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14일 금요일
오늘 걸을 곳은 올레길 10코스다. 지난번에 처형 일행과 약간 걷기는 하였으나 제대로 완료한 것이 아니어서 다시 온전하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만 송악산을 도는 부분은 생략하고 바로 직진하기로 한다. 이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버스 기사님도 서두르라고 하는 충고를 했을 정도니까. 제주는 정말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예전에 그 바람은 특히 제주인의 삶에 큰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지금도 물론 그런 면이 있지만 과거에는 그것도 자연이 주는 시련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을지 모른다.
모슬포의 하모체육공원 올레 안내소 앞의 보건소 주차장에 차를 대어 놓고 물어물어 251-1번 버스를 이용하여 안덕농협에서 내려 화순금모래해변 시작점으로 갔다. 한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라 쉽게 찾아 내려간다. 그래서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삶에서 맑은 이성과 지성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감각적 앎, 체험적 앎도 중요한 것이다. 결국 인간을 완성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앎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신학대전’이 미완성으로 끝나게 된 것은 성인의 영적 체험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저술한 것들이 비록 무가치한 것은 아닐지라도 하느님 앞에서 지푸라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김장하 선생 같은 사람의 삶은 논리와 이론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구현하는 감동이 있다. 그런 것이 세상을 지탱한다고 믿고 싶다.
10코스는 산방산을 해안 쪽으로 감싸 안고 가는 길인데 송악산 해안 언저리길, 용머리 해변, 송악산 둘레길, 섯알오름을 지나간다. 화순 해안은 6.25 때 미군이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접안하던 곳이라고 한다. 하멜의 이름도 산방굴사 근처 용머리 해안에서 접할 수 있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기억들이 그 지역의 인문적 지리학을 구성하고 있다. 산방산 주변의 유채꽃이 초록과 어우러져 노랗게 빛나고 있다. 봄은 오고 있는데 이 나라의 희망적인 소식이 빨리 들리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바닷가 저 멀리로 형제섬이 보인다. 그리고 바람이 점점 거칠어진다. 유채꽃이 피었는가 하면 작년에 무성했던 억새들이 거칠어진 머리카락처럼 흩날리고 있다. 송악산 둘레길을 단축하고 섯알오름을 향해 간다. 일제강점기의 구조물들이 제주 전역에 남아 있지만 이 오름에는 대공포 진지와 알뜨르 비행장 등이 태평양 전쟁과 관련된 일제의 흔적을 강하게 남기고 있다. 그리고 섯알오름 아래쪽 못에는 아직도 물이 차 있는데 4.3과 관련하여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던 곳이다.
하모체육공원에 도착해서 차를 몰고 숙소로 귀환했다. 저녁에는 00이에게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해서 협재 해변에 가서 고기국수를 먹고 바닷가를 거닐다가 커피점에서 음료를 마시며 저물어가는 하루를 음미한 후에 숙소에 돌아왔다. 이런 평화로운 날들을 옥죄고 있는 답답함을 무엇인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