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5월 26일 일요일
오늘 오전까지는 크게 육지에서는 바람이 세다는 느낌을 그렇게 받지 못했다. 아니면 남풍이어서 북면 쪽은 비교적 차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오전에는 울릉도 해담길 4코스에 해당하는 천부 일출 전망대에서 죽암천까지의 길을 걷기로 한다. 숙소에서 가는 거라 차는 두고 몸만 가는 것으로 했다. 물론 간식과 물을 약간 챙겨서 배낭에 넣기는 했지만. 천부 수중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에서 우측으로 꺾어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천부 일출 전망대가 나온다. 이어지는 교회 공동묘지와 천부 성당 묘지를 지나 섬백리향 공장을 지나가면서 풍혈이라는 곳에 대한 안내 표지가 있어 들러보니 공사 중이라 접근이 불가하여 되돌아 나왔다.
천부 2리 마을에서 살짝 길을 잘못 들어서게 되어 막다른 집에 들르니 묶인 개들이 요란하게 짖는다. 검둥개 한 마리는 목줄이 없이 풀려서 가까이 다가오는데 살짝 겁이 나는데 주인이 어떻게 왔느냐고 묻길래 트레킹을 하는 중이라고 하니 여기는 길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되짚어 나오면서 한 아주머니에게 물어 제 길로 들어서려니 아까 그 집의 검둥개가 우리에게 쌩하니 다가와서 앞질러 간다. 그 아주머니 왈, ‘저 개가 계속 따라갈지 몰라요.’ 하신다. 이런, 정말로 그 검둥개는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라도 있는 양 앞서 쭐레쭐레 가다가는 멈춰 서서 우리가 오는지 살펴보고 또 저만치 앞서 숲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가 꿩 한 마리를 푸드덕 날리고는 다시 길로 돌아와 우리를 안내하듯 계속 앞장서 간다. 개라면 조그만 것도 무서워하는 집사람이 저 개가 하는 행동을 보고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개가 사람 말귀를 알아듣는 영물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 역시 저 개의 저런 모습이 마치 누군가가 길 안내의 호의를 베풀기 위해 파견한 유정한 존재로 여겨져 낯선 개와 함께 가는 길이 즐거웠다.
좁게 이어지는 산의 능선길을 가다 보니 물소리가 나고 계곡이 흐른다. 이런 곳도 수원지의 하나가 되겠지. 사람이 대지에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하다. 백운동마을에 도착하니 인가가 몇 채 있고 집마다 묶인 개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낯선 우리를 향해 경계하듯 짖어댄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와 동반해 주던 검둥개는 풀숲으로 뛰어들어 꿩 한 마리를 간발의 차이로 날리고 나와서는 우리에게 다가와서 무어라 말을 하고 싶은 듯 머뭇거린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고 목을 긁어주면서 이제는 돌아가라고 하자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뒤돌아서 왔던 길로 되돌아 자신의 주인이 있는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참, 그놈 신통하네 이런 생각이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모양이다. 몇 킬로미터의 길을 그렇게 다니곤 하는 그 개의 행동이 동네 사람들의 눈에도 익숙했기에 아까 그 아주머니가 그런 언질을 준 것이 아닐까.
죽암 쪽으로 내려가니 중장비가 서 있는 지점이 마지막이다. 이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아 그대로 죽암 해변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내려와 보니 딴바위가 보이는 죽암 몽돌해변이라고 한다. 바닷가를 걸어 천부까지 돌아오는 길에 생리적 욕구를 해소할 곳을 찾아보았지만 마땅치가 않았기에 천부까지 참으면서 오고 말았다. 오는 도중에 비비큐 치킨집이 성업 중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이따 저기서 닭을 먹고 싶다고 아내가 말하기에 그러자고 했다. 오는 길에 바다를 끼고 걷는 상황이 제주 올레길과 비슷했지만 좀 더 위태로운 느낌은 전에 언급한 이유들 때문이다. 천부 해중 전망대 근처의 화장실에서 근심을 덜어내고 나니 마음과 몸이 평안해진다. 그래서 해우소라고 하는 것이구나.
숙소에서 점심 식사를 만들어 먹고 오후에는 태하 쪽으로 가서 모노레일을 타기로 한다. 그런데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울릉 알리미 앱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내일 독도에 갈 수 있을까.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어쨌든 오늘은 태하항에 도착해서 모노레일을 타고 태하등대와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기로 하고 모노레일을 표를 끊어 타고 보니 모노레일이 산을 거의 수직으로 올라간다. 안내하시는 분이 바람 때문에 오늘 모노레일 운행이 이게 마지막이라면서 하산 시간을 지정해 준다. 등대 근처 전망대에 서 있는데 바람이 무지막지하게 불어 제친다. 대풍감의 향나무 군락지를 살펴보며 사진을 찍는데 바람에 혹여 휴대전화를 떨어뜨릴까 봐 겁이 날 지경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태하 해안산책로를 향해 걸었는데 이건 바람이 사람을 쓰러뜨릴 지경이다. 태풍급 바람으로 무섭다. 어제까지 그렇게 좋던 울릉도 날씨가 이렇게 급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게 된다. 울릉도에 와서 독도를 한 번 보고 접안해서 선착장에 발을 디뎌도 보고 사진을 찍고 가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고 또 언제 다시 울릉도에 오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라 이번에 꼭 독도에 가게 해주십사고 기원했다. 세상에서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백록담에서 맑은 풍광을 보는 것, 아니면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는 것 등등. 여기 울릉도에서는 독도에 가서 무사히 접안해서 상륙까지 하는 것이 거기에 해당된다고 하니 나의 조상님들의 삶까지 소환되게 생긴 지경이다.
집사람과 서로 엇갈려서 헤매다가 차로 근처에 있는 울릉 수토역사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바람은 무섭게 분다. 박물관의 전시 내용은 주로 조선시대에 수토제도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의 역사 속에서 관할했던 과정을 정리하고 강조한 것이었는데 역사적 근거 자료들을 전시한 내용이 볼만했다. 점점 바람이 더 거세지고 빗방울도 굵어질 기세다. 그래서 숙소로 가급적 빨리 돌아가기로 한다. 오전에 아내가 원했던 죽암 비비큐점으로 가서 양념통닭을 시켰다. 25,000원, 통닭을 사 먹어 본 것이 꽤 오래전이다. 맛있게 저녁으로 잘 먹었고 숙소로 돌아오니 내일 독도행은 기상 관계로 취소되었다는 안내가 왔고 곧이어 뱃삯이 전산으로 환불 처리되었다. 마음이 허탈했다. 그러나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같은 선사의 독도행 배편을 하루 늦은 화요일 같은 시간으로 새로 구매했다. 자리가 7석 정도 남았다고 해서 재빨리 예약하고 결제했다. 만약 화요일에도 못 간다면 수요일 오전이라도 시도해 볼 각오를 한다. 오전에 독도 갔다가 오후에 후포로 가는 체력상 쉽지 않은 강행군이 되겠지만 독도를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다. 화요일에는 독도 입도가 가능해지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약간 사심이 있는 기도이지만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는 않을 바람이기에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좋으신 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원의를 품어 안으시는 분이시니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