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제주 한달살이(2025)

- 2025년 3월 17일 월요일

by 차거운

오늘은 월요일이어서 한수풀도서관이 휴관하는 날이다. 00이에게 하루는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말하고 하루 우리의 올레길 걷기 행진도 쉬기로 한다. 아침을 먹고 어제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길을 따라 수월봉 지질공원으로 갔다. 바람은 오늘도 여전히 불고 있다. 징글징글한 이 바람이여! 00이는 나를 찍고 나는 00이를 찍고 이른바 샷 대결. 딸내미와 함께하는 이 시간은 내외가 걷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00이가 옷을 준비해 오지 않아서 옷이 없어 내 옷을 입고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다. 준비성 없는 것은 누굴 닮았는지 쯧쯧!

모슬포 방향을 향해 가다가 미쁜 제과에 들렀다. 소금빵과 커피 한 잔을 놓고 주변을 둘러보며 우리 내외가 걷고 있는 제주도의 올레길이 바로 이런 곳들을 연결하며 걷는 것임을 아이에게 설명한다. 미쁜 제과 주변을 둘러보면서 처형들과 왔던 기억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모슬포의 산방산을 향해 방향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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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산방산을 향해 가다가 유채꽃이 만발한 곳에 차를 세우니 저 멀리 승합차에서 손짓을 한다. 둘러보니 사진 1인당 1,000원! 하하 그러니까 이곳은 부러 유채를 심고 사진 찍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 후에 1인당 입장료로 1,000원을 받는 유료 포토존인 셈이다. 기분이 별로 상큼하지는 않다. 자연을 즐기는 것에 돈을 낸다는 것. 물론 가꾸고 노력한 사람에게 보상을 할 필요는 있지만 적어도 봄에 피는 꽃을 누리는 자유에는 비용을 물리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날의 경제를 플랫폼 자본주의 혹은 불로소득 자본주의라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카피레프트와 카피라이트의 가치관에 대한 입장을 떠올리기도 한다. 독점과 플랫폼 지대와 노동과 자본 등등.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든다.

00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대평포구를 향해 차를 몰고 갔다. 거기 박수기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집사람은 카페 루시아의 분위기를 누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역시 커피와 빵을 시켜 놓고 창 쪽에 앉아 바다 풍경을 찬찬히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하나의 근본적인 장면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 꿈꾸던 그런 종류의 여유로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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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서귀포를 지나 쇠소깍을 향했다. 쇠소깍은 집사람이 작년에 보고 두고두고 이야기를 하던 인상적인 곳이기에 00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쇠소깍의 푸른 물빛을 보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딸내미에게도 제주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저 수험공부만 하는 힘든 날들이 아닌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쇠소깍을 떠나서 처형들과 같이 갔었던 광어다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00이는 해물을 먹지 않지만 광어 탕수는 조금 먹었고 잘 먹기는 집사람과 나 자신이었다. 잘 먹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음식을 가리지 말고 잘 먹도록 훈련해야 한다.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생존지수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길에 휴애리 유채꽃 축제장에 들렀다. 수국이 만발한 온실과 유채가 가득 핀 경내가 장관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게 애완용 돼지와 염소 등 동물들도 있어 먹이 주기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저 멀리 한라산 백록담 언저리가 눈에 희끗하게 덮인 모습이 보인다. 2018년 2월 네팔 포카라에서 바라보던 마차푸차레 봉우리를 연상시키는 구도였다. 어제 일처럼 새롭다. 삶의 자리에서 무언가 영험스러운 것을 우러러보며 살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이 산봉우리든 특정한 당산과 신목이든 말이다. 그런 것 없이 우리 삶은 가치의 기준을 잃고 길을 잃기 쉽다. ‘큰 바위 얼굴’처럼 그런 존재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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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선생 같은 이는 우리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 그런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요즘 사회적으로 내로라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서 그들 스스로가 역사 앞에서 자신을 박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다. 지금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대중들 앞에서 영구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 스스로를 옥죄고 단죄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참으로 언행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법이다.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일이다. 시경의 표현대로 ‘전전긍긍(戰戰兢兢) 여리박빙(如履薄氷)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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