을 제한 없이 충분히 가져올 수 있어서 좋다. 성서랑 책 몇 권(사실 거의 읽지 못하고 도로 가져오게 되었지만) 옷 보따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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