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선생, 제주 한달살이(2025)

- 2025년 3월 31일 월요일

by 차거운

오늘 딸내미가 먼저 김포로 떠나는 날이어서 아침 먹고 느긋하게 짐을 싸고 완주 기념으로 올레 센터에서 준 올레 면옥 본점의 식사권을 사용하기 위해 식당 위치를 내비를 이용해서 찾아갔다. 제주로 가는 길에 완연하게 봄기운이 감도는 것을 가로수의 벚꽃이 활짝 핀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 올레 면옥 본점은 냉면을 올레 완주자에게 몇 가지 조건을 붙여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네이버에 가게에 대한 후기를 작성하는 조건이 바로 그것이다. 냉면을 주문하고 그저 공짜로 먹기가 그래서 육전을 추가해서 시켰고 00이는 비용을 내고 먹는 것이니 가게 주인장께도 손해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냉면을 먹던 00이가 얼굴이 벌게 지면서 냉면을 많이 남긴 채 불안해하며 표정이 좋지 않다. 매듭이 지어지지 않고 질질 끄는 헌재 판결에 대한 불안감이 원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불덩이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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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많은 국민과 마찬가지로 위법적이고 위헌적인 계엄을 선포한 자격 없는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는 헌재의 판결이 선고 기일조차 잡히지 않고 그 이유에 대해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이 시점에서 아이의 마음도 이해가 되지 않는 바가 아니지만 믿음을 갖고 기다려 보자는 말을 해도 아이는 어쩔 줄 모르고 불안해하며 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두려움의 감정이고 공포다. 현 상황에 대해서 갖는 두려움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나는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그날 국회에서 계엄군을 맞아 온몸으로 저지하던 시민들과 거리에서 추위에 떨며 탄핵을 촉구하고 파면을 촉구함으로써 제2, 제3의 계엄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할 것을 요구하는 대다수 국민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계엄 행위를 정당화하고 두둔하며 기각이나 각하를 요구하는 세력들의 목소리가 우리의 정신을 황폐하게 하고 어지럽히는 이 시점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마음이 복잡함을 느끼면서 인내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아이를 공항에 내려주고 숙소로 돌아올 때 집사람은 공항 근처의 바닷가 커피점에 들러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갈 것을 원했지만 마음이 복잡해서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숙소로 오면서 조금씩 격동된 마음을 가라앉히다가 숙소를 지나쳐 대정읍 방향으로 달려 미쁜 제과엘 갔다. 커피와 빵을 시켜 놓고 차분히 바다를 바라보면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믿음이 필요한 시기이다. 헌재 재판관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들에게 나라의 운명이 현재로서는 달려 있는 셈이다. 당파적인 이해관계로 재판 결과가 나온다면 앞으로 벌어질 혼란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8:0 전원 일치의 판결로 파면 결정이 나오지 않는다면 역시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은 위태로운 길을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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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살아 있는 사람이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 모두.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려고 했다. 거리에서 외치는 극우적인 목소리들. 느닷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000, 000 등.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는 나와 동일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의 헌정 질서를 근본적으로 무시하고 극단적인 언사로 민주적인 헌정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차원에 대해서는 용납하기 어렵다. 선동적인 목소리들이 합리성과 이성 그리고 진정으로 양심적인 차원의 성찰을 거쳐 걸러지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일상의 평온함을 진정으로 되찾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내 아이를 비롯하여 특히 젊은이들을 잘못된 길로 안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 기성세대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참된 평화를 선물로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더 현명해져야 하고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화려한 수사와 언어적 위선을 통해서는 이를 얻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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