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15일 토요일
오늘은 올레길 11코스를 걷기로 했다. 무릉외갓집에 차를 주차하고 버스를 이용하려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를 타고 모슬포 하모체육공원 구간 시작점으로 갔다. 무릉외갓집은 폐교를 마을 공동체에서 공동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일종의 사업장이었다. 모슬포 뒤의 모슬봉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길이 오밀조밀하게 이어진다. 정상을 약간 비스듬하게 올라가면 중간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곳이 나온다. 모슬봉 주변에는 온통 무덤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의 일정한 몫은 망자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요즘은 화장을 하는 추세지만 화장을 하더라도 가족 공동 분묘를 마련해서 추모의 공간을 마련하려는 마음들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세상 구석구석이 온통 무덤일 수 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딛고 서 있고 죽은 자는 산 자들의 어깨에 무등을 타고 있는 셈이다.
길을 더 가다 보면 정난주 마리아의 묘가 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성지가 되는 셈이다. 황사영 백서를 쓴 사람이 그녀의 남편이다. 그녀는 정약현의 딸이다. 백서 사건으로 남편 황사영은 대역죄인으로 단죄받아 능지처참의 형을 당하고 그녀는 아들과 함께 관비의 처분을 받아 대정현에 유배된 삶을 살고 그의 아들인 황경한은 추자도에서 살다가 죽어서 묻히게 되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고난은 무의미한 것으로 볼 수 없으리라. 십자가의 예수님이 비참한 죄수로 돌아가셨지만 인류의 구세주로서 대속의 고통으로 이해되듯 황사영 일가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죽음을 넘어선 구원의 희망인 것이다. 믿는 이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굳은 믿음의 여정인 것이다. 이것이 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절실한 기다림의 삶을 살고 있는가 스스로 자문할 필요가 있다.
신평 곶자왈을 통과하는 길은 아주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숲이 주는 그 깊은 울림과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길의 백미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강행군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제주의 모습을 속속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지난날들과 달리 이번에 걷는 이 올레길을 통해 제주의 진면목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체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림성당 특전 미사에 참석했다. 사순 제2주일이다. 이백의 글에 ‘天地는 萬物之逆旅요 人生은 百代之過客’이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이 지상을 순례하는 순례자, 나그네일 뿐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처럼 ‘지나가는 그림자’이기도 하다. 다 같은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