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5월 22일 수요일
아침에 부스스하게 일어나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바닷가를 한번 돌아보고 후포항을 향해 가다가 등기산 스카이워크에 들러 볼까 했더니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대로 통과해서 여객선터미널에 차를 세우니 벌써 차들이 꽤 많이 대기하기 시작한다. 캠핑카도 한 대 보인다. 저런 차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니 부러우면 지는 것인데 마음이 좀 설렌다. 분수에 맞게 살다가 가도록 하자. 6시 40분부터 발권과 승선이 이루어진다는 안내 문자가 들어오고 차를 먼저 선적하고 다시 하선해서 집사람과 대합실에서 승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울릉도, 제주도와 같이 섬이라는 공간에 입도하는 것은 낯선 세계로의 진입이라는 점과 함께 우리가 감당하기에 적절한 규모의 공간에 대한 안도감이랄까 하는 그런 느낌을 주곤 한다. 연암이 ‘통곡할 만한 자리’라는 짧은 글에서 만주 벌판의 광활한 규모에 맞게 통쾌함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면 울릉도는 가파른 벼랑과 위태로운 석벽의 지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 파고들어 삶의 자리를 끈질기게 넓히면서 살아온 인간들의 간지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아내는 울릉도가 처음이라 많이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 모양이다. 드디어 승선을 한다.
3등 등받이 의자석에 기대고 앉아 앞으로 4시간 30분에 걸쳐 같이 가야 할 승객들의 면면을 마주하게 되니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부부가 대부분이고 청년도 둘 정도 있다. 은퇴한 부부들이 여행산업의 주 소비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둘 다 있을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 비해 산업화 시대를 살면서 축적한 자산이 그래도 있는 은퇴자들의 경우에는 좋은 일이지만 노인 빈곤이 또한 사회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 그런 여유를 지니지 못한 분들의 경우는 또한 위화감을 주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단양에서 은퇴자의 삶을 사신다는 분들이 옥수수와 고구마를 넉넉하게 돌리신다. 시골살이의 낭만이 아닌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주식 시황에 대해서도 내외간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이분들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하겠다. 전라도 어디에서 오신 내외도 자주 여행을 다녀본 내공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분들은 울릉도에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통해 들어가시는 것 같다. 나는 묵주기도를 하던 중이라 대화에 끼어들지는 못한 채 듣고 있다.
기도를 끝내고 갑판에 올라가서 동해의 망망한 물결을 바라보며 사진을 몇 장 찍고 바다의 수평선이 호를 그리며 완만하게 휘어진 모습을 보면서 지구라는 유일무이한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배회하고 있는 모든 존재의 그 부서지기 쉬운 실존을 떠올려 본다. 다시 선실 내에 들어와 아까 받은 옥수수와 고구마를 맛있게 먹었다. 울릉도에 관한 영상자료(미디어와 유튜브 자료를 갈무리한)를 보다 보니 어느새 울릉도 사동항에 접안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벌써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하선을 기다리는 모습에 차라리 천천히 나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기서는 선적된 차량을 선사 측에서 움직여 부두에 내려보낸다고 한다.
12시 45분이 지나 한 시가 다 되었다. 울릉도의 전체적인 모습이 보인다. 사동항은 2026년 상반기 개항을 목표로 소규모 공항 건설공사가 바다 위에 사동항의 방파제와 나란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래서 거기에 필요한 토석 때문인지 그 뒤쪽 가두봉 산등성이가 흙투성이로 노출되어 있어 다소 정돈되지 못한 어수선함을 보이고 있다. 다만 도동항 선착장에 비해 큰 규모의 배나 해양경찰청 경비정, 해군 경비함 등이 이쪽으로 이동하여 접안할 수 있게 되어 있고 포항에서 오는 대형 크루즈 선도 여기를 함께 이용하는 모양이다. 독도로 가는 선박도 도동, 저동, 사동 등에서 모두 선사가 다르게 운항하는 모양인데 하루에 독도를 향하는 유람 여객 선박이 서너 편은 되어 보인다. 독도에 있는 경비대의 사기 진작과 함께 영유권 관련한 관리의 측면에서도 우리 국민의 독도 순례 관광은 많은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사실 이런 생각은 일정을 거의 마무리한 시점에서 후술적으로 내리는 판단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도착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배에서 내려 차를 찾으니 차가 앞쪽에 있다. 울릉도에 예전에 왔을 때는 내수전과 섬목 사이에 터널이 뚫리지 않은 상태라 울릉도 일주도로는 일부가 단절되어 있는 셈이었고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터널이 완공되어 섬의 삶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느낌을 준다.
일단 울릉도의 심장 격인 도동항으로 가기로 한다. 사동항에서 도동항을 향해 가다가 터널을 통과하고 내려서니 도동이다. 지금도 쾌속선들은 여기 도동항에 도착하는 모양이다. 엘도라도 호는 포항을 오가는 배인 것 같다. 맏동서 형님이 울릉종고에 근무할 때 있었던 애환을 집사람이 이동 중에 이리저리 풀어낸다. 도동은 웬만한 도회의 러시아워 시간에 버금갈 정도로 차가 복잡하다. 택시와 승용차는 물론이거니와 공영버스에 관광버스, 승합차 등이 뒤엉켜 북새통이다. 그리고 페리 선을 이용해 차를 갖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겨우 2차선 도로가 간선도로인 울릉도가 더 복잡해지고 주차 문제도 심각해진 것 같다. 공영주차장도 있지만 땅이 협소하고 규모가 작다 보니 차를 많이 수용하지는 못할 것 같다. 어찌어찌 도동항 선착장 근처에 빈자리를 찾아 주차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단 점심을 먹기로 한다. 울릉도는 따개비밥, 오징어내장탕, 나물 정식, 울릉도 칡소, 독도새우 등등을 먹거리로 내세우는 것 같은데 집사람과 선착장 근처 우성식당에 들어가 따개비밥 2인분을 시켰다. 한 그릇에 2만 원이면 싼 건 아니다. 지난번에 제주에서 보말칼국수를 집사람이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던 것 같다. 따개비칼국수도 있단다. 간을 한 따개비밥을 반찬을 곁들여 먹는데 나물밥을 간장에 비벼 먹는 그런 느낌이랄까. 집사람과 내가 대화도 별로 없이 묵묵히 밥을 먹었더니 식당의 연세 드신 아주마이들이 ‘와, 밥을 먹으면서 말도 한마디 하지 않고 먹나.’라고 집사람에게 퉁박을 주더라는 후일담. 우리가 싸운 건 아니랍니다. 그저 밥상머리 습관이 말이 많지 않을 뿐이지요.^^
식당을 나와 선착장 좌우편의 해안산책로를 가본다. 우선 저 좌측으로 뻗은 행남 해안산책로는 도동 선착장 건물 옥상을 거쳐 해안으로 내려서는데 제주도의 해안을 보는 것과 같이 화산지형이라 풍광이 비슷하나 울릉도가 더 집약적으로 뭉쳐 있는 느낌이랄까. 왜냐하면 울릉도의 규모가 제주도에 비해 비교적 작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 한데 뭉쳐 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더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울릉도의 거북바위가 무너져 야영객이 사망하고 다쳤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울릉도의 수직 절벽은 풍화와 균열의 작용으로 언제든지 낙석과 붕괴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걱정 없이 편안하게 거닐 만한 분위기는 아니다. 다소 조마조마한 느낌을 안고 걸어 다니고 차를 운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건설된 터널형 도로는 덮개가 씌워진 방식을 취함으로써 도로와 자동차를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 완전히 폐쇄된 것이 아니라 바다를 향해 창이 난 형태를 지니는 절충된 형태를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 이용되던 도로들의 노면에 잔돌이 많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해안도로 옆으로 솟아 있는 바위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장관이되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든 재난을 초래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선창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우측 해안도로로 걸어가면서 울릉도에 도착한 상견례를 바다와 갈매기를 향해 건네본다. 다만 갈 수 있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아쉽다.
이번에는 전에 왔을 때 보지 못한 곳인 독도 박물관과 케이블카 등을 돌아보기로 한다. 도동 골목길을 따라 편안한 마음으로 걸으며 올라가니 울릉교육지원청과 도서관을 거쳐 박물관에 전시된 내용을 일람하면서 일개 백성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려고 노력한 안용복과 독도로 주민등록을 옮겨가면서 삶으로 독도를 지켜낸 최종덕 씨의 삶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영웅들,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중에 순직한 소방대원과 구조대원들을 떠올려본다. 입만 살아서 애국을 떠드는 사람들보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충실하고 거짓 없이 살아가는 뜻있는 사람들의 헌신이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 전망 케이블카에 올라서니 한눈에 도동과 바다의 풍광이 들어온다. 정상부 휴게소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울릉도의 전경이 아름답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속살은 이런 풍광을 감추고 있었구나. 쳇바퀴 같은 삶의 반복과 가쁜 줄달음에서 가끔은 멈춰 서서 숨을 고르며 우리가 살아가는 국토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보고 애정을 느끼고 그 땅에 융합하며 살아가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겐 필요하다. 지켜야 할 것의 가치를 알고 깨닫게 하는 것은 머리로 지식으로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보다 힘이 세다는 점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아이를 왜 낳지 않느냐고 흥분하지 말고 아이들이 소중하게 대접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노동자의 목숨값이 자본의 경제 논리에 무력하게 대차 대조되고 소거될 때 이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헌신의 염이 생겨날 것인가. 삶이 지옥이 되지 않게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육도 의료도 젠더 갈등도 모두 그런 관점에서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이제는 첫날 숙소 문제가 있어서 대안으로 선택한 국민 여가 캠핑장으로 간다. 학동에 있고 곰바위가 보이는 위치에 폐교 터를 활용한 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가 인구 대비 국토가 협소한 편이지만 이 울릉도야말로 평지를 만나기가 참 쉽지 않은 곳이다. 학교 터라고 해도 넉넉한 편은 아니다. 방갈로가 두 채 따로 서 있고 관리동 2층에 숙소가 몇 개 추가로 있다. 화장실, 샤워장, 취사장 등이 관리동 1층에 있는데 휴대전화 충전기와 전자레인지가 있어 공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은 온수가 넉넉하게 잘 나오는 편이다. 첫인상은 좀 투박해 보였으나 하루 지내보니 관리가 잘 되는 편이다.
도동에서 차를 타고 여기까지 이동하면서 보는 풍경이 너무 좋았으나 막상 여기 도착하니 야외 데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차를 주차해서 이미 6면의 주차장은 만차고 그 옆의 공간에 4대 정도 대고 있어 난감한 상황이어서 관리실에 문의하니 옆 슈퍼 쪽에 차를 대란다. 가게 주인분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차를 대니 야영장 덱까지 오가는 것도 꽤 성가시게 멀다. 텐트를 가져오지 않고 루프탑에서 잘 생각이다 보니 바람 부는데 음식을 하고 먹고 하는 것이 어설프다. 차라리 텐트를 제대로 설치하면 좋겠으나 치고 걷고 하는 것이 내 게으른 성정에는 내키지 않아 차량용 텐트를 구입한 것이 아닌가. 저녁을 그럭저럭 먹고 이틀이나 냉장고에 넣지 못한 음식들 때문에 고민이 되지만 오늘만 지나면 번듯한 숙소로 가서 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지난 제주에서의 숙소가 너무 편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가. 결국 비용이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대충 마무리하고 사다리를 올라가서 텐트에 들어가 누웠는데 아, 다음에는 꼭 에프킬라를 준비해야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포만감에 취한 모기를 3마리를 잡았더니 손바닥이 벌겋게 물든다. 이 괘씸한 모기들 같으니라고! 구양수의 ‘증창승부(憎蒼蠅賦)’와 같은 글이라도 짓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