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4일 토요일
인천공항 2 터미널에서 오후 12시 30분에 타오위안 공항으로 출발하는 중화항공 CI161편에 탑승하기 위해 우리 내외가 집에서 출발한 시간은 7시 30분쯤이었다. 택시를 타고 공항리무진 버스 승차장까지 이동한 후에 거기서 7시 50분쯤 버스를 타고 9시 조금 넘어서 공항에 도착했다. 2 터미널에는 처음 와 보았는데 아시아나 항공이 최근에 여기로 이전해서 영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형님 내외와 만나고 곧이어 막냇동생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7kg이 넘는 캐리어 무게 때문에 수하물로 부치기 위해 항공사 카운터에 줄을 서서 발권을 하고 수하물로 부치는 절차를 밟았다. 바로 밑 여동생이 평택에서 조금 늦게 도착했고 수하물을 부치는 김에 온라인으로 전자 탑승권을 받았지만 종이 탑승권이 익숙한 편이라 출력해 달라고 부탁해서 실물 탑승권을 나누어 가졌다. 항공사가 창구를 연 시간이 10시였으니까 이런저런 일로 30분 정도 보내고 탑승구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출국심사와 보안 검색 등을 거쳐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을 탑승 게이트 앞으로 보내고 우리는 지난 유럽여행에서 쌓은 포인트로 받은 라운지 이용권을 예약한 것 때문에 경험 삼아 들렀다. 라운지에 들어가니 사람이 워낙 많이 이용하고 있어서 입구에서 잠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 큰 식당이라고 보면 무난할 것 같다. 컵라면을 익혀서 먹을 수도 있고 뷔페식으로 차려 놓은 음식을 갖다 먹으면서 커피도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이용 시간제한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머물지도 않는 것으로 보인다. 비행시간이 있기 때문이겠지. 간단히 음식을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형제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오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햄버거를 사다가 먹는 모습을 보고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라운지를 취소할까 생각도 했었으나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두었던 것인데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만 다녀와서 더욱 그랬다.
12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큰 변동 없이 탑승을 시작했는데 대만과 우리나라 사이의 거리라는 것이 항공기로는 2시간 30분가량 걸리고 시차가 한 시간 차이가 나는 정도이니 거의 제주도에 다녀오는 것과 같이 가볍게 오갈 수 있는 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곳을 나는 어쩌다가 이제야 가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큰 비행기에 사람이 가득 차서 이륙하는 것을 눈으로 살펴보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몇 년 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인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를 떠올렸다. 그녀의 ‘방랑자들’이라는 작품을 읽은 기억도 함께. 공항이라는 곳은 국제적인 공역이 아닐까 한다. 비록 그 소재 국가의 주권이 미치기는 하지만 국제적으로 함께 이용하는 공적인 장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항을 통해서 국경을 넘나들고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다른 장소로 스며들고 스며 나오는지 생각하면 아득한 상념에 잠기게 된다. 항공기들의 사양 역시 표준화되어 있고 공항의 검역이나 세관 업무, 출입국 심사, 보안 검색의 풍경도 국제적 규범에 의해 절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것 역시 하나의 문법에 해당한다. 에어버스라는 말 그대로 전 세계의 하늘을 매일 떠다니는 항공편과 거기에 몸을 싣고 있는 여행객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현대의 공항이라는 곳이 장소적인 측면에서 갖는 함의는 바로 그런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동에서의 전쟁이 중동의 핵심적 공항들을 마비시키는 것은 석유나 가스가 페르시아만을 통과하여 흘러 다니지 못하는 것 못지않게 눈에 드러나는 문제적 상황이 된다. 세상은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혈관이 터지면 빨리 막아야 하고 그렇지 못한 상태로 오래가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항공기의 항로를 모니터로 보니 제주 근방을 지나 그대로 내려간다. 그러다가 대만의 가장 윗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이르러 항공기는 길게 선회하며 착륙을 위해 자세를 잡다가 타오위안 공항(한자로는 桃園機場)에 내려앉는다. 이제 대만 땅에 도착한 것이다. 항공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밟는데 공항의 분위기가 밝고 환하다. 사람들도 표정이 좋다. 이 어리숙한 내가 지금 이 여행자들의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한다니 마음이 조금 부담스럽다. 꼭 학생들을 인솔하고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났을 때의 심정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 든다. 여권을 보여주고 입국심사를 하는데 사진을 등록한다. 그리고 미리 작성한 전자 입국신고서를 보여줘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온라인으로 제출되어 다른 것을 제시할 필요는 없었다. 수하물을 찾고 처음 온 장소에 대한 멀미를 느끼면서 호스트가 픽업서비스를 이야기한 것에 대해 확인하다가 결국 이것은 밴을 소개하는 일임을 알게 되어 우리가 공항철도를 타고 대중교통으로 숙소에 도착하겠다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한자를 읽을 수는 있지만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 우선 예약해 둔 이지카드를 실물을 교환해야 하는데 지하 2층을 찾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한 층 아래로 내려와서 다섯 사람으로 하여금 한 장소에서 쉬면서 대기하도록 하고 나 혼자 지하 2층 공항철도 타는 곳의 이지카드 온라인서비스 창구를 찾아 헤매다가 겨우 찾아서 실물로 교환하고 공항철도 입구를 확인한 뒤에 대만은 현금 사용 비율이 높다고 하여 대만돈으로 만 원을 찾으려고 국태세화은행을 찾다가 없어서 포기하고 가족들에게 돌아와서 함께 공항철도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거기에 급행이 있고 완행이 있는데 앞에 선 사람이 차가 도착해도 탑승하지 않아서 뭐라고 눈치를 주니까 타지는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린다. 그 뒤에 보라색 공항철도 차량편이 도착하니 사람들이 많이들 탄다. 아, 이것이 급행이구나, 네 곳인가 다섯 곳만 서는 빠른 열차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타이베이 철도역에 도착한 후에 지하철로 환승하기 위해 구글맵을 보았으나 결국 여기서는 우왕좌왕 헤매다가 파란색으로 된 노선의 역을 찾아가서 네 정거장을 지나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충효부흥역에서 내렸다. 내려서 구글지도를 따라 도착하니 젊고 잘생긴 호스트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번역기를 돌려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다른 언어는 잘하지 못하는 처지가 나와 비슷하다. 이제는 이런 방식의 어버버한 소통에 어느 정도 이골이 나 있어 다행이다. 사람은 다 살게 마련이다. 두려워할 것 없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인다.
숙소에서 쓸 방을 정하고 앞에서 얘기한 대로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 주방 식당, 다용도실, 거실 등을 살펴보면서 여럿이 사용하기는 괜찮은 숙소라는 판단에 다들 동의할 수 있었다. 다만 도심 근처의 상업지역이고 일종의 상가주택에 해당하는 격이라 주말인 오늘과 내일 소음이 꽤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는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수건은 목욕용 큰 타월만 9장 정도 제공하고 있는데 작은 세면용 타월이 같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주었다. 그런 점을 제외하고 숙소는 맘에 든다.
항공기에서 기내식을 먹은 까닭에 배가 급하게 고프지는 않아서 일단 야간 개장을 한다는 여행 안내서의 정보를 믿고 국립고궁박물원으로 가기로 했다. 다시 충효부흥역으로 이동해서 현금을 대만 돈으로 만 원을 찾아 지갑에 넣고 갈색라인 노선을 타고 검남로역으로 가서 하차를 하니 버스를 타고 고궁박물원에 가야 한다. 버스 안에서 젊은 친구가 영어로 안내를 하는데 이미 고궁박물원이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자꾸 하기에 야간 개장을 한다고 해서 왔으니 가보겠다고 박박 우겨서 내렸더니 고궁박물원의 그림자가 보이질 않는다. 날은 어두워지고 컴컴해진다. 물어물어 고궁박물원으로 들어서니 불은 꺼져 있고 사람의 흔적이 없다. 역시 안내서의 이야기는 경우에 따라 다른 것이었다. 그래도 입구까지 가서 한 바퀴 돌고 낭패감을 곱씹으면서 계단을 내려와서 돌아가는 길을 또 어떻게 할지 내 심정이 막막해지는 것이었다. 어찌어찌 다시 검남로역으로 와서 충효부흥역으로 이동하여 숙소로 오면서 만두 몇 개랑 내일 아침 식사 거리를 사 들고 숙소로 돌아오니 9시를 넘기고 있었다. 숙소 철문의 열쇠가 잘 듣지 않아 계단에서 와글거리고 있으니 이웃 사람이 짜증을 낸 모양이다. 그리고 숙소 주인에게 전화로 항의를 한 모양인데 우리도 그 이유를 설명을 해주었다. 열쇠가 잘 작동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노라고 했더니 열쇠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기에 있는 그대로 알려주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다음 날부터는 또 열쇠가 잘 작동했으니 이것은 또 무슨 조홧속인지 모를 일이었다. 첫날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타이베이의 교통체계에 대한 감이 조금 왔다고 하겠다. 인생은 끊임없이 배움의 연속이다. 죽는 그날까지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성장해야 한다.