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8일 토요일
오늘은 계획대로라면 8코스를 걸어야 하지만 처형들이 내일 방문하는 관계로 조금 일정을 변경하여 올레길 9코스를 걷기로 했다. 9코스가 11,8km로 거리가 짧고 따라서 시간도 4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안내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대평포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서 보니 절벽이 웅장한데 이른바 박수기정이라고 한단다. 나폴리 피자 및 호텔이라는 영업장의 건축물은 하얀색에 건물이 인상적이다. 버스 정류장을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화순농협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화순금모래해변 해수욕장이 있는데 여기가 9코스 종점이자 10코스 시작점이다. 올레 안내소가 있다. 이곳에서 역방향으로 출발하여 대평포구를 향해 간다.
화력발전소를 끼고돌아 안덕계곡을 향해 가다 보면 정자에 올레꾼들이 먹고 쉬면서 갈 수 있도록 정자가 있는데 옥수농원의 주인장이 친절하게도 상품성이 없는 종류가 다양한 감귤을 상자째로 갖다 놓고 까먹으면서 쉬다 가라고 안내문을 써 붙여 놓았다.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맙고 따뜻하다. 낯선 사람들이 자꾸 성가시게 굴거나 지나가면 친절하게 대하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한다. 물론 이런 호의를 악용하여 가방에 담아 가거나 지나치게 욕심을 취하는 것은 다음에 지나갈 사람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 일이라는 따끔한 언질도 잊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일률적으로 재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안에 이미 선재적으로 천국과 지옥이 함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손을 내밀고 도움을 줄 때 세상은 천국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는 셈이고 서로를 배척하고 증오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 지옥을 살고 있는 것이리라. 탄핵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 아우성과 혼란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찬찬히 음미할 필요가 있다. 날 선 언어와 적대감이 폭력을 수반하여 횡행하는 지금의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잘잘못은 가려져야 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라고 할 것은 ‘아니오’라고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국민은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마지막 수호자로서 정직하게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할 것을 기대하면서 인내하고 있다. 지금은 헌재의 시간이다. 그러나 곧 국민의 시간이 올 것이다.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은 누군가가 선물로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국민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삶을 살면서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생각 없이 사는 것은 공동체적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을 유기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에 대해서 우리는 공동체와 신 앞에서 답변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안덕계곡이 참 좋다. 외국인들이 어떻게 알고 오는지 올레길 곳곳을 걷고 있다. 머지않아 산티아고 순례길 못지않은 명성을 제주 올레길이 얻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한다. 군산오름에서 내려다보는 시야가 시원하다. 이곳에 온 이후로 봄인가 하면 도로 겨울이고 여름인가 하면 거센 폭풍우가 부는 날씨다. 제주의 봄은 참 다채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봄은 조금씩 조끔씩 전진하고 있다. 변화는 그렇게 한 발 한 발 시나브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갈등이라는 겨울도 그렇게 봄으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 믿음을 가져본다.
나는 크게 절망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주의 4.3.이나 4.19.나 5.18.이라는 역사적인 참혹함과 시련들을 견디고 극복하면서 민주주의를 확고히 하고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것처럼 문화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를 만들어 왔다. 낙후된 저개발국가의 상태에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으로 변화시켜 내기 위해서 제주의 들판이 그렇듯이 돌을 골라내어 밭담을 쌓고 울담을 쌓으면서 삶의 터전을 일궈왔다. 누군가가 오도하듯 독재적 권력을 휘두른 한 사람의 권력자가 설계한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위해 희생하면서 만들어온 것이다. 그것을 마치 누가 선물처럼 준 것으로 호도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관이 아니다. 역사의 주인은 평범한 삶을 영위하면서 이 사회를 지탱한 수많은 갑남을녀 바로 그들인 것이다.
세월호의 비극 앞에 정직하지 못한 권력은 탄핵되었고 처벌되었으며 이태원 참사와 채 상병의 죽음 앞에서 솔직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올바른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분열과 대립을 일삼은 권력도 이제 탄핵되었다. 타인을 향해 서슬 퍼런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그 칼날이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그 공정함에 대해서 명심해야 한다. 치외법권의 권력은 대한민국에서 용납될 수 없고 왕(王)은 더더군다나 존재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헌법적 질서를 지켜내기 위한 진통인 것이다. 나는 이 나라와 이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고 우리가 가꿔온 이 땅의 올바른 정의를 지킬 것이다. 세상의 거짓된 권력은 항상 타인을 희생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 한다. 미얀마의 군부독재 세력을 보라. 그러나 참으로 아름다운 권력은 자신을 희생하여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지도자를 원한다.
한림읍에 있는 한림성당 7시 30분 특전 미사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5일이 재의 수요일이고 이번 주일은 사순 제1주일이 되는 것이다. 사순 4주일까지 여기서 특전 미사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작년에는 조천성당에 갔었는데 한림성당의 부지가 상당히 넓어서 한 구역을 거의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고 뭐랄까 김포성당과 같은 분위기를 조금 느끼게 한다. 신부님의 인상은 온유하고 친절한 듯하면서도 강론을 들어보니 마음에 깊이 남게 하는 여운이 큰 내용이 인상적이고 시의적절하다. 일거수일투족이 진중하고 사제로서 빈틈이 없어 보인다. 좋은 분이다.
이제 한국 가톨릭의 사제들이 수천 명에 달한다.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의 삶과 죽음으로 가꾸어진 방인 성소의 씨앗이 열 배 천 배의 결실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가끔 사제로서의 삶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하게 물러나거나 환속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모습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도 한국 교회가 성장하였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인 성장통이라고 보아야 하겠고 모든 구성원들이 연대적인 책임감을 갖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나약하고 죄에 기울기가 너무나 쉽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손가락질하면서 비난하기보다 ‘내 탓이로소이다’라는 관점으로 함께 보속할 필요가 있다. 사제들의 경우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제가 되었는지 본질적인 소명의식을 거듭 반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의 약함에 대하여 주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