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제주 한달살이(2025)

- 2025년 3월 30일 일요일

by 차거운

00이도 도서관 가는 일을 이제 그만하고 쉬면서 내일 올라갈 준비를 하겠다고 하여 그렇게 하자고 했고 먼저 딸내미가 빌린 책을 반납하기 위해 한수풀도서관엘 들렀다가 한림공원에 입장해서 둘러보기로 했다. 휴애리 축제장의 입장료가 13,000원이었고 한림공원의 현장 구매 입장료가 15,000원이니 세 사람이 가면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렇지만 제주에 와서 한림공원 옆에 숙소를 잡고서 그냥 갈 수는 없고 또 한림공원이 한 번쯤은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 수학여행을 인솔해서 오면 꼭 들르는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한림공원이고 꽤 다채롭게 볼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기에 이때를 위해 남겨두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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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공원을 들어가면 식물들이 자라는 온실이 있다. 여기 선인장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장관이다. 엄마와 딸이 함께 사진에 담기는 그 구도가 사진을 찍는 나에게는 흐뭇함 그 자체다. 이 아이는 그동안 사진을 찍히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은둔형 인물인데 오늘은 스스럼없이 사진 모델을 하고 있다. 아비 옷을 입고. 온실 밖에도 오래된 고목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선인장들이 이어지고 한쪽에는 성모님 상이 모셔져 있다. 한림공원과 성모상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히아신스, 그리고 이름을 잘 모르겠는 꽃들이 경상도 식 표현으로 천지삐까리다. 동선을 따라 진행하다 보면 제주를 상징하는 다양한 품종의 감귤나무들이 식재되어 눈을 즐겁게 한다. 시원하게 향나무와 야자수가 도열한 대로를 따라가면서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집사람도 00이도 한림공원에 처음이라서인지 아주 만족스럽고 흥미롭게 잘 보고 있어 입장료가 제법 비싸다는 처음의 생각을 잊게 한다. 제주는 이제 벚꽃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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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원 쪽에서 다양한 난초와 현무암이 어우러진 분재들을 보는 맛도 일품이다. 그리고 작은 화분에 담긴 다육이들이 제각각 개성을 뽐낸다. 아, 그리고 튤립꽃이 도열한 로마 군단처럼 가지런히 심겨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근처에 튤립 축제장이 매화밭과 함께 있는 것을 작년 6월에 가서 봤지만 그땐 이미 꽃이 다 지고 매실이 달린 후였기에 여기에서 보는 튤립꽃밭이 새삼 눈에 꽉 차게 들어온다. 아름다운 봄날이요 아름다운 장소요 아름다운 세상이다.

튤립꽃 색깔이 보라색, 흰색,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등으로 참 다양하다. 우리의 개성처럼 그렇게 제각각의 빛깔과 자태로 눈앞에 늘어서 있는 것이다. 어떤 선사가 이르기를 ‘世界一花’라 했단다. 그렇다. 세상은 조물주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하나의 존재도 서로 중복되지 않고 개성을 지닌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일 것이다. 80여 억이 넘는 인류의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그렇게 자기만의 서사를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제발 사람의 목숨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다루는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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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공원에는 천연동굴이 세 개가 있다. 이름하여 협재굴, 쌍룡굴, 황금굴이 그것이다. 이 굴들은 서로 동선이 이어져 있게 구성되어 있다. 굴을 둘러보고 나오면 추사 김정희가 대정에 유배되어 사랑했던 수선화가 말끔한 얼굴을 바람과 햇살에 씻고 한들거리며 맞아준다. 그리고 용틀임하듯 몸을 꼬고 있는 향나무의 수령이 어마어마하다. 분재는 그 크기에 비해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왔다. 마치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나 피터 팬처럼. 외적으로 크기보다 안으로 깊게 응축된 존재가 분재된 나무가 아닐까 한다. 모과나무를 분재한 것이 형태적으로 아름다운데 150년의 나이는 보통이다. 증조 고조할아버지를 넘어서는 존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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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의 길을 막아 정체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숫공작이 부챗살 같은 화려한 깃을 한껏 펼쳤다가 접었다가 하며 판소리 한마당을 읊는 명창의 손동작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펼쳐진 공작의 깃에 눈이 점점이 달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디서 누군가가 나를 저렇게 많은 눈으로 지켜본다면 어찌하랴 하는 식은땀이 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千手千眼의 관세음처럼 말이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서 공작을 처음 보고 많이 놀랐던 것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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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공원을 나와 협재 바닷가의 치킨집에서 닭으로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각자 짐을 정리하기로 한다. 딸내미는 내일 오후에 올라가고 우리는 모레 새벽 눈 뜨자마자 출발해서 제주항으로 가야 한다. 완도를 거쳐 서울집까지 가려면 하루가 꼬박 걸릴 것이기에 마음의 준비를 미리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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