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제주 한달살이(2025)

- 2025년 3월 16일 일요일

by 차거운

오늘은 올레길 12코스를 걷기로 한 날이다. 도착 지점인 용수포구에 차를 주차하고 보니 여기도 가톨릭 신자 입장에서 뜻깊은 곳이다. 성 김대건 신부님이 중국 상하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표착했다가 다시 충남 쪽으로 해서 귀국한 여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념관과 성당이 있다. 정난주 마리아의 묘, 이시돌 목장 등과 함께 제주 가톨릭 성지의 일부를 이루는 곳이 아닐까 한다. 한 인간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후대에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서산대사의 한시로 전에 알고 있었던 이양연의 ‘踏雪野中去’라는 시를 곰곰이 곱씹어 보게 된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이 또한 삶의 양자적 얽힘이 아닐 수 있겠는가. 생각하고 또 생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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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외갓집 시점으로 가는 길이 참 험난하다. 202번을 타고 무릉1리에 내려 한참을 헤매면서 걸어 시작점 근처로 갔다. 그리고 걷기가 시작되었다. 중간 스탬프가 있는 산경도예를 가보니 모든 것이 괴괴한 침묵 속에 잠겨 있다. 이 역시 폐교를 활용한 작품 창작 공간으로 보인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도 느꼈지만 전국에 걸쳐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고 이에 따라 도시지역이 아닌 곳의 학교들은 본교와 분교 수준에서 수없이 문을 닫고 폐교가 되어 있다. 제주도에도 학교들이 통폐합되고 사라진 학교들이 빈 교정으로 남아 용도가 변경되고 있다. 두모악에서 그랬고 여기 산경도예 터가 그러하고 무릉외갓집이 또한 그렇다. 학교는 사실 그 지역의 삶의 중심이 되고 추억이 되고 미래가 되는 곳인데 이런 장소들이 사라질 때마다 사람살이의 근거들이 아울러 지워지고 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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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제주의 바람은 또 심술을 부린다. 신도 바당올레 간판을 지나 바다를 걸어가다 보면 수월봉 육각정이 나타난다. 우리가 여기 도착했을 때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 제친다. 수월봉 일대는 지질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화산지형의 모습이 기묘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는 안내문이 있다.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하는지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하러 온 것을 마주쳤다. 바람은 거세지만 처음 보는 특이한 지질적 특징을 지닌 지형을 확인하면서 걷는 길은 보람이 있었다. 나중에 00이와 다시 한번 이 장소를 찾게 되었지만 지금도 머리에서 그곳의 특이한 풍광이 인상적으로 맴돌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역시 일본군의 진지 시설이 고스란히 남아 우리 민족의 수난을 기억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힘이 없는 민족은 자신의 생존을 지켜내기가 어렵다. 우크라이나를 두고 러시아와 미국이 벌이고 있는 협상에는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없어 보인다. 이 세상의 질서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또다시 약육강식의 정글 논리로 되돌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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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봉을 거쳐 용수포구로 가는 길에 아주 가까이 차귀도가 보인다. 차귀도는 네댓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군도처럼 보인다. 차귀도를 선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제주의 지리에 대한 머릿속 인식의 지도가 이제 조금 제 자리를 잡는 것처럼 보인다. 아, 이제야 조금 보이는 것이다. 제주도의 지리와 사람들과 삶과 역사가 말이다. 거센 바람에 작업용으로 보이는 바지선이 좌초해 있는 것이 가까이 보인다. 제주는 정말 바람의 섬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남지나해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 대륙에서 불어오는 바람 등 사방의 모든 곳에서 바다를 건너올 수 있는 것이 파도와 바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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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벌벌 떨리는 몸으로 용수 성지 기념관 겸 성당을 둘러보고 나왔다. 오늘은 평생 맞을 바람의 6할은 맞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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