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13일 목요일
처형들이 어제 떠나고 우리는 제주 올레 일주를 위한 여정에 복귀하였다. 오늘은 올레길 8코스를 걷기로 한다. 작년에 월평 아왜낭목 쉼터에서 멈췄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차를 구간 종점에 해당하는 박수기정이 보이는 대평포구에 두고 531번 버스를 이용하여 하원동에 하차 후 한참을 걸어 시작점에 도착했다. 눈에 익은 풍경이다. 8코스는 대포주상절리, 베릿내오름, 색달동, 예래동 등 중문 지역을 관통하도록 되어 있다. 수학여행을 인솔하면 주상절리를 보러 꼭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올레길 중에서 7코스, 8코스는 일반인들도 많이 접하고 걷게 되는 풍광이 수려한 곳이기도 하다.
요즘 길을 걷는 행위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목적한 바가 없이 막연하게 걷기만 하는 것은 지루한 감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집중력 없이 마음이 흐트러져 버리기도 한다. 올레길 완주라는 목표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것일망정 목표 의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빡빡한 일정과 체력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이유가 되어 준다. 사실 탄핵 정국의 이 답답한 상황도 아무 생각 없이 걷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부추기기도 하지만 정말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3월이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안개가 걷히고 일상 회복에 대한 전망이 보이기를 기도한다.
제주에 있는 사찰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약천사인데 제주 남쪽 바다를 향해 우람하게 콘크리트 재료를 이용하여 들어서 있다. 우이동 골짜기의 도선사를 떠올리게 한다고나 할까. 목조 전통 사찰 건축이 지니는 웅숭깊은 느낌보다는 강한 금강역사의 근육질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규모가 큰 절이고 몇 차례 들러서 급한 용무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 곳이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떠올리게 된다. 약천사 경내를 지나 길은 대포연대를 지나간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중간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곳이 나타난다.
항해진미라는 일종의 위락시설을 지나면서 요트와 식당 등이 좋은 경관을 끼고 자리하고 있다. 곧이어 중문색달해수욕장을 접하면서 그 위로 지나가게 된다. 예래동에 접어들게 되면 생태공원이라고 잘 조성해 놓은 곳을 통과하게 되는데 그 규모가 길게 이어지며 매우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쉬어가기로 했다. 바닷가로 내려와 걷다 보면 논짓물이라는 지명을 보게 되는데 이날 바람이 꽤 불었다. 이어지는 길 좌측은 바다요 우측은 사람살이의 곡절에 따라 다양한 건물과 풍경이 자리하고 있다. 대평포구 좌측의 박수기정이 멀리 보이는 곳에 다다르면 카페 루시아가 보이는데 참 좋은 위치에 있고 한 번쯤 정식으로 들러 그 분위기를 차분하게 음미하고 싶게 한다. 특히 집사람이 눈으로 낙점을 해 두었다. 결국 며칠 뒤에 00이와 다시 들르게 되지만.
카페 루시아에서 대평포구로 돌아가는 길에 조각품 하나를 만났는데 처음에 그 실루엣을 보고 깜짝 놀라 멈칫했다. 발과 손은 얼굴 면은 구체적으로 입체적 형상을 갖추었으나 다른 부분은 철망으로 뼈대만 조형한 것과 같은 형태이고 가슴 부위의 흉곽 안에 물고기가 들어 있는 작품이다. 나중에 이와 비슷한 형태의 작품을 김녕에 있는 해녀박물관에서 보고 반가움을 느끼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낯설고 느닷없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