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1월을 보내며

- 소한과 대한을 견디며

by 차거운

홍성남 신부의 책 <나로 사는 걸 깜박했어요>, 프란치스코 교종의 회칙 <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의 <루가복음 묵상>, 임미숙 수녀의 <시편에 설레다>, 인만희 신부의 <궁금해요 기도!> 등을 읽었다. 신앙과 관련된 독서는 삶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자신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 머리만 점점 무거워진다고나 할까. 가슴과 머리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법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하듯 자신의 구체적인 현실과 접속되어 있지 않다면 빛 좋은 개살구 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지순례의 행위 역시 자신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나 거기에 기반한 공동체와 유리되어 있다면 별로 의미가 없는 피상적인 공간 이동에 지나지 않게 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늘 고민이다. 구체적인 현실과 연결되어 있을 것, 이것이 관건인 셈이다.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라는 말씀을 기억하자.

대학 시절에 만난 사람들의 글을 활자로 인쇄된 책의 형태로 읽는 느낌은 늘 색다르다. 이러한 감정의 기저에는 삶의 길 위에서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점점 뒤로 후퇴하고 있는가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니 스스로 그간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근처 도서관에서 겨울 양식인 양 읽을 것들을 꾸준히 빌려와서 읽어나가고 있다. 이번에는 소설 3권에 시집 2권이다. 김원일의 소설 <마당깊은 집>, 이문구의 소설 <우리 동네>, <다가오는 소리>, 전성호의 시집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장철문의 시집 <비유의 바깥>을 잘 읽었다.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을 읽으면서 그의 다른 작품들을 떠올렸다. <어둠의 혼>, <겨울 골짜기>를 비롯한 작품들에 대한 기억이 새롭다. 6.25를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겪어내고 전후의 그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을 자전적인 기억들이 작품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윤흥길의 <장마>와도 흡사한 기억의 편린이지만 당대의 기준에서 좌익으로 간주될 부친의 사회적 궤적들이 작품 속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음을 알 만하다. 예전에 <겨울 골짜기>의 서사 안에서 배고픔의 육체적 고통과 먹는다는 동물적 행위 사이에 놓인 인간의 처절함에 대해서 곱씹었던 기억이 새롭다. 한 끼의 밥과 김치 한쪽의 그 절절함은 마치 김훈의 소설과 산문 등에서 종종 발견하게 되는 인간 존재의 비루함과 비애를 느끼게 하는 진술을 생각나게 한다. 그 작품을 읽으면서 반찬이 김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밥맛이 징글징글하게 솟구치던 그 기억이 새롭다. 이문구의 <우리 동네> 연작과 <다가오는 소리> 역시 <관촌수필> 연작과 함께 우리 문학적 전통에 내재된 특유의 해학적이고 만담적인 문체적 특성을 한껏 발휘하고 있는 작가의 고유한 문학사적 입지를 확인하게 한다. 고전 소설, 특히 판소리계 소설의 특성은 물론이고 채만식과 김지하의 풍자와 방언의 생생하고도 풍요로운 입담을 거듭 확인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 <해벽>은 남정현의 <분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70년대의 농촌 현실을 드러내는 문학적 흐름과도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신경림의 <농무>를 생각하며 <우리 동네> 연작을 읽게 된다. 황석영의 <객지>, <삼포 가는 길> 등은 농촌에서 도시로 현장으로 흘러 다니는 날품 노동자의 전이를 보여주고 있다면 이문구의 소설 <우리 동네>는 농촌에 초점을 맞춰 농민의 삶을 환상 없이 보여주되 일제강점기의 이기영의 작품과 같은 카프문학이 보여주던 어떤 미화도 폄하도 없이 솔직하게 날것 그대로 국가와 농민이 어떻게 만나고 부대끼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문구의 소설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에 얼핏 경험을 했으면서도 어느새 까마득히 잊었던 70년대 중후반 그 시절의 끝자락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새마을 운동, 농촌 개량 사업, 산업역군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광산에서 공장에서 저임금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살았던 시절의 분위기 같은 것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초입의 회상처럼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걸 느꼈었다. 그래 그렇게 살았다. 1941년(이문구), 1942년(김원일) 생일 두 작가의 생의 경험은 그렇게 작품 속으로 녹아들어 갔다고 하겠다. 이른바 4.19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다.

전성호 시인의 시는 솔직히 처음이다. 비교적 시어들이 명징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철문의 시집 또한 처음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읽으면서 내가 기억하는 시인의 얼굴과 그 웃음을 떠올리며 시를 읽다 보면 시에서 그 다운 느낌이랄까 체취랄까 하는 특징이 조건반사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법인 것 같다.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여행지에서 입에 맞는 국밥 한 그릇 푸지게 먹은 듯한 포만감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건대 그동안 실속 없이 허둥대며 바쁘게 돌아치기만 했지 차분하게 주변을 톺아보면서 살지 못했구나 하는 한탄이 다시금 든다. 앞으로는 숨을 고르면서 차분하게 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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